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피아노 선율마다 디디는 걸음 - 2024 게자안다 콩쿠르 위너 콘서트

일리아 슈무클러의 발걸음을 따라 떠나는 여행
글 입력 2024.11.2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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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피아노 리사이틀은 많은 경우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간 종착지였다. 앞서는 발걸음들을 따라 최대한 클래식한 옷을 입은 채 점잖게 자리에 앉아 있던 시간들. 피아노 한 대만이 놓여있는 이 공간으로 이번에는 누군가를 이끌고 왔음에 취향의 탄력성을 다시금 느낀다. 그런 감상에 잠겼던 것도 잠시, 피아니스트의 연주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또다시 누군가의 발걸음을 따라가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무거웠다가 높았다가 또 다시 느려지는 그 발걸음들은 분명 이번 리사이틀의 주인공 일리아 슈무클러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선율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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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 '토카타 D장조' &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A장조'


 

2024 게자안다 콩쿠르 위너 콘서트의 주인공, 올해의 게자안다 콩쿠르의 우승자는 일리야 슈무클러다. 임윤찬이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었던 2022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파이널에 진출하며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인상을 남겼던 그가 이번 공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흐라는 중심'이라고. 바흐에서 슈베르트와 리스트로 이어지는 1부와 드뷔시에서 무소륵스키로 이어지는 2부는 영향을 주고받았던 음악가들의 음악을 한데 묶는다.

 

첫 번째 곡인 바흐 '토카타 D장조'는 경쾌한 시작을 알린다. 바흐와 토카타만 보고 효과음으로 익숙한 '토카타와 푸가 D단조'를 연상했던 필자에게는 D단조의 시작 멜로디처럼 '띠로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프레스토 - 알레그로 - 아다지오 - 표시 없음 - 콘 디스트레지오네 - 프레스토 - 푸가로 구성된 이 곡에도 마지막에 푸가가 나오기는 하지만 조가 다르니 당연하게도 분위기는 정반대이다. 일리야 슈무클러는 우측의 서스테인 페달을 적절히 이용하며 곡의 밝은 음들에 부드러운 분위기를 더한다. 정제된 표현을 빌리자면 바로크치고는 조금 낭만적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두 번째 곡인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A장조'는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클래식에 해박하지 않은 필자에게 있어 정말 클래식의 전형 같은 곡이었기에 아름답겠지, 정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폰을 넘어 실제로 들었을 때의 1악장이 의외로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사랑에 빠진 소년을 그리는 듯한 맑은 선율 뒤에 이어진 2악장은 보다 더 목가적이다. 마냥 부드러울 뻔한 음악들을 확실히 구분 짓는 것은 피아니스트의 확실한 강약 조절이다. 3악장에서는 마치 두 연인이 왈츠를 추는 듯하다. 빨라지는 부분은 확실히 휘몰아쳐지고 스케일로 내려오는 부분은 데크레센도로 표현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리스트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중 '장송곡'


 

제목부터 마음에 든다.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이라니. 이 얼마나 시적인가. 곡으로 처음 들어갈 때 관중을 확 집중시키는 웅장하고 장엄한 선율. 영상으로 보았을 때와는 그 규모가 다르다. 이펙트로 말하자면 room reverb와 hall reverb 정도의 차이랄까. 리스트의 곡들은 그 난이도와 기교로 유명한데 과연 음울해야 할 것 같은 장송곡에서도 그 화려함이 보일까 했었다. 괜한 우려였다. 이토록 에너지 넘치는 장송곡이라니. 화음이 쉴 새 없이 나오는 부분에서 화려함은 정점을 찍는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이번 리사이틀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을 말하려면 잠시 동행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필자가 이끌고 왔다고는 하나 동행은 사실 정확한 피아노적(?) 표현을 물어보려 초빙한 귀인이다. 장송곡에서 저음역이 강조되는 우르르 쾅쾅대는 부분을 무엇이라고 칭해야 할까, 하면 조가 바뀌는 부분이라고 답해주는 식이다. 그래서 그 조가 바뀌는 부분. 왼손으로는 천둥번개를, 오른손으로는 행진하는 발걸음을 표현하는 듯한 부분이 필자가 최고로 애정하는 부분이다. 피아노 한 대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은 웅장함, 야외의 묘지가 생각나는 엄숙함이 느껴진다.

 

밴드로 치자면 음원에서는 잘 들리지 않는 베이스가 현장에서 심장을 울리듯 저음역의 피아노 소리가 공연 현장에서 주는 울림이 남다르다. 그것은 일리아 슈무클러의 왼손 아티큘레이션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손이 무척 화려했을 것 같은데 앉은 자리에서 손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 한가지 아쉬움이었다. 정정하자면, 놀랍게도 반대편에서 손이 보이기는 했다. 피아노의 방해를 뚫고 높이 올라오는 그 손들은 포르티시모를 몸으로도 표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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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영상' 제1집 &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


 

가장 많은 기대를 하고 갔던 곡은 드뷔시의 '영상'이다. 소리를 들어도 머릿속에서 추상화가 그려지는 듯한 음악들. 친숙한 그림이나 글로 머릿속에서 바뀌는 음악들이 받아들이기가 쉽다. 특히 그 중 첫 번째 'Reflets dans l'eau'는 물방울들이 조로록 흐르는 소리들이 나서 실제로는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예상대로 피아노를 따라 물방울들은 흘렀지만 현장에서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3장의 'Mouvement'였다. 연주자의 타건은 강렬하다. 그 강렬함은 '장송곡'에서 행진이 되었다가 'Mouvement'에 이르러서는 온갖 것들의 움직임이 된다. 불규칙함 속의 리듬감. 흡사 여러 동물들이 사부작거리는 숲속에서의 이사 소리 같다. 그러니까 아주 작은 시골 쥐부터 거대한 북금곰까지의 걸음걸음들. 그 복잡한 걸음들이 흩날리며 끝난 뒤, 다시 타박타박 작은 발걸음이 들린다.

 

그 발걸음은 전람회로 들어서는 한 관람객의 경쾌한 발걸음이다. 무소르그스키 '전람회의 그림'의 '프롬나드'가 시작되었다. 프릴루드마다 반복되며 변주되는 이 발걸음들이 어떻게 바뀔지 보는 것도 하나의 관람 포인트다. 네 번의 발걸음들은 그 주위에 걸린 그림에 따라 속도와 높낮이가 달라진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림, 아니 선율은 '먹이를 문 병아리의 발레'인데, 영상으로 들었을 때도 참 귀여웠지만 실제로 들으니 더 병아리 같고 톡톡 튄달까. 일리아 슈무클러의 연주에서는 강약대비가 도드라진다고 말했던가. '사무엘 골텐베르크와 슈무엘레'가 좋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구걸하는 가난한 유대인 선율과 단호하게 거절하는 부자 유대인 선율이 대조되며 나오다가 한 데 섞이는 순간은 아름답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키이우의 대문'에서는 프롬나드의 멜로디가 중간중간 나오는데 거대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 발걸음이 이어지는 듯하다. 그리고 끝날 때 포물선을 그리며 올라오는 피아니스트의 손. 연주 자체가 이렇게 화려하니 땀방울을 흘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피아니스트들도 이런 멋 부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 몰랐다니. 게자 안다 콩쿠르 결선 때에도,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곁에는 땀방울이 가득하다. 곡이 끝나고 땀을 쓱 닦는 모습에서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일리야 슈무클러가 곡을 꾸릴 때의 기준은 관객들에게 "여행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곡들이라고 한다. 리사이틀이 마무리된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연주를 감상하고 나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는 없다. 그의 다채로운 발걸음은 어느 순간 시작되어 여러 곡 사이를 누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손짓보다도 강렬하게 몰아치는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던 일리야 슈무클러가 안내하는 여행이 어느새 끝났다.

 

 

[윤희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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