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공연을 좋아하는 걸까? 공연예술에 입문했을 때, 열심히 고민했던 질문이다. 한참 공연예술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던 만큼 열심히 고민해 보았지만, 뾰족한 답은 구할 수 없었다. 그냥 공연 예술만의 에너지가 좋아서라며, 상투적인 답만을 남기고 질문을 마음속에 고이 넣어두고 살았다. 관극이 일상이 된 지도 벌서 3년, 사실 아직도 내 마음을 진실되게 담아낸 답을 찾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내 마음에 가까워질 수는 있었다. 가끔 만나게 되는 내 마음을 울리는 공연들이 답을 주진 않더라도, 답을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이번 여정에서 만난 공연은 연극 <고요한, 미행>이었다. 이 이야기가 좋았던 이유는 단순히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고요한과 새봄이라는 '너'의 이야기를 통해서 관객인 '나'의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었기 떄문이었다. 고요한과 새봄의 이야기는 지켜봐 주는 존재들과 관객이 있었기에 내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고, 관객들은 고요한과 새봄의 이야기를 통해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너'를 통해서 '나'를 알아가는 이야기가 좋았다.
고요한은 정말 이름처럼 고요한 사람이었다. 사회성 0에 말수도 적었던 요한은, 억울하게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온 이후에는 입을 완전히 닫는다. 말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요한의 머릿속은 고요하지 않았다. 말을 잊지 않기 위해서, '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요한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머릿속으로 수없이 "몸의 마음은 말. 말의 마음은 몸. 마음의 몸은 말."을 외우며 말을 연습한다.
어느 날, 상처라 난 자리에 딱지가 아니라 풀이 자랐다. 몸에 풀이 자랄 때마다 요한이 잘 알지만, 이미 죽은 존재들과 만난다. 어릴 때 죽은 형, 치료해주었지만 죽은 검은턱할미새, 친구들에게 찢긴 후레쉬맨, 그리고 요한이 감옥에 들어온 이유인 칼까지. 존재들과의 머릿속 수다가 익숙해질 때쯤 요한은 가석방된다. 요한은 투옥될 때 한 살이었던 딸 미리를 찾아, 미리의 친구 새봄과 함께 딸의 흔적을 쫓는 미행을 시작한다.
연극 <고요한, 미행> 공연사진 - 극단 디오티 인스타그램 @team_d.o.t
요한은 미리를 찾는 동시에 자신의 말을 되찾으려는 사람이며, 새봄 또한 자신의 꿈을 찾고 싶은 아이이다. 요한과 새봄의 미행은 미리의 흔적을 쫓는 동시에, 자신을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미리, 그리고 서로라는 '너'를 통해 '나'를 알아간다. 같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평소에는 고요히 숨기고만 있던 감정, 생각들을 말로 만들어 뱉어낸다. 나의 말을 들어줄 네가 있었기에, 두 사람은 점점 자신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요한도, 몸이 허약한 새봄도, 꿋꿋이 살아보고 싶었던 미리도, 모두 각자의 고난을 안고 힘들게 살아온 인물들이다. 그만큼 세 사람의 이야기가 결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다. 자칫하면 극 자체가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들을 <고요한, 미행>에서는 특유의 리듬감 있는 언어와 음악, 그리고 유머들로 재미있게 풀어낸다. 진지한 장면에서도 소소한 유머를 통해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그 순간의 감정을 증폭시킨다. 보통 유머는 초반부 재미를 위해 사용되고, 갈등이 절정에 달하는 후반부에서는 진지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고요한, 미행>에서는 끝까지 관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끝나는 극이기에 좋았다. 흘린 눈물도 단순히 슬퍼서 나오는 눈물이 아닌, 앞으로 요한과 새봄은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나온 눈물이기에 좋았다.
연극 <고요한, 미행> 공연사진 - 공연 온라인 프로그램북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을 요한과 새봄의 삶처럼, 관객들에게도 연극이 끝난 이후의 삶이 있다. 공연이 끝나고 눈물에 젖은 얼굴로 찬바람을 맞고 있으니, 문뜩 잊고 있던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나는 공연을 좋아하는 걸까? 이번의 대답은, 무대 위 수많은 '너'의 이야기를 통해, '나'에 대해 알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다. 외롭지 않다고 느끼니 내일을 향해 한 발짝 정도는 내디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을 살아갈 힘'을 주기에 공연이 좋았다.
<고요한, 미행>을 처음 봤을 떄만 하더라도 날씨가 엄청 춥지는 않았는데, 마지막 공연 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제법 쌀쌀해졌다. 요한과 새봄은 잘 살아가고 있을까? 서로가 있기에, 분명 둘이라면 잘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믿어본다. 언젠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관객도 삶으로 복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