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받으며 산다.
누구는 타인에게, 누군가는 삶의 흐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럴 땐 보통 상처를 주는 주체도 모호하다. 그냥 살면서 일어난 일일 뿐이다. 누구의 탓도 할 수 없게. 아마 꽤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 모두에겐 그렇게 갑자기 다가온 상처가 있을 것이다.
내 인생 밖에 경험하지 못해서 100프로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냥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슬픈 노래, 아픈 영화, 눈물을 흘리게 되는 문장이 있는 게 아닐까. 하나둘씩 생겨나는 상처들은 처음 우리의 투명하던 마음에 흠집을 낸다. 어떤 상처는 크고, 어떤 상처는 조그맣다.
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한다. 너무너무 커서, 지울 수조차 없이 깊게 자리한 상처는 어떻게 하나, 하는.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은 어떻게 위로해주어야 할까, 하는.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이라는 노래 제목이 있다. 가수 브로콜리너마저가 부른 노래다. 제목을 보고, 내가 요즘 고민하는 그런 것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상처.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이 내 곁에 있다면, 나의 친한 친구라면 난 뭘 할 수 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리고 내가 뭘 한다 하더라도 그의 마음이 다시 투명해지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라도 하고 싶었다.
위로는 될 수 없더라도 그런 느낌 있지 않은가. '아, 그래도 내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나만 기억하는 건 아니었구나.' 그런 사실이라도 안다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숨이 트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너의 아픔을 같이 기억하고 있다고.
![[크기변환]중간이미지.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10/20241016220956_svsasypb.jpg)
그런데 어떨 때는, 지난 상처가 너무 커서 그 형체를 문장으로 다시 만들기 미안할 때도 있지 않은가? 그 생각에 닿게 되니 나는 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랬다. 너무 큰 타인의 상처는 결국 위로에 해결될 무언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말이 있어
그런 마음이 있어
말하진 않았지 위로가 되기를
이런 말은 왠지 너를 그냥
지나쳐 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떤 말도 지금은 그냥 지나쳐 갈 것 같아서. 나의 바람이 있다면 아프더라도, 아직 많이 아프더라도 너무 길게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이제 여름은 자취를 감추고 외투에 몸을 숨기는 날씨가 왔지만, 돌고 돌아 다시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이 됐지만 그래도 혼자 아파하는 시간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먼발치에서 생겨나는 나의 걱정이 쓸데없는 잡념이었으면 한다. 괜찮은데 내가 괜히 이러는 거였으면 한다. 그때는 큰 상처였더라도 나보다 강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단단해서 금세 털고 일어나 있길 바란다.
용기가 없어서, 혹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끝내 입 밖으로 위로를 건네지 못하고 글로만 풀어쓴 나의 마음이 언젠가 너에게 닿기를 바라며, 노래 가사를 마저 옮기고 글을 마친다.
정작 힘겨운 날엔 우린
전혀 상관없는 얘기만을 하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난 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브로콜리너마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