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온전한 애도의 과정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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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수풀 세 바퀴를 하루처럼 보낼 때 너의 한 바퀴는 일 년처럼 흐르고. 하나였던 우리는 구별되어 살아가겠지만 우리는 함께 보낸 시간만큼 서로를 공유하고 있단다."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낸 후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라온다. 부재를 받아들인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에는 상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충분히 슬퍼하며 대상의 부재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애도라고 부른다. 즉, 애도는 죽은 자를 산 자의 세계에서 완전히 보내주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너무나도 고통스럽기에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연극
< POOL >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정도 지난 근미래, 기억제거술이 누구나 받을 수 있도록 보편화된 세상에서 갑작스럽게 코마 환자들이 늘어난다. 기억제거술의 권위자였던 ‘나’는 연구 방향을 틀어 환자들의 의식을 회복하기 위한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게임 형식으로 환자들이 npc와 소통하며 천천히 기억의 조각을 찾아 깨어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 발표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직접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 테스트를 시행한다. 여유롭게 가상세계 속 유수풀을 즐기던 ‘나’는 이상 현상에 휘말리게 되고, 그 이유를 찾아 계속해서 스테이지를 진행하게 된다.
가상세계 속 npc들, 그리고 ’나‘는 소중한 존재의 상실을 경험한 인물들이다. ’나‘는 npc들 각각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상실을 받아들이고 다음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 과정은 죽은 딸의 기억을 제거해버린 ’나‘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워버림으로써 온전한 애도를 거치지 못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코마 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중한 존재의 죽음이 잊는다고 없는 일이 될 수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코마에 빠졌다.
npc들이 자신의 삶을 향해 떠나고, 마지막 스테이지에 와서야 '나'는 부정해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신은 딸을 잃었고, 그 기억을 지웠다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던 악몽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서로 구별되어 살아가겠지만, 하나였던 시간만큼 서로를 공유하고 있다고. 딸의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나' 또한 자신 안의 소중한 기억의 조각을 되찾아 다시 나아갈 수 있었다.
연극
< POOL >은 기억제거술, 가상현실 등 지금까지 연극에서 보기 어려웠던 sf소재들을 녹여낸 공연이다. 언뜻 보면 무대위에서 구현하기 어려울듯한 소재들을 극에서는 입체낭독을 통해 언어와 최소한의 소도구들로만 표현해낸다. 보면대가 로켓이 되기도 하고, 작은 전등이 아이돌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되기도 한다. 관객의 상상까지 더해져 완성되는 무대는 수많은 사물들, 그리고 감정을 표현해낸다. 딸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물이 말라붙었다가 풀에 다시 채워지기까지, 관객들도 그 광경을 상상해보며 '나'의 변화를 따라갈 수 있었다. 완전한 애도를 위해서는 보통 6개월에서 1년정도의 기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어나갈 삶이 있는 만큼, 이 기간을 온전히 애도에 쓰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사실 바쁜 일상때문에 상실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애도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다. 그런 사회에서 연극
< POOL >은 관객들에게 애도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든다. 앞으로 상실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번에는 쇼케이스로 짧게 공연했지만, 언젠가 본공연으로 돌아와 우리에게 다시 질문을 던져주기를 바라본다. [노미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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