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악보에서 인생을 읽다 -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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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위로와 안정을 명목으로 음악을 찾는다. 물론 그 어떤 선율도 소음에 불과할 정도로 스트레스가 극심한 날도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때문에 자극에 예민해졌는데, 그렇다고 해서 적막도 잘 견디지는 못해 어쩔 줄 모를 때 클래식 음악을 듣고 마음이 금방 진정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렇게 감상하는 이의 감정을 무겁게 눌러 천천히 가라앉히는 클래식의 중력은 시대를 초월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데서 비롯된다. 이렇게 보면 클래식은 어렵지 않을 것만 같지만, 사실 이는 선율의 해석과 작곡가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의 감상이 옳은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예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클래식을 듣고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낀다. 예술을 즐길 자격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울리는지 그 여부를 따질 문제이지, 그것을 머리로 얼마나 잘 아는지는 아닐 것이다.
대단한 안목과 식견은 없어도 그것이 내 삶에 중요해졌다면 그만큼 그 감정을 소중히 하고 알아가면 될 일이다. 그렇게 하면 클래식은 부족한 지식의 밑천을 느끼게 하는 영원한 갈증이 아니라 맘을 언제나 촉촉히 적셔주는 샘과 같아진다.
물론 클래식을 듣기 시작할 때부터 이런 생각을 하고 이렇게 접근했던 것은 아니다. 클래식을 많이 듣지 않았던 예전보다도 클래식을 듣는다고 말할 때 마음 한구석이 특히 뜨끔했던 요즘,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를 읽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는 빵부스러기를 줍듯 클래식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씩 주워 먹는 재미가 있는 교양 서적이었다.
클래식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인생
어릴 적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 음악가들의 위인전을 학원에서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기보다는 동화책처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작곡가의 삶과 경험, 그때 느낀 감정이 음악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것은 곧 클래식을 해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저자는 책에서 최초로 감정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작곡가로서 베토벤을 소개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의 삶의 태도와 발상이 위대한 작품으로 승화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이를 통해 든든한 후원자였던 발트슈타인 백작이나 그의 미학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준 스승 하이든과의 교류 등 그의 천재성보다도 그의 성격과 일상의 경험, 주변인의 영향과 같은 작품 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가 베토벤에 큰 관심이 없던 내게도 인상 깊게 다가왔던 이유는, 이렇게 클래식 음악가의 경험을 일상의 고찰과 연결해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를 묘사했기 때문이었다. 베토벤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베토벤이라는 인물이나 그의 음악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저자의 바람은 그의 팬을 한 명이라도 더 만드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베토벤이라는 인간, 그 인간의 작곡가로서의 삶을 바탕으로 클래식이라는 더 넓은 세계에 흥미를 느끼기를 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밝히기도 한다. 클래식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음악에 있어 혁신을 추구하는 베토벤의 확고한 태도가 서로 닮았다는 점에서 베토벤을 선택한 저자의 의도를 발견할 수도 있지만, 클래식이 그저 고상한 취미로만 여겨지는 것은 아깝다는 마음이 더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클래식은 짧게는 100년, 길게는 4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주 고른 채에 걸러져 살아남은 작품이다. 그런 작품을 비범한 재능을 지닌 음악가들이 평생을 걸쳐 일궈 낸 총체적 미적 감각으로 창조한 산물이다. 이런 인류의 유산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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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베토벤을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고 느꼈다. 클래식은 초심자에게는 느낌만 조금 다를 뿐, 음악만 듣고 작곡가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할 정도로 그 스타일의 차이가 근소해 보인다. 이 책에서는 노력, 성공, 사랑 등 인생에 관한 여러 주제를 바탕으로 베토벤의 삶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의 스타일을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구축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모호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클래식에서 베토벤이라는 음악가를 따로 떼어놓고 보았을 때 그의 음악 세계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독창성을 보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일생에 한번은 베토벤을 만나라>는 시대에 따라 음악가를 구분하고 공부하기 전, 그들 각각이 각자의 생을 살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특히 책을 읽듯, 악보를 해석할 때 거기서 그들의 경험과 감정을 해석해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지 앞으로 하게 될 클래식과의 여정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취미인으로서 클래식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 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음악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엿볼 수 있으며 어떤 식으로든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을 배웠다면,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우리는 느끼게 되어 있다.
'운명'을 통해 고집스럽고 완강한 괴짜라는 베토벤에 대한 평가를 뒤집고 계급주의에 맞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는 인물로서 베토벤을 바라보게 된 심경의 변화를 예로 들 수 있겠다. 책을 읽기 전에는 단순히 베토벤의 '운명'이 그의 청력이 거의 소실되어 갈 무렵, 음악으로 자신을 다시금 증명하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작곡가로서 그가 느꼈을 절망의 크기보다 크게 몸집을 부풀리는 듯한 강렬한 음악이 그러한 인상에 일조했을 것이다.
책을 읽어보았을 때, 베토벤은 소신이 확실한 인물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누군가에 대한 경애와 존경의 의미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열정과 사랑을 악보에 음표로 옮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추종하던 인간상은 화려하고 완벽한 영웅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의 삶에 비추어 보았을 때 힘의 한계를 직면해도 포기하지 않고 인생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인간이었을 것이다. 그는 주변 사람과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하기 위해 펜을 들어 그것을 악상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그의 비서에게 '운명'의 첫 네 음은 곧 운명이 문을 두드리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는데, 이것을 알고 나니 신의 사자처럼 찾아온 운명의 순간에 절망을 느꼈을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예술가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감상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특정 평가만을 취사선택하기 어려워 딜레마를 겪기도 하는데, 이는 예술가를 사람으로서 이해한다면 특히 그렇다. 어떻게 한 사람을, 그 인생을 수용할지는 정답이 없지만, 그것을 통해 자신만의 가치관과 미학을 부수거나, 재건하거나, 혹은 그 내실을 다지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이는 클래식을 즐기는 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비평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을 딱딱하고 지루한 테크닉의 예술로 생각하기보다 자신과 예술가, 적어도 두 사람의 세계에 깊이 침잠해 상상과 삶의 고찰 사이를 유영하며 풍부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나아가 그 안에서 인생을 느끼고, 자신만의 궁전, 들판, 혹은 더 넓은 우주를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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