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독백⟫
2021년. 코로나-19는 여전히 기승을 부렸고, 사람들은 집에 머물며 시간을 보냈다. 유튜브 보기, 음악 듣기, 책 읽기.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소소한 것들뿐이었다. 그날도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노래 커버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 영상이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평소라면 사람들로 북적여야 할 강남역이 텅 비어 있었다. 그 적막한 풍경 속, 한 남자가 아델의 ‘Easy on Me’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본 영상은 내게 압도적으로 특별했다. 평소엔 그냥 지나치던 곳이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모습과 음악이 배경이 되니 평소의 풍경은 마치 다른 세계처럼 변해 있었다. 흔하디흔했던 공간은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가진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봐야 하는 성격이라 계속 다시 보기 버튼을 누르다 사랑을 담아 영상을 담아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찾아낸 이름이 바로 ‘원의 독백(Wonologue)’이었다.
Monologue(독백)의 M을 180도 뒤집어 자신의 이름 끝 글자인 ‘won’을 합쳐 만든 이름. 원의 독백(Wonologue)의 유튜브 채널을 하나씩 보기 시작하니, 그의 일상과 취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어떤 감독의 영화를 즐겨보는지, 어떤 가수의 음악을 듣는지, 어떤 패션 스타일을 좋아하는지. 그의 영상은 일기장이자 아카이브 같았다.
영상 속에는 감추거나 꾸민 흔적이 없었다. 진솔하고 투명한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종종 일기를 쓸 때조차 누군가 볼까 봐 조심스레 단어를 고르는 나와 달리 거짓 없는 감정을 담아내는 영상이 마음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을 넘어 책으로 이어졌다.
항아리 게임이란 게 있다. 캐릭터를 움직여서 산 정상으로 옮겨놓으면 되는 게임인데, 재미의 여부를 떠나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다. 결국 수많은 사람이 흥미를 잃고 도전을 포기했는데, 그 이유가 이 게임에는 세이빙 포인트가 없기 때문이다. 즉 단계별 저장 기능이 없어서 중간에 실패하면 곧바로 밑바닥으로 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
한 번의 실수로 지금까지 쌓은 모든 공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는 내게 마치 세이브 포인트와 같다. 모든 성공과 실패가, 즐거움과 슬픔이, 경험과 교훈이 휘발되지 않도록 기록하고 남겨두는 게임의 세이브 기능처럼. 낯선 사막에서 길을 잃어 헤맨다고 가정했을 때, 긴 시간 걷고 걸으며 길을 찾는 일은 꽤 힘든 과정이 될 것이다. 심지어 돌고 돌아 지나왔던 지점에 다시 돌아올 수도 있을 테고, 보이지 않는 목적지에 지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나가는 길목의 포인트를 횃불로 표시하면 어떨까? 어디로 걸어야 할지 모르는 건 똑같지만, 내가 표시한 횃불을 토대로, 어느 곳으로 가야 왔던 길을 돌아가지 않을 수 있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개척한 길의 그 끝이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어디론가 갈 수는 있을 것이다. 시작했던 지점에서 먼 곳으로.
그리고 어쩌면 그건 발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 ⟪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독백⟫ 43p, 45p 발췌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무언가를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면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고요한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독백’에서 다른 사람은 필요 없다. 오히려 누구의 시선도 없이, 완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보장될 때, 우리는 거짓 없는 자신과 만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독백의 시간이 길지 않아도 괜찮다. 가끔 해도 괜찮다. 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물론, 그런 시간이 반드시 우리를 ‘멋진 사람’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언가를 남기고, 쌓아가며, 다시 들춰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잊고 지냈던 자신을 발견하고 때로는 잊고 싶었던 순간도, 애틋했던 순간도 함께 떠오른다.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용기는 결국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작은 시작점이 될 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나만의 독백의 해보는 것은 어떨까?
별점 평균 9 이상을 받은 영화의 리뷰를 살펴본 뒤 돈이 아깝진 않겠다는 생각에 영화를 예매한다. 잘 모르는 동네에서 식사할 때면 '00동 맛집'을 검색해 평균 4.5 이상의 식당 위주로 찾는다. 시간도 돈도 없는 나에게 이는 나름대로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하다. 진정으로 내가 재밌다고 느끼고 맛있다고 느낀 것인지, 아니면 이미 간접적으로 머리속에 들어온 결괏값에 동화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경험이다. 물론 경험하기 전 일말의 정보를 알고 시작하는 건 많은 도움이 되지미낭,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몸으로 직접 경험해보고 겪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나에게 제대로 된 흔적을 남긴다.
마라도 짜장면도 마찬가지다. 그 아무리 맛있다고 한들, 그곳에 내 두 발로 찾아가 직접 먹어보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다.
- ⟪발견, 영감 그리고 원의독백⟫ 139p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