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재미있는 이유 - 캐드펠 수사 시리즈[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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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추리소설 장르의 애독자는 아니다. 오히려 문외한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좋은 기회로 캐드펠 수사 시리즈 6권부터 10권까지, 두께가 상당한 책들을 택배로 받아보게 되었을 때, 첫 감상은 솔직히 말하자면 ‘이걸 언제 다 읽어?’였다. 하지만 첫 책이었던 ‘얼음 속의 여인’을 집어든 순간, 예상보다 훨씬 더 쉽고 빠르게 넘어가는 책장에 놀랐다. 이후에는 대중교통 안에서도, 침대 이불 속에서도 나머지 권들과 함께했던 것 같다.
추리물을 많이 접하지 않은 사람으로써 처음 이 장르에 가진 선입견은, ‘무언가 기억해야 하는 이름이나 용어가 많아 읽는 데 속도가 나지 않는 소설’, ‘문장과 이미지의 문학성보다는 논리적인 두뇌 싸움에 초점이 맞춰진 소설’일 것 같다는 거였다. 하지만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읽고 난 후 선입견이 있던 자리에는 어느 새 ‘유려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를 인물 간의 관계 틈새로 교묘하게 몰입시키는 영리한 소설’이라는 일종의 감탄이 자리하고 있었다.
세상에 어느 종류의 독자가 얼마만큼 존재하는지, 나는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나와 같은 장르의 ‘진입 장벽’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마음을 허물고 작품과 만나 볼 소중한 기회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나에게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를 한 번 적어보려 한다.
1. 공간 이동의 역동성
책을 펼치면 가장 첫 장에 나오는 것은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지역이 그려진 오래된 지도이다. 주인공이 12세기 중세 잉글랜드의 수도사인 만큼 낡고 예스러운 지도일 수밖에 없다. 처음 그 지도를 볼 때면 낯선 지명과 지리에 머리가 아플지 모른다. 하지만 괜찮다.
시대는 옛날, 전화도 없는 시절이다. 게다가 여러 전 국가적 사건들로 나라가 어지러우니 사람들 사이의 원거리 소통이 용이할 리 없다. 늙은 수사인 캐드펠은 직접 발로 뛰며 궂은 지형과 날씨를 뚫고 증거가 될 만한 이들의 증언을 발로 뛰며 찾아다닌다. 그 여정이 아무리 낯선 지역을 거쳐 갈지라도, 절제된 수식과 적절한 호흡으로 연결된 가독성 있는 문장들은 그 풍경과 지형들을 눈앞에 그려낸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는 이야기에 역동성을 더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야기의 공간은 변화무쌍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독자는 문장들을 통해 그 풍경들을 차례로 상상하며 수사의 옆에서 여정 동안 함께 걷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행동의 주체성을 얻게 된다. 그것이 간접 경험 세계의 것일지라도 말이다. 독자가 얻는 가상의 행위적 역동성은 그 자체로 이야기에 감각적 다이내믹을 더하며 지루할 틈을 줄이고 긴 분량을 집중도있게 따라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렇게 가상의 여정을 수사와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책 앞쪽의 지도를 보지 않고도 지형과 위치들이 맘 속에 개략적으로 새겨진다. 책을 다 마치고 나서 첫 장을 펼쳤을 때,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고 편하게 지도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큰 세상 속에 난 각각의 미세한 길들만을 보다 보면 머리가 아프고 당최 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길들이 만나는 실타래들을 풀어내 만든 전체 지도를 들여다보면, 더 이상 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이 책을 첫 장부터 마지막까지 읽어내려가는 일은 공간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작은 길들을 차레차례 모아 완성된 지도를 보는 일이다.
2.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선입견의 시험
요즘의 시점으로 생각해보면 지문인식이나 DNA검사로 한 번에 용의자를 색출할 수 있을 것 같은 증거도 12세기의 이야기 속에서는 여러 복잡하고 주관적인 절차들을 통해 재해석해야 한다. 수사와 독자가 믿을 수 있는 건 주로 극 중 등장하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다. 어떤 과학적 절차보다도 절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없는 것들이다.
책을 보다 보면, 각 인물에 대한 묘사가 인상깊다. 각 인물의 기억할만한 특징적인 부분들을 섬세하게 수식하지만, 선 또는 악을 대놓고 드러낼 만큼 극단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중립적인 듯, 교묘하게 누군가의 선입견을 불러인으켜 부정적 가치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감과 단어들을 문장 사이에 끼워넣는다.
결국 사건을 추적하고 해결하며 특정 인물에 대한 선입견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거나 신뢰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는 전체 과정에서 독자가 주로 마주하는 건, 과학적 논리의 결여가 아니라 자신 내면에 있는 어딘가 치우치거나 결여된 타인에 대한 판단 기준이다. 먼 옛날 타국에서 일어난 거리감 있는 이야기로터 개인의 내면 탐색으로 향하는 경험은 이야기에 녹아든 인간성에 대한 주제들을 더욱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이 3인칭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즉, 주인공이자 주체적으로 전개를 이끌어가는 캐드펠 수사의 행동 역시 어느 외부 서술자의 시점에서 서술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의 지금 언행을 그를 얼만큼 신뢰할 것인지마저도 독자 개개인의 가치관에 달려있는 셈이다.
3. 역사적 매력과 자연 묘사의 문학성
작품은 각 편마다 영국의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함께 한다. 역사는 그자체로 사건 중 생기는 곤경에 대한 거대한 증거가 된다. 이는 자연스레 수사 진행 속에 스며들어 흐름의 작위성을 줄여주며 작가의 역량을 보여준다. 또한, 공식적으로 기록된 역사가 집단의 사건이라면 그 사건 속에 속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이 소설이다. 역사적 사건의 영향력과 윤리성을 그 안에 위치한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파고들어 본다는 것, 그 자체가 작품이 주는 하나의 매력이다.
작품 속 사용되는 자연에 대한 묘사는 인물이 처한 상황을 생동감있게 그려낸다. 인물들 앞에 닥친 시련과 그걸 뚫고 나아가는 강한 의지는 날씨와 지형을 헤쳐 가는 행위 속에 생생하게 감각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모든 자연에 대한 묘사는 상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인물들 사이에 위치한 질서와 무질서, 그들이 궁극적인 혼란을 야기하고 평화를 되찾아나가는 모습을 자연의 흐름은 인간 외부의 광대한 이미지로 예언처럼 드러낸다. 그 속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성 또는 인간관에 신념들은 독자를 향한 강요 없이 녹아든다. 다른 장르의 고전문학을 즐기는 독자에게도 이는 크게 즐거운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캐드펠 수사 시리즈를 즐긴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애정이란 항상 주관적이고 말로 담아내려면 반드시 한계가 생기는 것이다. 올해 북하우스에서 개정판이 출판되었으니,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의 고유한 매력을 직접 찾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박보경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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