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을 본지도 어연 일곱 해가 흘렀다. 수험생 기억이 남아있던 대학 초년 때에는 당해의 수능 문제를 풀어보거나 등급컷을 보며 난도가 불인지 물인지를 따져보며 방구석 전문가 노릇을 했다. 그러나 이런 관심은 해가 지날수록, 대학교 후배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사그라졌다. 심지어 올해는 당일이 돼서야 수능임을 알아차릴 정도였는데 이를 통해 비로소 내가 수능이라는 국가 차원의 빅 이벤트에도 무감각한, 무채색의 어른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때 수능에 운명을 걸었던 사람으로서, 과거로 돌아가 재수생 신분이던 나에게 이 사실을 전해주고 싶었다. 지금 너가 하고 있는 공부, 목 매달고 있는 시험, 그리고 가야하는 대학. 너가 갈망하는 것들은 금세 휘발된다고. 그러니까 인생을 결정 짓니 뭐니.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안다. 이런 낯 간지러운 멘트 따위. 당시에는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주입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응원할 뿐이다. 매년 수능날, 관련 뉴스 댓글 란에 어른들이 비슷한 문장으로 응원 댓글을 달 듯이 형식적인 메시지를 전할 뿐이다. 누군들 첨언하고 싶지 않겠나. 자신의 인생 경험이 섞인 좋은 말들을 길게 늘어놓고 싶겠지만, 어른의 조언은 요즘말로 ‘라떼는’ 이 되기에 이 시대에서 어른과 청년과 학생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
사실, 삶의 멘토 같은 건 없다. 스스로 부딪히고 실수하고 깨지고. 그 경험들 뒤에 밀려오는 후회가 당신의 선생이 되는 것이다. 어른은 그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센스 있게, 청년의 시선에서 도움을 주는 어른들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땐 정말 드물다고 여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청년은 목표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멘토를 간절히 원하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라떼’를 일절 배제하고 온전히 자신을 응원해주는 어른 말이다.
여러분의 생각을 어림짐작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의 내가 기댈 수 있는 어른을 원했기에 뱉은, 대표성이 누락된 발언일 수 있다. 혹시나 당신도 나와 비슷한 생각이라면 이 글을 읽고 판단해주길 바란다. 당신에게 소개하는 나의 경험이 ‘라떼’인지, 아니면 후배들에게 전하는 응원인지.
첫 수능의 기억은 넓은 안방 침대에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늦잠에서 깨어난, 개운한 느낌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고사장에도 안 갔다. 뺑뺑이로 배정받은 고등학교가 학생부종합전형을 중시한 탓에 고교 3년 동안 수능은 무슨, 모의고사 기출문제도 풀어보지 못했다. 결국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어중간한 스펙과 성적으로 여섯 개의 수시 원서를 전부 학생부종합으로 채워냈다.
결과는 1승 5패. 전부 상향지원이었다면 문제될 것이 없었다. 갈 곳이 있는 게 어딘가. 그러나 나는 간이 쥐 콩만 했고 분수를 알았다. 안정지원을 하고도 저런 성적표를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유일하게 붙은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니, 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 곳에 물리적으로 한 번 쯤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멀쩡한 집을 놔두고 자취 혹은 기숙사비 등 추가 비용을 지출하며 진학할 정도의 메리트는 여겼기 때문이었다.
인간이 큰 실패를 맛보면 현실을 부정한다고 하던데 그때의 내가 그랬다. 사실 반쯤 미쳤었다. 어디든 진학하라는 부모의 의견에 대들며 차라리 경찰을 준비한다는 궤변을 내뱉으며 투쟁을 시작했다. 큰 뜻을 품고 뱉은 말은 아니었다. 회피였을 뿐이니까. 텅 빈 시간이 흐르고 한 해가 지며 나는 그저 법적으로만 어른이 되었다. -만 나이가 지나지 않았으니 완전한 법적 성인도 아니었다- 침착함을 찾은 나는 물 흐르듯이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조용히 재수학원을 알아본 뒤 등록했다.
재수생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처참하고 외로운 순간이었으며 인간의 본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구속의 시작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생활이 사회 속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기에, 둘째는 비슷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 원인들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싶은 욕구가 피어오르지만 일단은 여기서 글을 줄이도록 하겠다. 에세이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 무엇보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여러분들을 위로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