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가 저를 좋아하는 일이, 몹시 중요해요." (p.240)
<인사이드 아웃>의 마음은 다섯 가지로 규정된다. 속편의 내용까지 포함하면 더 많아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세계관 안에서는 감정의 종류가 정해져 있고, 모든 상황에서의 감정은 그 다섯 가지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으로 말이다. 모든 마음이 그렇게 단순하게 나눠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하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우리도 모르는 새 다른 사람에게 달라붙어서 다른 감정들을 가져온다. 타인의 마음이 궁금해지고, 사랑받고 싶고,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가 궁금해지고,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원망스러워지며, 종국에는 좋아하는 마음이 못생겨 보이기까지 한다.
『나주에 대하여』는 그 마음을 하나하나 톺아보는 책이다. 나도 모르는 새에 생겨난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까지 뻗어나가서 우리를 뒤흔드는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중요한 동시에 나 자신도 너무 소중해서 둘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인물들은 왜 우리에게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다지도 중요한지, 왜 나는 하필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인지를 곱씹는다. 소설은 이렇게 좋아하는 마음을 경유하여 항상 ‘나‘만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타인이라는 세계를 감각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기 자신만 복잡한 세계이고, 타인은 내가 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하고, 미워하면서 변화한다.
마음의 이동 방향
표제작 『나주에 대하여』는 어느 날 나주가 단의 회사에 후배로 입사하면서 시작된다. 별다를 것 없는 직장 선후배의 관계이지만, 조금 다른 것은 나주가 단의 죽은 애인 규희의 전 애인이라는 것. 단은 나주의 블로그, 인스타그램, 그리고 예전에 진행했던 라디오 방송까지 가닿으며 나주라는 인간을 더 알아가고자 한다. 여기까지 읽으면 죽은 애인의 전 애인에 대한 집착 같지만, 이 소설의 특이한 점은 나주를 향한 단의 마음에 있다. 소설에서 내내 단이 말하는 ‘너’는 애인이었던 규희가 아니라 원래대로라면 단과 아무런 접점도 없었을 나주다. 자신도 모를 어떤 순간부터 단은 규희의 전 여친으로서의 나주가 아니라 나주라는 사람을 온전하게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정말로, 네가 좋았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단뿐만 아니라 새롭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단을 발견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제목은 ‘규희에 대하여’가 아니라 ‘나주에 대하여’다. 규희는 죽었지만 그를 좋아했고, 이해하려 했던 단의 마음은 남아서 다른 사람에게 엉겨 붙는다. 그 속도는 너무 느려서 자신조차 자각하지 못할 수 있지만, 불가해한 누군가에게로 마음은 계속 옮겨간다. 마음은 영원히 정체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므로.
어떤 착시의 문제
하지만 그 마음은 도리어 우리를 구속해서 우리를 구차하게 만들고, 편협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을 똑바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꿈과 요리」는 좋아하는 마음이 초래하는 오해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서로 너무 다른 두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인 솔지는 자기 꿈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활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반면 수언은 내향적이고 조용히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작가를 꿈으로 가지고 있거나 있었다는 것. 그런데 수언이 글로 상을 받게 되자 이들의 관계에는 균열이 생긴다. 소설 속 수언이 예전에 마주쳤던 솔지의 모습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드러나듯이, 이 관계는 애초부터 조금씩 왜곡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교에 다닐 무렵 수언은 그 우산을 쓴 솔지를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저런 애가 나랑 어울릴 리 없다고, 괜한 심술을 섞어 지나쳤었다, 그때 솔지는 혼자였는데. (116p)
솔지가 혼자인 게 명확히 보이는데도 수언은 저 사람 옆에 나의 자리는 없을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어떤 착시처럼,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세계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고 남아있는 빈칸을 자신만의 상상과 판정으로 채워 왔기에. 이들이 그 착시에서 풀려나는 것은 순간적으로나마 서로의 세계가 드러나는 때다. 그건 ”서로 아픈 부분을 보여줘야만 친구가 된다는 것“, 그러니까 친구가 되자는 미명 하에 고통을 공유할 것을 강제하는 것과는 다르며 저도 모르게 애정을 말하게 되는 상황에 가깝다. 수언과 솔지는 싸운 후에 연어덮밥을 먹으며 서로가 부러웠음을, 사실 자신은 보이는 것처럼 잘 살고 있지 못했음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상대방이 자신에게 꽤 소중하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들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좋아하는 마음인 셈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면서 소설 속 인물들은 타인이라는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
필연적인 실패의 리스트
『나주에 대하여』의 두드러진 특징은 거의 모든 단편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착실하게 두 사람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상연하는 작가는 예술가보다는 하나의 공식에 오래도록 골몰해 온 수학자에 더 가까워 보인다. 열등감, 죄책감, 불안감, 부러움, 동경, 당황스러움으로 칠해진 이토록 복잡다단한 관계들. 각각의 인물에 이입하거나 이미 지나온 관계들에 대입하면서 이 소설을 읽어낸 독자 앞에는 이제 한 문장이 놓인다.
"한 사람이 하나의 세계라서, 가끔 너무 무섭지 않니?" (p.170)
「근육의 모양」에는 재인의 ‘해본 것’ 리스트가 나온다. 이 리스트를 우리가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의 목록으로 바꿔본다면 『나주에 대하여』 소설 속 인물들은 이 리스트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늘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다는 마음을 함의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완벽한 이해는 필연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재인의 리스트와 달리 이것은 필연적인 실패의 리스트다. 겪어본 적 없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어렵게만 느껴지고, 타인을 똑바로 보고자 해도 시선은 계속 어긋난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이 중요하면서도 인간의 한계 때문인지 우주는 여전히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한때 소중하고 지키고 싶었던 관계는 영영 복구 불가능한 상흔을 남긴다. 하지만 이 상흔들을 우리가 좋아했던 사람들이 마음에 남긴 흔적이자 마음의 무늬라고 볼 수 있다면 어떨까. 여전히 우리의 심장은 멋대로 뛰고 원하지도 않던 상처를 만들어 내겠지만, 착실한 실패 와중에도 우리는 계속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