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폭력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 킬롤로지 [공연]

사회의 만연한 폭력을 우리는 막을 수 있을까?
글 입력 2024.12.0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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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오피니언은 연극 <킬롤로지>에 대한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수많은 폭력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수많은 살인, 데이트폭력, 학교폭력의 소식을 마주한다. 너무나도 반복되는 일인 나머지 ’또?‘ 라는 생각과 함께 무기력함도 든다.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금도 지구 한편에서는 전쟁으로 수많은 아이들이 무력하게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폭력의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한 가운데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뜨겁다. “게임이 폭력을 부추기는가?”라는 질문은 꾸준히 언급되는 이야기이다. 정말 게임이 폭력을 불러올까?

 

연극 <킬롤로지>에서는 알란, 데이비, 폴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단순한 질문을 넘어 폭력의 근원을 따라간다. 게임 ‘킬롤로지’를 모방해 잔혹하게 살해당한 데이비의 죽음을 중심으로, 폴은 어떻게 킬롤로지를 고안하게 되었는지, 알란은 왜 복수를 다짐하는지, 데이비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었는지.

 

파편적인 세 사람의 이야기가 차차 연결되며 연극은 관객들로 하여금 폭력이 탄생하고 확산되는 과정을 직면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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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공연사진 - 출처 : 연극열전 트위터 (@thebestplays)

 

 

보통 폭력적인 게임에서는 폭력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생존을 위해, 또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해지는 폭력. 그러나 연극의 제목이기도 한 게임 ‘킬롤로지‘는 다르다. 이 게임에서 폭력은 ‘목적’ 그 자체다. 잔혹성과 고통이 점수로 환산되는 게임이다.


그런 게임에는 당연히 도덕성에 대한 문제가 따라붙는다.

 

게임을 고안한 폴은 “게임에서 마법을 쓰면 돼지가 날아다니죠. 그렇다고 현실에서도 돼지가 날아다닌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대답하며, 킬롤로지가 '도덕적인 게임'이라고 주장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관객은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게임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폴을 무조건 비난하기에 어려운 이유는, 작품에서 단순히 누군가를 선과 악으로 구분 짓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과 악의 경계를 흐리며, 폭력의 복잡한 양면성을 드러낸다. 선한 의도로 행한 일이 폭력으로 변질되고, 폭력이 다시 선을 만들기도 한다.

 

폴의 아버지는 선한 일로 부자가 되었지만, 아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죽을 때까지 한마디 따스한 말도 해주지 않았다. 폴은 그런 아버지 밑에서 결핍을 느끼며 자라났다. 폴을 무조건 비판하기에는 캐릭터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데이비는 피해자인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폴이 간략하게 언급하는, 킬롤로지에 잔혹한 살해 방법을 제시한 대가로 동생들의 학비를 마련한 가난한 소녀의 이야기는 관객들을 딜레마에 빠뜨린다. 데이비를 방치했던 알란의 복수 역시 폭력을 끊으려는 시도였지만, 폭력의 또 다른 고리를 만들어낸다. 알란도 잘 알고 있었기에 폴을 죽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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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공연사진 - 출처 : 연극열전 트위터 (@thebestplays)

 

 

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그 답은 ‘단절’이라는 단어로 귀결된다.

 

작품은 대부분 독백으로 진행된다. 배우 세 명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다. 폭력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다른 배우들은 무대 위를 떠나지 않지만, 이들에게 개입하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음에도 단절된 상태에서 폭력은 이어지고, 극은 고립된 목소리들로 채워진다. 극 중에서 진심 어린 대화는 오직 환상 속에서나 가능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폭력을 끊어낼 수 있을까? 더는 데이비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단절된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폭력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깊이 자리 잡았고, 그럼에도 우리는 폭력의 작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폭력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얽혀 있는지는 알 수 있다. 폭력의 이해에서부터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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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킬롤로지> 공연사진 - 출처 : 연극열전 트위터 (@thebestplays)

 

 

폭력에 대해 깊은 고찰을 담은 연극 <킬롤로지>가 지난 12월 1일 막을 내렸다. 18년 초연부터 24년 삼연까지, 세 번에 걸쳐 올라오며 작품은 우리에게 폭력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던져주었다. 멋진 작품을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라며, 그리고 폭력을 인지하고 끊어내려는 시도들이 모여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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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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