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삶은 인생의 빚을 갚아나가는 여정 - 몇차례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무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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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밥」
천양희 시인의 가장 유명한 시 중 하나이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이 시의 화자가 흔들리는 내가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혼자 헤쳐 나가야 함을 알려주고 이를 믿어주는 부모 같다고 생각했다. 천양희 시인의 시는 늘 이런 느낌이었다. 인생 선배인 시인이 염려 섞인 따뜻함으로 삶의 지혜를 찬찬히 말해주는 것 같은 느낌. 이런 천양희 시인의 새로운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년이면 무려 시력(詩歷) 60년을 맞는 시인의 시집, 『몇차례 바람 속에서도 우리는 무사하였다』이다.
시를 쓰는 너는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이란다 (「한 소식」)
잃어버린 것 잊지 않겠다고 말하려다
억울을 안고 떠난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말았다
이곳에는 굵은 밤이슬이 내린다고 말하려다
삶을 쓰면서 세상에 진 빚을 갚는다고 말하고 말았다
「일월에서 사월까지」 中
시를 찬찬히 읽다 보면, 천양희 시인은 ‘시’ 자체에 대해 아직도 큰 산을 오르는 아이처럼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 시를 쓰는 일, 그 자체가 목적인 삶으로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는 천양희 시인이 세상에 빚을 갚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삶을 쓰는 것, 즉 시를 쓰는 것 그 자체가 세상에 진 빚을 갚으며, 당신의 책무를 다한다는 것. 나만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 타인의 상실과 억울함을 함께 쓰겠다는 것. 같은 출판사 유수연 시인의 『기분은 노크하지 않는다』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 삶이 실례라는 걸 안다
유수연, 「에티켓」 中
인생이란 삶의 빚을 갚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삶 자체가 세상에 빚을 내는 일이라면, 우리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빚을 갚으며 세상에 녹아든다. 그리고 그 책무를 시로 쓰는 것으로 다하는 시인들의 표현은 참으로 마음을 뒤흔든다. 존재 자체가 실례인 이 세상에서, 60여 년간 글을 쓰는 것으로 삶의 소임을 다하는 시인의 구절을 보며, 나의 소임에 대한 사색에 빠지는 것 역시 독자의 책무이리라.
시를 쓰는 너는
세상에 진 빚을 갚는 것이란다
가끔이라도
사람 마음에 다녀가는 너는
시인 아니냐
「한 소식」 中
어쩌면 타인에게 위로의 마음 한 가닥 나누어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시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안도현 시인은 이를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시인이라면 타인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글을 써야 한다는 뜻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천양희 시인은 “시는 마음 깊이 새긴 물음표 아니냐/몸으로 닻을 내리는 땅 아니냐”(「시인 지망생에게」)며 시의 본질 역시 이야기한다.
무심한 마음으로 무궁하게 살고 싶습니다 (「물의 완창」)
종이를 구겨서 멀리 던졌다
반듯한 것보다 멀리 갔다
세상에 던져져
멀리 갔다 돌아온 날
그렇게 될 것은 결국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종이 한 장의 기억」 中
구겨진 종이보다 마음이 더 구겨진 것 같은 날, 구겨진 종이가 던져지는 것처럼 내 존재가 하찮게 던져진 것 같은 날이 있다. 반듯한 마음이 자꾸만 접힐 때, 삶이 힘에 부쳐 “하루가 지루하다고/나는 나를 내려놓았는데”(「지극히 지루한」) 그런 날들이 상처가 될 때. 시행착오를 통해 아픔의 과도기를 겪는 이 세대의 청년에게 던지는 천양희 시인의 위로는 참으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동시에, 2030 세대를 넘어 5060까지, 전 세대를 위로하기도 한다.
침묵이 가장 큰 비명이라는 생각이 들 때
…
맹세를 물에 적어놓을 때
…
삶이란 학교에서 영원한 학생일 때
「빈자리가 필요하다」 中
어쩌면 인생이란 나이를 먹어도 다 똑같은 것일까. 70대가 되어도 삶이라는 이름의 학교에서 영원히 학생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일까. “어떤 것에 대해 생각한 것들과 생각해야 할 것들이 길이 되어주었다 삶 속에는 왜 그런가요?라고 물을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뒷날의 기록」)는 말처럼, 평생을 살아도 여전히 물음표를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고, 그 물음표를 말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나이를 먹는 일인 걸까.
「우리 같은 사람들」에서 시인이 아파트 경비원에게 본인의 시집을 건넸더니, 경비원이 ‘우리 같은 사람도 써주세요’라고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이라뇨’ 말하니 경비원은 “우리는 늘 그래요. 사는 것이 불편하니까”라고 답한다. 모두를 위해 쓰지 못한 시를 찢어버리며, ‘우리 같은 사람들’ 말고 ‘울 같은 울타리 같은 사람들’이라고 고쳐 쓰며, 시인은 그렇게 본인의 위로와 책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한다.
어둠은 빛보다 더 어둡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침이다
「아침에 생각하다」 中
천양희 시의 가장 좋은 점은 세대를 나누지 않고 위로를 전한다는 점이다. 또한, 시를 통해 타인을 위로한다는, 시 쓰는 것 그 자체의 목적 아래에서 꾸밈없이 솔직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60년을 가까이 시를 쓰면서도,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이를 허심탄회하게 시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따듯함을 격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결국엔 희망을 이야기한다. 빛보다 더 어두운 어둠이 없다고. 결국 빛을 가진 ‘우리’가 존재한다면, 빛의 울타리로 세상을 조금 더 밝게 비출 수 있다고.
생각해보니 발자취는 내 생의 물결무늬 자국! (「발자취」)
잘 웃지 못하는 내 웃음이
잘 웃는 네 웃음을 만나
비로소 웃기 시작했다
…
너는 웃음으로
내 울음을 지불하고
학습 없이 웃음보를 가지게 했다
「다시 올 웃음에게」 中
따뜻한 시보다 난해하고 서늘한 시를 주로 읽던 나에게, 이 시집은 나에게 기분 좋은 바람처럼 살랑, 하고 불어왔다. 특히 1부 초반부의 이 시는 너무나 맑고 싱그러운 느낌을 주었다. 나의 절망을 대신 지불해주는 누군가의 싱그러움. 누구나 그런 존재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일 수도 있고, 부모님, 친구, 사람이 아니라 반려동물일 수도 있고, 애착하는 작품일 수도 있고. 나의 인생을 해사하게 하는 것이 있는 누구나 이 시집을 읽으며 사랑하는 존재를 떠올리면서 읽었을 것이다.
특히, 이 시는 후반부 “잘 익은 울음을 실컷 울었다는/느낌이 들 때마다/웃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절벽」 시와도 이어진다. 적재적소의 울음을 시원하게 내뱉은 후, “울음의 끝은 웃음일 것인데”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당신의 웃음으로 나의 절망을 지불하는 그 사람 덕분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울음의 끝은 웃음일 것인데
사는 동안은 눈 한송이가 녹는 동안은
너는 너만큼 가파르고
나는 나만큼 아득한 것인데
…
시에도 절벽이 있다고 절창한 그도
절망을 습관처럼 반복할까
아닐 것이다 아닐 것이다 부정하면서
나는 그만
절벽 하나를 평온처럼 품는다
「절벽」 中
“시 쓰기란/진창에서 절창으로 나아가는 도정이니까”(「추분의 시」)라는 시인의 말처럼, 진창에 처박힌 그를 위해 절벽을 품을 수 있는 그 거룩한 마음 역시 거대한 시로 나아가는 큰 포용력의 행보로 느껴졌다. 생이 “깨어진 뒤에야 완성되는/그 거룩을/한 줄로 써서 보내줄게”(「생의 한가운데」)라는 말 속에 담긴 ‘거룩’은, 모든 상념과 아픔과 사랑을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이 포함된 집약체일 것이다.
이름은 같은 얼굴이 없어서 좋다는 시인의 말을 다시금 되새긴다. 우리는 모두 끝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끝은 시작의 또 다른 이름”(「이름은 같은 얼굴이 없다」)이라는 시인의 말을 통해 그 ‘끝’마저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갈 용기로 덮어써 본다. “남은 할 말이 있기라도 한 듯/나는 평생을/천천히 서둘렀다”(「뒤척이다」)는 천양희 시인의 행보를 따라, 나도 천천히 서두르며 생의 발자취를 부지런히 남겨야지.
[주영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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