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판소리의 재해석 - 넛지 NU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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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3일, 김희수아트엔터에서 악당의 <프리즘 리어>가 공연되었다.
수림 공동기획 시리즈 2024 - 넛지 공연은 전통예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무대였다. 새로운 시도를 한 공연이 돋보였던 기획이니만큼 한국 전통예술의 미래를 살펴볼 수 있었다.
최근 ‘힙트레디션’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있다. ‘힙트레디션’이란, 힙(Hip)과 트레디션(Tradition)을 합친 단어로, 전통문화를 소비하고 즐기는 Z세대 트렌드를 뜻한다. 이 말은 즉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이 전과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자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판소리를 팝 음악으로 재해석한 이날치 밴드나 한국굿음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64ksana(육사크사나) 밴드 등 전통예술을 배경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창작자와 창작물이 비례하여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악당의 <프리즘 리어>는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공연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우리의 전통문화 ‘판소리’로 풀어낸 공연이기 때문에 따지자면 서양의 고전문학과 동양의 전통예술이 합쳐진 공연이라고 볼 수 있다.
공연은 빨강부터 보라까지 무지개색을 본떠 에피소드를 나누며 진행되었다. 공연의 순서는 이러하였다.
빨강 – 그는 고귀하였다. 짙은 버건디처럼
주황 – 광대의 노래
노랑 – 배신의 혀
초록 – 쏟아져라 지옥이여_들판에서의 독백
파랑 – 4막모의재판
남색 – 코딜어와의 재회
보라 – 무너지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가 필요하다. 그들이 내는 소리가 곧 음악이고 공연이다.
<리어왕>의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꾼과 고수의 소리로 채워졌다. 쇼케이스 공연이었기 때문에 사회자가 중간 중간 등장해 진행될 이야기를 알려줬으나 이미 그 내용을 알고 있음에도 순간순간 기대가 되고 새롭게 다가왔다.
리어왕의 입장에서 소리꾼이 내는 소리를 들으며 작품 속 인물의 목소리가 내게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누구에게도 배신당하지 않고 오만하게 세상을 거닐었던 리어왕부터 딸들에게 버림받은 후 홀로 남은 리어왕까지. 공연이 시작된 후부터 소리꾼과 고수의 소리를 한 음 한 음 귀 기울여 들었다.
그들의 ‘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리어왕의 심정과 그가 겪은 상황, 그의 고뇌와 독백이 귀에 더 잘 들어왔다. 리어왕뿐만 아니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소리도 소리꾼과 고수의 소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작품 속 인물의 목소리를 판소리를 통해 잘 드러내 주어 동양의 정서와 조금 다른 것 같은 고전문학도 새롭게 다가왔다. 악당의 <프리즘 리어>는 <리어왕>을 우리만의 목소리로 재해석해 전통예술을 새로운 세계로 이끄는 공연이었다.
판소리의 장점을 살려 인물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있게, 그들이 흐르듯 말하는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창작된 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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