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환대받지 못하는 부조리한 인간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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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이들과 다름없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이라 해서 존재를 묵살당할 이유는 없다. 최근 모친상을 당한 일 외 타인과 크게 구별되는 지점 없이 살아가던 메르소는 한 번의 재판을 통해 제거해야 할 사회의 암이 됐다. 메르소는 ‘부조리한’ 시선으로 사회적 시선을 직면했기 때문에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혔다.
메르소의 어떠한 가치관이 부조리를 전제로 하며, 어느 지점에서 사회적 괴리감을 생성할까. 그가 보인 행보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면모를 살펴보고, 이러한 모습이 어떤 방식으로 사회에서 그를 추방시켰는지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까뮈가 말하는 부조리 철학 : 인생의 무의미, 허무성, 충동성 등을 총칭하는 실존주의 철학 용어. '논리적으로 맞지 않음'을 뜻하는 사전적 의미와는 상이한 개념이다.
그저 살아가는 양의 윤리학
작중 메르소는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언급했다. 이는 달리 말해 모든 삶의 요소를 동등하게 평가하며, 각 순간을 축적한 미래에 일방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미래에 관한 염려와 걱정 없이 ‘그저’ 주어진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매 순간 관조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가 인생을 논하는 와중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때는 사형수로서 감상을 전할 때 느낀, 사형수의 신분이 아닐 시 살아갈 수 있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한순간의 설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 역시 삶의 유한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사라진다. 그만큼 메르소는 자신의 감정을 홀대했다. 작중 혹자는 그의 생활 태도를 ‘심리의 공허함’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내가 남들보다 먼저 죽는다는 것은 틀림없지만 한편,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30세에 죽든지 60세에 죽든지, 결국은 마찬가지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중략) 지금이든 20년 후이든 내가 죽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러한 편안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앞으로 20년 동안의 생활을 동경할 때 느껴지는 무서운 설렘이다. 그러나 20년 후에 어차피 그러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 내가 가지게 될 생각을 상상함으로써 그것도 억눌러버리면 그만이었다. - P.170 (이방인_자화상)
이는 삶을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 양의 윤리학의 법칙을 따르는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과 닮아 있다. 부조리한 인간으로 흔히 비유되는 배우와 돈 후안의 모습 역시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배우의 부조리함은 매번 다른 캐릭터를 마치 처음인 것처럼 살아내고 또 다시 반복하는 데에 있다. 돈 후안이 매번 다른 여성을 똑같이 사랑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즉 동일한 가치의 행위를 반복해나가는 것이다. 부조리한 인간에게는 질이 아닌 양의 개념이 중요하며, 그들의 삶은 미래가 아닌 현재로 점철돼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았을 때, 어머니의 죽음 역시 메르소에게는 언젠가는 도래할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메르소는 조금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며, 그 이후에도 시종일관 관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레이몽은 날 물끄러미 보다가 너무 상심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나에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말과 그것은 누구나 어차피 한 번 겪는 일이라고 말을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 P.53
이러한 메르소의 무덤덤한 태도는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고 격한 슬픔을 보여야 마땅한 무언의 사회적 약속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들로서 장례식에 참여해 모든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끈질기도록 양의 윤리학을 추구했다. 메르소의 내면에서 어머니의 죽음은 그저 일생에 한 번 겪는 경험 중 하나로 각인된 것이다. 이 때문에 메르소는 소외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관조적인 태도는 재판의 참여자를 비롯한 여러 인물에게 심리적 거리감을 불러일으켰으며 심지어는 영혼의 부재로 사회를 집어삼킬 수 있는 잠재적 흉악범으로 자리 잡도록 유도했다.
당사자가 부재하는 재판
두 번째로, 재판의 진행과정에서도 메르소가 갖춘 부조리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메르소는 기본적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부조리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해변가에서 사람을 살해한 죄목으로 이끌린 재판장은 메르소가 누리던 자유를 신체적, 정신적인 측면 모두에서 단단히 속박했다. 메르소에게 살인과 재판은 커다란 터닝포인트였다. 평범히 여겼던 스스로의 무덤덤한 태도는 어머니의 장례와 결부돼 그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재판장이 비춘 메르소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아닌 어머니를 죽인 패륜아였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흘리는 눈물은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음에도 메르소는 이로 인해 처벌받았다. 어느 순간 살인보다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그의 태도가 판단의 지표로 자리하게 되었다. 잘잘못을 판단하여 범죄자로 하여금 죗값을 치를 수 있도록 돕는 재판에서 메르소는 철저히 외면의 대상이었다. 자신의 죄를 심판하는 자리에서 메르소는 외부인 취급을 받았다. 진실 공방은 검사와 변호사, 두 명의 발화를 통해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 메르소는 없었다.
말하자면 재판이 나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를 참여시키지도,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나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도대체 누가 피고인입니까? 피고라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에게도 할 말이 있습니다.”라고. - P.149
재판에서 소외된 메르소의 모습은 자유를 빼앗긴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과 대응된다. 재판, 이어 감옥에서 메르소는 온갖 사회적 규율에 사로잡힌다. 부조리한 인간은 반항의 행위를 통해 유한한 인생에서의 자유를 추구한다. 부조리한 인간에게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는 사회적/도덕적 규율과 잣대이며, 이에 갇히지 않고 살아가려는 모습이 부조리한 인간이 살아가는 태도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자신을 둘러싼 감옥이라는 환경에서 메르소는 억압된 자유의 감정을 느낀다. 비록 재판관과 배심원, 그리고 방향 설정을 주도한 검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되는 입장에 처해 있었지만, 메르소는 당사자가 제외된 재판에서 목소리를 내고픈 욕구를 느끼며 자신을 둘러싼 감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일상을 열망했다.
형무소에 수감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자유로운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이었다. (중략) 그런 것을 상상할 때면 갑자기 감옥의 담벼락이 얼마나 견고하게 나를 둘러싸고 있는가를 새삼 느끼는 것이다. - P.117
사형수에게 무의미한 내세
마지막으로 내세와 종교를 거부하는 메르소의 모습 역시 부조리한 인간의 대표적인 특징이자 사회적 배척을 야기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사형 집행을 앞둔 메르소의 방에 찾아온 신부는 작중 메르소에게서 목격하기 어려운 격한 분노를 이끌어낸다. 신부는 하나님의 은총을 언급하며 구원이 함께하리라는 위로를 거듭한다. 신의 도움을 거절하는 메르소를 끊임없이 설득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메르소는 신부가 종교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세의 가치를 전면 부정한다. 메르소는 신부에게 얼마 남지 않은 현세의 생애가 중요하며 자신에겐 그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과 눈앞에 도래한 죽음에 관한 뚜렷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나는 오 힘을 다 해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기도를 그만두라고 외친 후, 당장 사라지지 않으면 불태워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나는 그의 옷깃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어떤 분노와 희열이 거세게 솟구쳐 올라 가슴속에 품었던 것을 마구 털어놓았다. (중략)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살고 있으니 마치 죽은 사람 같으며, 삶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없는 것과 같다. - P.181
이는 영원한 삶을 신뢰하지 않는 부조리한 인간의 삶과 직결된다. 부조리한 인간은 한정된 삶의 무의미성에 굴복하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영원을 인정하지 않는 부조리한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판단을 신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이 판단한다. 현재 살아가는 순간에 충실하며 내세를 가정하지 않는다. 현세에서 자신이 겪는 모든 것을 소진하며 사는 삶을 추구한다.
이는 사회 구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적 관점에서 명백히 반대 극단에 위치한 입장이다. 신에 귀의해 살아가는 이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신격모독이다. 신 혹은 죽음을 스스로가 마주한 부조리를 회피하는 행위로 간주하고 배척하는 부조리한 인간의 신념과 반대로, 신을 믿고 따르는 행위를 이상적인 행위로 여긴다. 이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 메르소가 사회적으로 도태되는 결과는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메르소는 사형수의 삶을 살게 된 시점부터 여과 없이 부조리한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대하는 메르소의 관조적 태도에서 모든 것의 가치를 동등하게 대하는 부조리한 인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억압당하는 환경에서 역으로 메르소가 추구하는 자유를 찾을 수 있으며 내세를 향한 격한 거부에서 현세의 삶을 향한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부조리한 인간이 견지하는 삶의 태도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할 수는 없지만, 일방적으로 도태되는 메르소의 모습을 살펴봄으로써 사회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돌아보면 어떨까.
[김서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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