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연극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표현하는 캐치프레이즈는 "금지된 욕망을 향한 갈망"이다. 그리고 극 중에서 주인공 그레이스 역시 욕망해도 되는 것과 욕망하면 안 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처럼 욕망이란 이 극의 핵심이 되는 단어다.


그렇다면 과연 욕망이란 무엇일까. 이 경우에는 자주 혼용되는 단어, 욕구와의 차이점을 통해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한자어로 봤을 때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는 영어로 번역했을 때 그 차이가 두드러진다. 욕구는 영어로 needs, 욕망은 desire로 번역된다. 영영사전에 따르면 욕구(needs)는 충분한(satisfactory) 삶을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을 지칭한다. 즉 욕구는 삶을 위해 필수적으로, 기능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반면 욕망(desire)은 무언가를 강하게 원하는(want) 감정이다. 그러나 이것은 삶을 위해 필수적인 것도, 기능적으로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기능과는 상관없이, 선택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갈망 역시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는 것을 지칭함을 감안한다면, 결국 어메이징 그레이스의 캐치프레이즈는 단 하나, '욕망'이라는 단어로 함축될 수 있겠다.

 

 

어메이징그레이스(소파1)_포스터(420_594).jpg

 

 

주인공 그레이스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마지막까지 관객을 포함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관객 입장에서 이름도, 출신도, 과거도, 그 무엇도 확실하게 얘기하지 않는 그를 보다 보면 그가 정말로 실재하는 사람이 맞는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된다. 눈앞에 틀림없이 존재하는 무언가의 실재 여부에 대한 의문. 글을 쓰면서도 이게 가능한 문장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그에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의 욕망일 것이다. 그는 욕구를 채우는 삶이 아니라 욕망하는 삶을 원했다. 위작을 파는 사기를 저지르면서까지, 주어진 환경에서 조건 지워진 욕구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을 바랐다. 그리고 그것이 모호했던 그의 존재를 강렬한 실재로 만들었다. 극이 끝난 후 극 중 인물들도 관객도 그레이스가 어떤 존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욕망에 대한 인식만은 뇌리에 세게 박힌다.


이것이 이 극의 가장 큰 매력이다.

 

분명 눈앞에서 울고 웃고 외치는데도 실재하지 않는 듯한 존재에게 느껴지는 위화감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욕망하는 그의 모습이 무엇보다도 그가 내 앞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렇게 극이 마무리되고 나면, 인간의 본질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하는 것에서 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 욕망의 선(線)을 어떻게 그어야 하는지는 그다음의 문제이리라.


원종철 연출가는 이 극이 "욕망함으로써 살아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이고 작은 무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연출, 대담한 조명이나 음악의 활용까지 이 극의 매력으로 꼽힐 만한 요소는 다양하지만, 연출가의 말처럼 그레이스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극이기에 이 극은 더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을 적시하는 메시지가 이 극의 가장 큰 강점일 것이다.

 

2018년 초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2024년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분명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현재의 연출에 시대의 변화에 맞는 유연함이 더해진다면, 시대에 구애받지 않는 메시지와 함께 더 멋진 작품으로 거듭나리라 기대한다.

 


 

유지현.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