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는 만큼 값을 매기세요”
21세기의 비틀즈, 라디오헤드(Radiohead)가 정규 7집 ‘In Rainbows’를 온라인에 공개하면서 내건 한 줄이다. 현존하는 최고 밴드의 신보를 공짜로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0’을 구입가로 정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앨범 자체 발매로 올린 수익은 약 700만 달러. 거대 음반사 EMI를 통해 발매한 6집 ‘Hail To The Thief’로 벌어들인 금액을 훌쩍 넘는 수준이었다.
‘In Rainbows’는 추후 정상 발매로도 수백만 판매고를 기록하며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실험이 대성공을 거둔 셈이다. 유통사를 거치지 않고, 음원을 공식 홈페이지에 독점 공개하는 방식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줄곧 음악계를 선도해왔던, 라디오헤드 다운 컴백쇼였다.
이유 있는 자신감
2007년 10월 10일은 그렇게 앨범 머천다이징의 혁신이 일어난 날로 기록되었다. 여기엔 라디오헤드라는 이름값이 한몫했겠지만, 음악 자체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구매자들은 합법적으로, 공짜 음원을 다운로드 할 수 있다. 그럼에도 ‘0’달러가 아닌 다른 숫자를 적을만큼, 앨범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In Rainbows’는 라디오헤드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수작 중 하나다. 4집 ‘KID A’부터 본격적으로 대중들과의 밀당을 계속하던 밴드가 모처럼 호불호 없는 사운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앨범은 활동 초기의 따뜻한 밴드 사운드, 그리고 줄곧 록과 전자음악의 조합을 실험해온 결과물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덕분에 분열이 심한 팬들조차도, 3집 ‘OK Computer’와 함께 최고의 앨범으로 항상 언급하곤 한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의 백미는 ‘Faust Arp’와 ‘Reckoner’로 이어지는 구간이라고 생각한다. ‘In Rainbows’는 밴드의 15년 커리어를 총망라한 앨범이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오케스트라와의 접목을 시도한 첫 앨범이기도 하다.
젊은 거장,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음악가로 변신한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의 역량이 빛을 발했다. 웅장한 규모감의 현악 오케스트라가 쓰인 것이 인상 깊다. 전체적으로 정돈된 사운드 속, 두 트랙이 영화적인 분위기를 더해준다. 오케스트라의 합류로 비로소, 라디오헤드의 일곱 빛깔 음악 세계가 완성된 게 아닐까.
라디오헤드는 사회에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뮤지션으로도 유명하다. 줄곧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해온 이들은, 스스로 투어 진행에 따른 탄소발자국을 측정하며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인다. 혹자는 라디오헤드에 대해, ‘가장 똑똑한 밴드’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In Rainbows’의 ‘pay-what-you-want’세일즈에 숨은 뜻은 무엇일까.
“사람들을 잠시 멈추게 한 다음, 어떤 음악이 가치가 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
- 조니 그린우드, 2007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은 피지컬 앨범 시대의 종말을 불러왔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정해진 요금만 납부하면 음악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곧 앨범에 담긴 음악이, 가격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해 볼 여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밴드가 주목한 것은 이런 점이 아닐까 싶다. 원하는 만큼 가격을 정하라는 문구에, 소비자들은 멈칫하기 마련이다. 급변하는 사회 속 문화예술의 존재가치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디오헤드는 지갑을 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음악인지를 스스로 따져보게 만들자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여러분에게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 나름의 기준이 선명하다면, 여유로운 날 레코드 샵에 가보길 추천한다. 앨범들의 가격이 납득 가능한지를 짚어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리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