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청소년의 시기를 겪어왔다. 20대가 된 내가 10대의 나를 되돌아보니 나의 세계는 아주 작고 또 좁았다.
소설 <경우 없는 세계>는 나의 청소년 시기를 돌아보게 하는 것 그 이상의 가치를 주었다. 이 책에 주로 등장하는 인수와 성연, 경우를 통해 '청소년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얻었기 때문이다. 청소년 개인의 세계가 단단하고 건강하게 형성되기 위해 어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나 또한 인수나 성연, 경우였던 순간들이 있었고 이제는 성인의 시선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이미 다 자라버린 나는 앞으로 자라날 청소년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읽어 내려갔다.
소설에서 이루어진 '집'에 대한 묘사는 이에 대한 해답을 가장 명확히 찾게 해준 장면 중 하나였다.
1. 집의 의미
소설 <경우 없는 세계>는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가출 청소년인 인수와 성연, 경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인수는 길거리로 나와 갖은 나쁜 짓을 벌이는 성연과 만나 어울리게 된다.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던 인수는 번듯하게 아르바이트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경우를 만나고, 경우가 엄마를 기다리며 길 위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길 위의 아이들은 쾌적한 본가를 놔두고 폐아파트의 '우리집'에서 생활한다. 겉으로 보기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우리집’은 각자의 가족과 함께 사는 본가보다 나은 점이 전혀 없어 보인다. 벌레가 들끓고 먹을 것은 부족하며 공간에 비해 지내는 인원도 많다. 집도 사람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 그나마 경우가 그 집을 깨끗하게 청소한 후 조금 살 만해진 수준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꾸준히 ‘우리집’을 이용한다. 오래 기거하는 친구부터 짧게 머물다 가는 친구들까지. 의외로 다들 잘 지낸다. 곰곰이 생각보다 결국 ‘우리집’이 그들에게 있어 진짜 집의 역할을 했음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그들의 본가는 ‘집’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 진정한 집은 ‘우리집’이었다.
반면 아이들이 실제로 소속되어있는 본가는 이들이 안정된 세계관을 꾸려나갈 수 있는 그 어떠한 기반도 제공하지 않는다. 인수는 아버지의 지속적인 폭력과 이를 그저 수용하기만 하는 어머니 밑에서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가족 간의 유대감도 전혀 형성될 수 없다. 집은 인간의 정서에도 큰 영향을 준다. 공간적 관점에서 안전성이 충족되더라도 정서적 안정 혹은 사회적 유대감 형성의 기능 또한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인수가 나옴으로써 빈 곳은 금세 고양이가 차지한다.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과의 유대가 형성되어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집'과 본가의 대비를 통해 나는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를 깊게 고민하게 되었다. 깨끗한 집에서 함께 사는 피를 나눈 가족이라고 해서 진정한 의미의 가족인 것은 아니라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 구성원은 서로 진정한 가족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2. 인수의 확장된 세계
한편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주인공 인수는 경우가 있는 세계에서만 유일하게 안정적이었다. 경우를 만나기 이전의 세계에서는 성연을 따라 억지로 강해 보이려 노력했다. 경우를 만났지만 헤어져 있을 수밖에 없던 세계에서는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을 갈구했다. 적어도 경우가 있던 세계의 인수는 가장 지옥 같은 시기였을지 몰라도 나름 단단해 보였다.
다만 경우를 거쳐 간 인수의 세계는 확장되었다. 성인이 되어 이호에게 ‘경우’가 되어주었으니 말이다. 불안정한 시기를 겪으며 스스로를 흠집 내는 방식으로 살아가던 이호에게 인수는 '경우' 그 자체가 되어주었다. 집을 내어주고 먹을 것을 구해줬다. 과거 자신이 경우에게 의지했던 대로 이번엔 이호가 자신을 의지하도록 했다. 이 대목에서 성인이 된 인수는 과거의 어린 인수와 분명히 달라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인수라면 여전히 본인은 타인에 의존적인 불안정한 존재라고 스스로를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느낀 인수는 분명 성장했다. 인수는 이호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이 되어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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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경우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면서 동시에 이호 같은 친구들에게 인수 같은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딘가 불안정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며 나의 세계가 그들의 세계와 맞닿을 수 있었고 그들에게서 내 모습을 찾기도 했다. 더불어 한 개인의 세계가 형성되기 위해 필요한 ‘집’을 올바르게 지어나가는 것이 어른의 무거운 숙제임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