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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깨나 봤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 한스 짐머.

 

나는 보통 그의 이름을 들으면 이제는 가물가물한 영화 ‘인터스텔라’를 떠올린다. 어느 한 장면을 출력한다기보단 그 영화를 생각했을 때 내 머릿속에 등장하는 형상을 그려내는 것이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나에게 파란 눈으로 기억되어 있다. 끝없이 나아가는 우주를 바라보는 우주인의 눈. 쏟아지는 시간에 공허하기도, 놓지 않을 희망에 반짝이기도, 슬픔에 글썽이기도 하지만 그 깜박임을 멈추지 않는 눈을 생각한다. 인상깊게 본 영화들은 특히 이런 ‘형상’으로 내 기억 속에 남는다.

 

시간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바래가던 이 형상들에 이번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가 소리를 덧입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공연에 등장하는 14개의 영화 중 겨우 4개를 봤고, 줄거리를 대강 아는 영화는 9개가 다였기 때문에 썩 원활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시각 이전에 청각으로 영화를 접하는 것 또한 흥미로운 경험이었으므로 결과적으로 아주 즐거운 감상이었다.

 

이제 인터스텔라의 파란 눈을 생각할 때면 몽환적인 하프 소리와 쉴 새 없이 손을 튕기던 연주자의 손이 뒤따라온다. 첫걸음이라는 뜻의 ‘First Step’. 눈동자 넘어 보이는 깊은 우주로 한 발짝 내딛는 느낌이다.

 

이어진 ‘다크 나이트’의 메인 주제곡도 운 좋게 아는 영화여서 몰입할 수 있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이죽거리는 듯 몰아치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였다. 다크 나이트를 돌아볼 때면 항상 거꾸로 매달린 조커의 웃는 입꼬리를 생각했는데, 마치 그 입이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의 첼로가 강렬한 붉은색 조명과 함께 밀려왔다.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끌고 갔던 호른의 묵직함에 더해져 어두운 항구를 바탕으로 하는 영화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

 

오케스트라 공연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어쩔 수 없이 몰려오는 졸음과 싸우던 중, ‘탑건: 매버릭’의 메인 주제곡이 호쾌한 전자 기타 소리와 함께 등장했다. 이전 곡들에서는 눈치채지 못했던 전자 기타와 베이스 기타의 존재감이 빵 올라오면서 분위기를 뒤집었다. 기존 클래식 악기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까랑까랑한 금속음이 귀와 눈을 깨웠다. 심지어 오케스트라 연주와 아주 잘 어울렸다. 개성이 강한 사람, 독불장군을 뜻하는 영화의 제목에 딱 맞는 곡이었다.

 

주의 깊게 들어보면, 곡마다 유달리 주목하게 되는 악기가 있었다. ‘탑건: 매버릭’의 메인 주제곡에서는 전자 기타가 흥미로웠다면, ‘이집트 왕자’의 이집트 왕자 메들리에서는 오보에가, ‘마다가스카 3: 이번엔 서커스다!’의 ‘뉴욕 서프라이즈’에서는 베이스 기타가 귀에 잘 들어왔다. 특히 뉴욕 서프라이즈가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내가 베이스 기타를 정말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재즈가 유명한 도시이니만큼 관련된 장면이 더 나올까? 뉴욕 서프라이즈가 등장하는 장면을 보고 싶어졌다.

 

전체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현대 밴드 악기들을 클래식 오케스트라 악기들과 함께 사용했다는 것이겠다. ‘러시: 더 라이벌’의 ‘졌지만 이겼다’에서는 경기 시작 신호음의 재현에, ‘007 노 타임 투 다이’의 노 타임 투 다이 주제곡에서는 007시리즈 특유의 멜로디에 쓰인 전자 기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갑작스럽지만 즐거운 이야기의 반전과 같이, 공연 자체에 색을 더해준 느낌이었다.

 

아무리 영화가 시각과 청각의 조화라지만, 시간이 지나면 기억 속에는 인간의 주 감각인 시각이 주로 남는다. 분명 영화를 볼 때는 사랑에 빠졌던 영화음악은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흐려지는 것만 같다. 기억을 되새기고 또 새롭게 만드는 차원에서, <한스 짐머 영화음악 콘서트>는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아, 이 위대한 가락을 어떻게 잊고 있었담! 가끔 좋아하는 영화의 OST 앨범을 듣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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