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기성을 무기로 내세운 앨범들 [음악]

음악마저 숏폼으로 소비하는 시대에, 기어코 전곡 재생을 누르게 만드는 앨범들
글 입력 2024.11.3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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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숏폼의 전성기라고는 하지만, 고작 3분 남짓한 음악을 ‘60초 안에 듣기‘라는 이름의 콘텐츠로 재생산하는 유튜브 채널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60초 안에 음악의 구성과 의도를 파악하기엔 너무 부족한 게 아닌가. 가수의 목소리를 제대로 감상할 시간조차 못 되는 게 아닌가.


하물며 숏폼 채널들 뿐만 아니라, 최근 가요계의 트랜드도 점차 콤팩트한 음악을 지향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비교적 짧은 길이의 음악에, 숏폼으로 소비될 만한 중독성 있는 훅을 중심으로 구성된 음악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아티스트들의 음반 발매 역시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며, 디지털 싱글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음반에서 음원의 시대로 변화한 2000년대 초중반부터 이미 앨범 전체를 듣는 리스너들은 많이 줄어든 추세이지만, 요즘은 특히나 앨범의 전곡을 듣게 할 만큼 골고루 힘을 준 경우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변화하는 음악 시장을 보다보면, 이제는 리스너로서 이런 변화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길고 장황한 것은 끝내 도태 되고야 마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트랙 간의 유기성을 무기로 내세워 기어코 전곡 재생을 누르게 만드는 앨범들이 있다.

 

 

 

이찬혁 ‘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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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뮤’의 어린 천재 작곡가로 대중에게 이미 익숙한 캐릭터였던 이찬혁의 솔로 데뷔 앨범 ‘Error'는 가히 충격적인 앨범이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 앞에 놓인 아티스트 ’이찬혁’의 마지막 하루를 트랙 순으로 담아낸 이 앨범은 대중이 몰랐던 이찬혁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죽음과 삶에 관한 철학적 고민과 생경한 감각을 일깨웠다. 특히 타이틀곡 ‘파노라마’가 주는 ‘버킷리스트 다 해봐야 해’라는 메세지에 맞게, 무대 위에서도 그의 자유분방한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트랙 순서대로 이 앨범을 듣고 있다 보면,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인간이 겪는 당혹감, 부정, 후회, 절망, 그리고 수용의 태도로 변모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야’라며 씁쓸한 공감을 하게 만들며, 끝내 모든 트랙이 끝나고 난 뒤에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그만큼 죽음이란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과제인 것이다. 그 물음 앞에 이찬혁이 내린 답은 무엇이었는지, 전곡 재생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검정치마 ‘TEEN TROUB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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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조휴일의 10대 시절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TEEN TROUBLES'는 한 편의 성장영화처럼 구성된 앨범이다.

 

실제로 이 앨범의 발매 당시, 앨범 프로모션의 일부로 각 트랙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단편영화로 제작해 발표한 바 있다. 앨범과 영화를 함께 발표하여 리스너들로 하여금 함께 즐기도록 하는 방식 자체가 이 앨범이 담고 있는 탄탄한 서사를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트랙 안에서도 그 자체의 단단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가사와 함께 듣는 재미가 있는 앨범이다.


특히 앨범의 첫 트랙인 ‘Flying Bobs’는 앨범의 시간적 배경이 되는 1999년을 회상하는 내레이션으로 문을 연다. 사실상 이 대목은 'TEEN TROUBLES'가 들려주는 그 모든 문제들, 그러니까 조휴일 본인이 직접 겪었던 과거의 일들을 이야기함으로써 무얼 얻고자 하는지 고백하는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실수들을 반복할 만큼, 그것은 조휴일 자신의 선택들로 이루어진 일들이었음을 말이다.

 

 

 

가인 ‘Haww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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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Hawwah'는 성경의 소재들을 각 곡의 테마로 하여, 금기를 깨는 여성으로서 ‘하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앨범이다.

 

하와는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로 만든 인류 최초의 여자이자, 신이 금지한 선악과를 깨물어 인류 최초로 죄를 범하게 되는 인물이다. 앨범은 하와가 선악과를 탐내기 시작하는 것부터 끝내 그것을 한 입 베어 무는 것까지의 이야기를 트랙 순대로 보여준다.

 

심지어 이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 각 트랙 가사의 유기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했고, 최초로 ‘리릭 프로듀서’를 두어 ‘하와’라는 주제 아래 각 곡의 이야기를 연결시켰다. 그렇기에 앨범의 전 곡을 순서대로 들었을 때 더 몰입하여 들을 수 있기도 하다.


또한 ‘규범을 깨는 여성’으로서 ‘하와’의 이미지는 가인이라는 아티스트가 보여온 행보와 역시나 유기성을 띤다는 점이 흥미롭다. ‘피어나’를 통해 여성의 첫 경험을 다루었고, ‘Fxxk you’를 통해 데이트 폭력을 소재로 다루었던 것처럼, 끊임없이 여성 아티스트로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를 넓혀온 가인이기에 이 앨범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할 것이다.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악들도 물론 필요하지만, 위의 세 앨범처럼 아티스트의 진솔한 생각과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앨범들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이 발매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장연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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