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저마다 '썸머 고스트'를 찾는 이유가 있다 - 썸머 고스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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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썸머 고스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침이면 입김이 나오는 추위의 11월, 나는 아직 여름의 열기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우연히 내게 찾아온 영화 <썸머 고스트>를 보았기 때문일까. 이른 아침과 쌀쌀한 저녁 하천 위로 피어오른 물안개를 보면 자꾸만 이 영화가 떠오른다.
<썸머 고스트>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로 40분 남짓의 러닝타임을 갖고 있지만, 효과적인 연출과 스토리로 40분 안에 짧고 강렬하게 전율을 선사하고 여운을 남기는 영화인 건 분명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면 십 대의 끝자락에 선 세 아이들이 한 여름밤 썸머 고스트를 만나 인생의 의미를 찾는 내용이다.
세 아이들은 서로 다른 공허함을 안고 있다. 유령 모임을 결성한 장본인 토모야는 공부를 잘하고 학교와 부모가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수험생이지만 마음의 옷장 한 구석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꿈이 있다. 자신의 생각 말고 시험 문제에서 의도한 대로 답을 쓰라는 엄마와 그대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라는 담임 선생님 앞에서 토모야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다.
아오이는 학교에서 서열로 인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했던 아오이를 향해 선생님들조차 이 정도면 저런 특이한 행동을 하니 따돌림당하는 것 아니냐고 수군댄다. 료는 시한부로 9개월만 살 수 있다. 내년에 피는 벚꽃을 보지 못하고 죽는 료는 농구를 그만둔 이유를 후배에게 장난스럽게 말하지만 어딘가 공허해 보인다.
산다는 기분이 들지 않고 내가 살아있는 건 맞는지 분간이 되지 않는 하루하루. 마음이 죽은 세 사람은 어느 날 유령을 찾겠다는 목적으로 모여 자살한 유령이 자주 출몰한다는 비행장에 간다. 유령을 불러내기 위해선 불꽃 스틱을 태우는 것. 막대 끝에 불꽃이 타닥타닥 튀길 몇 번, 유령이 나타난다. 유령의 이름은 사토 아야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유령의 세계에 대해 묻는다. 유령의 세계에는 서열로 괴롭힘 당하는 일이 있는지, 유령은 고민이나 괴로운 일이 없는지, 유령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말이다. 그걸 알게 되면 무언가라도 바뀔까 싶어 묻지만 막상 얻어낸 건 없다. 그렇게 다시 현실로 돌아가고, 토모야는 몰래 혼자서 아야네를 만나러 간다. 유령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묻던 토모야에게 아야네는 유령이 될 수 있게 해 준다며 토모야의 육체는 육지에 두고 영혼을 빼내와 함께 날아다닌다.
"어때? 몸은 땅 위 영혼은 하늘. 넌 이제 자유야!"
유령이 된 토모야는 아야네와 함께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는 상태로 미술관의 그림을 구경한다. 꿈같은 시간을 지나 토모여는 아야네의 자살 이유를 묻는다. 하지만 아야네는 자신은 자살로 죽은 게 아니라고 말한다. 자살하지 않은 아야네. 3년 전 하찮은 이유로 엄마와 싸운 아야네는 태풍이 오는 날 밖을 나갔다가 신호를 무시한 차에 치였다. 눈을 떠보니 아야네는 여행 가방 안에 있었고, 그렇게 살아있었음에도 사고를 숨기려는 범인에 의해 생매장 당해 죽었다. "난 내 몸을 찾고 싶어."
토모야는 육지에서 살지만 마음이 죽어있고 아야네는 영혼으로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지만 몸은 죽어있다. 이처럼 이 영화는 몸과 영혼의 분리와 생과 사의 세계를 통해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짚어낸다.
"넌 분명 다 깨달을 수 있을 거야. 삶이 끝난다는 것은 너의 미래이자 나의 과거 우리 둘의 한가운데일 테니까." 우리는 생과 사 그 경계에서 삶을 살아간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다 허망하게 죽음에 가까워지기도, 혹은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리기도 한다. 아슬아슬하게 죽음과 맞닿아있는 채로 하루를 살아내는 것과 같다는 허망함이 밀려오지만 이 영화는 허망함에서 그치지 않는다.
토모야와 아오이, 료는 아야네의 몸을 찾기 시작한다. 네 명의 유령은 불꽃을 붙이고 아야네를 불러 유령이 된다. 유지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불꽃을 붙여 유령이 되길 반복한다. 유령이 되면 땅속을 물처럼 헤엄칠 수 있고, 그렇게 땅속에 파묻힌 캐리어를 발견하는 세 사람. 이때 영화는 흙을 파내어 캐리어와 토모야의 옷장 속 옷에 파묻힌 캔버스를 찾는 토모야의 모습을 교차편집한다.
아야네의 몸을 찾는 일은 어딘가 영혼과 몸의 합일로 느껴진다. 내 영혼이 원하는 일을 행동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일처럼 말이다.
아야네가 몸을 찾고 사라진 뒤, 1년이 지나 세 사람은 다시 비행장에서 만난다. 1년 후의 비행장에는 그럭저럭 나아가며 변함없이 최악일지라도 나를 위해 조금씩 변하는 세 사람이 있다. 서로의 안부를 물은 뒤 떠날 시간이 되자 아오이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진다. 료가 살아있는 게 아닌 유령임을 알아챈 것이다. 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에 봄에 흩날리는 벚꽃 잎을 보고 죽을 수 있었다는 료. 유령으로 온 료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살아."
"그래도 괜찮아. 무슨 일이든 언젠가는 끝난다고 생각하면 더 이상 무섭지 않아.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겠어."
"널 괴롭게 하는 세상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싫은 것 투성이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고개를 조금만 들면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어."
'인생의 덧없음'. 무슨 일이든 언젠가 끝이 있다 생각하면 시작하는 게 두렵지 않다는 토모야의 말이 가슴 깊이 박힌다. 허망함 위로 오히려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서리며, 무미건조하게 나누는 듯한 대화 속에서도 기록하고 싶은 문장들이 많은 문학 같은 영화 <썸머 고스트>. 살아가다 무력해지는 날이 오면 마음의 옷장에서 한여름의 유령들을 슬며시 꺼내보고 싶다.
[조유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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