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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하얀 도화지를 펼치다 - 장줄리앙의 종이세상 [전시]

종이 인간과 우리의 일상 그리고 성장

by 김유진 에디터
2024.10.25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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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Jullien

 

 

땡그란 눈에 길게 늘어진 코, 그리고 그것들을 더욱 뚜렷하게 비추고 있는 주황색 얼굴.


장줄리앙의 작품을 보기 위해 전시장을 찾은 적이 없음에도, 나의 메모리칩에 강렬히 저장되어 있는 이미지였다.


세계적으로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장줄리앙의 비결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그려진 그림 속에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을까. 가벼운 호기심에서 퍼져나간 궁금증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 이번에는 직접 전시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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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9월 27일부터 25년 3월 30일까지 퍼블릭가산 퍼블릭홀에서 진행되는 '장줄리앙의 종이세상(PAPER SOCIETY)'은 페이퍼 피플(Paper People)을 중심으로 구성한 전시이다. 사람의 형상을 닮은 종이 인간들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우리 일상 속 사소한 순간부터 사회적 이슈까지 녹여낸 점이 관전 포인트이다.


언제부터인가 전시장과 영화관을 찾을 때, 관련 정보들을 다 숙지하고 가는 것보다 그 콘텐츠에 약간은 무지한 상태로 가는 것이 풍부한 경험을 안겨줌을 느꼈다. 이번에도 역시 전시 주제와 포스터만 간단히 살펴본 상태로 전시장을 향했고, 장줄리앙이 그리는 종이 세상은 과연 어떨지 기대를 품고 입장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종이 인간들로부터 압도당하는 기분이었다. 첫 번째 공간은 종이 인간들이 탄생하는 공간인 '페이퍼 팩토리(Paper Factory)'를 재현한 공간으로, 시간이 멈춘 애니메이션 세상 속으로 잠시 들어간 느낌이었다.


왜 '시간이 멈춘' 세상이냐고 묻는다면, 약 1초 전까지만 해도 종이 인간들이 만들어지는 컨베이어 벨트가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급히 움직였을 것처럼 현장감이 생생했기 때문이다. 또한 컨베이어 벨트 위로 종이 인간의 탄생을 돕고 있는 작업자들의 표정, 특히 종이 인간을 말리기 위해 조심히 옮기는 작업자의 집중한 입술에서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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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Jullien


 

컨베이어 벨트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미소를 은은하게 날리고 있는 주황색 뱀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 번째 공간인 이곳은 '페이퍼 정글(Paper Jungle)'로, 구불구불하고 긴 뱀의 몸통에 인간의 역사와 종이 인간의 탄생 스토리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의 역사를 그림으로 보는 재미도 있었지만, 특히나 종이 인간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큰 흥미를 느꼈다. 종이 인간의 시작은 다름 아닌 인간으로부터였다. 인간이 쓰레기통에 버린 꾸깃꾸깃한 종이 쓰레기가 종이 인간이 되고, 그 종이 인간은 자신을 복제한 또 다른 종이 인간들을 만들며 점점 번져갔다.


뱀의 꼬리부터 머리까지 다시 한번 꼬불거림을 따라가는 동안 자꾸만 종이 인간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계속해서 종이 인간을 복제시키며 반복된 삶을 살다가 지쳐 몸이 축 늘어지고 흐물거리는 종이 인간을 볼 때면, 왠지 모를 동정심이 느껴질 정도였다.


마지막 공간에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실제 도시를 표현한 '페이퍼 시티(Paper City)'가 펼쳐져 있었다. 인간이 새로운 옷을 마련할 때 쇼핑을 하듯, 종이 인간은 붓으로 자신의 몸에 그림을 그리며 무늬를 만들곤 했다. 그리고 종이세상 아니랄까 봐, 영화관에서도 종이로 만들어진 주인공들이 출연하며 액션을 선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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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Jullien



새로움이나 큰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하얀 도화지'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이는 어떤 재료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과도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다.


종이세상에서는 하얀 도화지가 인간의 형상으로 오려지고 새로운 색과 줄이 덧입혀지는 과정이 당연했다. 처음에는 종이라는 똑같은 재료로 시작되었어도, 종이 인간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의 성격과 생각, 경험의 유무에 따라 점차 개성이 담긴 새로운 무늬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종이 인간에서 '종이'라는 재료명이 빠진 우리에게도 하얀 도화지는 충분히 있으며, 주변을 조금이라도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일차원적인 종이가 사람 모양으로 오려져 접히고 접히며 삼차원의 종이 인간이 된 것처럼, 우리 역시 학습과 경험이라는 색으로 도화지 위를 꾸미다 보면 무한한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직접 전시장을 찾아 종이세상 속 종이 인간들의 일상과 곳곳에 숨어있는 인간과의 관계성을 찾아보길 바란다. 종이 인간의 역사와 메시지를 두 눈으로 보고 나면, 돌돌 말려 있던 새로운 하얀 도화지가 본인 마음속에서 펼쳐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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