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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개인적으로 제일 일상에 녹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바로 독서다. 다독상을 받기도 했던 학창 시절에 비해 지금은 비록 독서를 즐겨 하지는 않지만, 흥미를 붙이고자 하는 시도는 꾸준히 해왔다. 그래서 나갈 일이 있으면 매번 서점에 들러 책 구경을 하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몇 권을 골라 대출해 오기도 했다.

 

민음사의 북클럽에 가입하게 된 연유도 이와 같은데, 그중에서도 유독 흥미가 갔던 책이 있다. 바로 이상의 시 전집이다. 원문과 해석까지 합쳐 약 6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전집을 받았을 때에는 약간의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읽고 싶은 순간에 바로 시집을 펼쳐 이상의 시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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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같은 언어인데도 알아듣기 어려운 내용과 해석이 아니라 해독을 해야 할 듯한 형태의 구조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경이로우면서도 기이한 취급을 받는 이 시인의 시를 오랜 시간에 걸쳐 읽고 또 읽어보며 그 내면을 파헤치고 싶은 마음이 괜한 도전 의식처럼 피어올랐다. 물론 문학의 감상에 있어서 답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굳이 그 부분에만 초점을 두지는 않았다.

 

 

꽃나무

 

이상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 열심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그러나 첫 페이지에 수록된 첫 시, ‘꽃나무’를 읽고 나서는 순간 머리가 마비된 줄만 알았다. 너무 학창 시절 배웠던 정형적인 현대시와 고전시가에만 익숙해져 있던 탓일까. 단 몇 줄에 불과한 시인데도 몇 번에 걸쳐 읽으며 그 문장을 이해해야만 했다. 띄어쓰기도, 줄바꿈도 마구잡이인 이 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감상은 그 뒤에 있는 시들을 읽어 나갈 때에도 똑같이 전해져왔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라는 문장의 주인이 이상이라는 점을 알게 된 순간 말고는 마치 외계어를 읽는 듯했다. 그야말로 감상을 위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특히 ‘오감도’를 읽는 시점부터는 생각을 포기하며 표류하듯이 활자 위에서 시선이 배회했다.


그렇게 책을 덮고 난 게 몇 개월 전의 일이다. 그리고 며칠 전, 이상의 괴작 중 제일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오감도’의 시제 4호가 한 대학 연구팀에 의해 해석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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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T 제공

 

 

‘오감도’ 시제 4호는 이와 같다. 뒤집힌 숫자가 마치 일정한 패턴이라도 가진 듯 나열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참 낯설다는 평을 내리지 않기는 어렵다. 읽을 수조차 없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런 시의 비밀을 ‘풀어냈다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는 문장이었다.

 

연구팀은 해석에 물리학을 접목시켜 메세지를 풀어내고자 했다. 나의 짧은 식견으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숫자가 나열된 이미지를 원통형으로 만든 뒤 도넛이 되도록 말면 일정한 곡선을 따라 숫자가 0부터 9까지 나열되는 식이었다. 이 형태에 대해 연구팀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이 세상을 진단하는 도구’로 볼 수 있다면 이 시를 설명했다.

 

이상이 물리학과 천문학에 조예가 깊었던 지식인임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무리도 아닌 듯싶었다. 그러나 내 시선에서 한 가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물리학에 관한 부분도 아니고, 그 메세지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언론과 대중들이 이 시를 마치 명확한 해답이 존재하는 미제 사건처럼 다루고 있는 부분이었다.

 

시상이 어떻고, 화자가 어떻고, 그때의 시대상이 어땠고... 정답이 없다 한들 독자의 시선에서 이러한 배경이 정해져야 이해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다. 또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수반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부분 감상은 자유지만 의도는 정해져 있고, 또 그 의도에 맞추어 감상하는 것 또한 일종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의 경우, 그 메세지에 도달하기 위해 넘어야 할 단어나 표현과 같은 장벽이 너무 많고 높을뿐더러 작품이 띄고 있는 형태 자체도 상식과는 거리가 먼 부분이 있어 현대의 많은 독자들은 그의 작품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다. 혹은 누군가가 ‘해석’해주기를 원한다. 시제 5호의 경우에도 도형 같은 그림이 들어가 있으니 마치 미스테리 추리 게임에 나올 것만 같은 수수께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언론도 이 결과에 대해서 해석 내용과 새로운 관점의 조명보다는 비밀을 풀어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주로 보도했다. 물리학 법칙이라는 고도의 도구를 활용하자 마법같이 정답이 나타난 것처럼 말이다.

 

대중들의 반응이 궁금해 댓글을 보자 역시 이상은 천재가 확실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이 해석을 마치 정답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불어 수험생들은 기출문제에 이 시가 추가될까 걱정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 또한 ‘이걸 풀어내다니 대단하네’와 같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정답이 밝혀진 것도, 이상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를 알아낸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시에 관한 해석의 새로운 지평과 관점이 열렸을 뿐이다. 연구진 스스로도 이를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 뉴스를 보고 다시 책을 펼쳐 시와 해설을 읽으니, 나는 그 이미지가 원통형과 도넛보다는 정말로 고장 나버린 이상의 한쪽 폐와 다른 한쪽의 폐 같아 보이기도 했고 단순하게 정상과 비정상이 뒤집힌 세상 같아 보이기도 했다. 또 1931년 10월 26일이라는 날짜에 담긴 함의는 무엇인지 궁금해하다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일이 연도만 다른 1909년 10월 26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현 상황에 대한 비탄이 복잡하게 담긴 진단서로도 보였다.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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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은 이 연구 결과가 나오자 ‘나는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이상의 시를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정확히는 이 세상의 모든 문학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상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재조립해 문학계에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과 충격을 제시한 것은 가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구진 또한 본인이 살아온 세상 속에서 습득한 지식과 신념으로 이 시를 바라봤고, 그들만의 언어로 이 시를 말하고자 했다. 의의는 거기에 있다.

 

나 또한 연구진이 설명한 내용을 이해할 수 없고, 또 처음부터 그런 시선으로 이 시를 바라볼 수 없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느꼈었다. 그러나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시를 바라보고, 또 몇몇의 관련된 지식을 얻게 되자 그 실망감은 순식간에 지워졌다. 되려 나는 이 시를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지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다. 시간이 흐르고, 내가 나의 세상을 살다 보면 그때의 내가 이 시를 어떻게 보고 해석하고 느낄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니까.

 

이러한 나의 사견은 내가 독서를 가까이하고 싶은 이유와 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 많은 문학과 글을 접하다 보면 이상의 글에서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으니까.

 

이상이 정확히 어떠한 방식과 의도로 이 시를 썼는지 우리는 아마 꽤나 긴 나날 동안 알 수 없을지 모른다. 아마 그 사실이 명확히 밝혀지는 날에는, 수험생들이 걱정했던 대로 이상의 시를 수능 시험지에서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험지의 지문대로만 세상을 바라보면 너무 재미없지 않겠는가.


이상이 말하고자 했던 바가 어찌 됐든 간에, 해석이 틀렸든 맞든 간에 개인의 감상은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눈동자만큼의 시선이 있으니까. 그 시선들을 살피다 보면 또 다른 지평이 열릴 수도 있고, 명확하진 않지만 희미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감정을 마주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은 하나둘씩 모여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세상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생겨났다면 이상의 시를 한 번 바라보는 건 어떨까. 예상치 못한 관점과 불현듯 다가오는 감상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모든 만물에 있어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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