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
지극히 프랑스스러웠던 영화, 영화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메인 캐릭터 이름이 폴 마르셀과 마담 프루스트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특히 특정한 자극으로부터 연결된 기억이 떠오른다는 '프루스트 효과'가 내용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의 주인공 폴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다. 폴의 손엔 언제나 슈케트(프랑스 디저트)가 들려 있다. 아무튼 폴은 어린시절 부모의 죽음을 목격하며 말을 잃었고, 서른 살이 넘게 이모들이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에서 피아노를 치며 야망 없이 살아간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이 살아가던 폴은 우연한 계기로 아랫집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발 들이게 된다.
폴이 품은 내면의 상처를 꿰뚫어 본 마담 프루스트는 차와 마들렌, 그리고 폴이 어렸을 때 들었던 노래를 안내자 삼아 폴의 잠재된 과거 기억을 건져낸다.
그러고 보면 기억은 참 신기한 것이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구성물임에도, 깊은 저변에 가라앉아 있다. 그렇게 의식하지 못한 채 공생하며 살아가다가, 원치 않았던 순간 스파크가 튀듯 촉발되는 기억들이 있다. 좋은 기억만 선택적으로 저장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나쁜 기억도 (어쩌면 좋은 기억보다도 강렬하게) 우리 안 어딘가에 잠재돼 있다는 것이다.
마담 프루스트는 폴이 의도적으로 직시하길 회피해 온 그 기억들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 존재다.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힐 수도 있겠지만, 모든 기억들을 마주하는 일만이 진정 스스로를 만나고 이해하는 유일한 길이므로.
마담 프루스트는 관성적으로 매일을 살아가던 폴을 포함한 인간세계의 극단에 서 있는 인물이다. 지향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발끝에 꼭 힘을 주고 살아가는 인물. 조경가라는 꿈을 접지 않고 아파트 안에 자신만의 정원을 꾸미기도 하고, 사람들이 공원 안 병 걸린 나무를 베어내려 하자 나무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경찰에 잡혀가기도 한다.
고정된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만물은 상호 의존성을 갖고 변화한다는 철학의 불교를 믿는다는 점을 강조해 기독교 신자인 폴의 가족과 대비를 이룬 것도 그의 성격을 묘사하고자 한 메타포였겠다.
심지어 프루스트는 자신의 암을 치료하기 위한 어떤 인위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채 꼿꼿이 죽음을 맞이한다.
프루스트는 떠나기 전 폴에게 쪽지와 찻잎, 마들렌을 남긴다. 쪽지엔 Vis ta vie, '네 인생을 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짧은 문장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나를 힘들게 하던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 지금도 유유히 흘러가는 중인 눈앞의 인생을 살아라.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로 보내버려. 네게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영화 내내 프루스트가 폴에게 쓴 차와 달콤한 마들렌을 내어주며 했던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나를 규정짓던 것(규범, 종교, 가족 등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벗어나, 현실에 치여 망각했던, 그러나 진심으로 갈망했던 삶을 찾아가라. 폴은 콩쿨에서 1등을 할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피아니스트이지만, 이모들이 원해서 그 길을 걸은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담 프루스트과의 이별 이후, 그가 종종 공원에서 연주하곤 했던 우쿨렐레 강사로 일하며 행복하게 살아간다. 누군가에겐 보잘 것 없는 삶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가. 내 인생의 선택권은 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있다.
이 영화는 진로를 택할 때 따라오는 상투적 난제, '좋아하는 일 할래, 잘하는 일 할래?'에 주저없이 '좋아하는 일 해야지!'라 답하고 있다.
사실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도 모자라다는 영화 속 메시지는 명료하고 당연한 건데 어쩐지 이 말은 현실에선 지키기 어려울 만큼 무거워진다. 영화관을 나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순간 사회가 부여한 각종 의무와 짐과 규율은 내게로 파도처럼 밀려와 쏟아지기 때문에.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남들과 비슷해지려 안간힘을 쓰는 와중에도 여리고 푸른 낭만을 길고 얇게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길.
이 영화는 나의 '마담 프루스트'였다. 괴상하다고 손가락질 받지만 누군가에겐 스러져가는 색깔을 상기시켜주던 도심의 테라피스트 마담 프루스트처럼 투박하지만 진한 위로가 되어줬다.
지금의 순간들이 먼 훗날의 나를 구성하는 의미 있는 순간들로 자리할 수 있길 바라보며, Vis ta v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