[Opinion] 영화제를 다녀오며, 젖은 길 위를 걸으며 [영화]

2024 서울독립영화제
글 입력 2024.12.04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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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가 50주년을 맞았다. 신진 영화인들의 등용문이자 한국 영화 발전의 중추 역할을 하는 서독제는 한국 영화의 현재를 확인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50의 반 정도 되는 세월을 살아온 내가 서독제에 간 건 부끄럽지만 올해가 처음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적었던 탓일 수도, 혹은 이제야 비로소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발걸음을 움직이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핑계가 됐든 간에 영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그 해의 한국 독립영화를 되짚어보는 장에 이제야 처음 가봤다는 건 그다지 떳떳한 일은 아니다.

 

올해도 여전히 갈지 말지 고민하던 찰나에, 발을 움직이게 된 계기는 단편영화 촬영 현장에서 알게 된 배우님의 초대 때문이었다. 자신의 출연작 중 두 작품이 단편경쟁 부문에서 상영한다고, 그러니 꼭 보러 오라고 약속까지 했다. 그 말은 고민의 기로에 선 나를 서울독립영화제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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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관객은 줄거리든 포스터든 어떤 영화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예매를 진행한다. 다시 말해 관객이 영화를 선택해서 관람한다. 하지만 이번에 나는 좀 독특하게도, 섹션에 어떤 영화들이 상영되는지 아무런 줄거리나 정보, 제목조차도 보지 않고 예매를 진행했다. 때문에 각 영화들이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영화 타이틀을 통해서야 비로소 어떤 제목의 영화였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우연성에 기대어 영화가 나를 선택하는 방식은 새롭고 묘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나는 서독제에 하루만 방문하여 총 세 섹션의 단편영화를 관람했다. 한 섹션에 네 작품씩, 그러니까 총 12편의 단편영화를 관람했는데 각 섹션 별로 사랑, 장애인 인권, 동성애, 인간관계, 꿈 등 다양한 주제와 내용의 흥미로운 영화들이 가득했다. 또한 백퍼센트 AI 기술로만 제작된 영화가 상영된 것도 인상깊었다(하지만 AI 영화가 갈 길은 아직 멀어보인다).

 

잊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사회문제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독립영화제다. 이는 2024년에도 왜 독립영화, 그리고 독립영화제가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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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한국 영화는 재미없다고, 뻔하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관에서 대부분의 상영관을 차지하는 한국식 상업영화가 재미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의 창의성이나 다양성이 떨어진다고, 포스트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감독이 나타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서독제에서 보고 온 영화들만 하더라도 한국식 상업영화에서 기대할 수 없는 깊고 다양한 이야기, 새로운 연출적 시도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새롭고 좋은 한국 영화와 영화인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이 더 넓은 장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게 막는 장애물들이 있다는 건 안타까운 현실이다.

 

올해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제 지원 예산은 52억 원에서 24억 원으로, 54% 감소했다. 그리고 2025년 서울독립영화제에 부여된 영화발전기금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지역 영화는 또 어떠한가. 코딱지만큼 있던 지역영화 지원사업의 예산은 전액 삭감되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마치 발 디딜 면이 점점 좁아지는 신문지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생사가 달린.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을 무시하는 정부 정책에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는 독립영화계가 안쓰럽게만 느껴진다. 영화와 영화제의 발전을 저해하려는 시도는 예술을 넘어 사회문제 해결, 다양성 존중, 담론의 장 등을 없애고자 하는 것과 동일하다. 원칙도, 비판도 무시한다면 우린 한국 사회와 한국 문화에 도대체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까?

 

50년의 세월을 지나온 서독제를 다녀오며, 100세 시대에 고작 50세로 저물지 않길, 그리하여 한국 영화와 한국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발전하길 바랐다.

 

영화관 밖으로 나오니 길이 젖어 있었다. 비가 왔던 모양이다. 나는 젖은 보도블록 위를 걸으며 역으로 향했다.

 

 

[박도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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