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었다. 늘 그렇듯 명절이 되면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뵈러 간다. 지난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못 찾아뵈었다. 어버이날은 일정이 있어서 못 가고, 생신 때는 여름 감기에 시달리느라 건너뛰어서 오래간만에 뵈러 간 이번 추석 연휴.
봄이 요양원에서 연락이 왔었다. 할머니 상태가 안 좋다고. 그때 어르신들 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오래 버티시긴 힘들 것 같다고 들었던가. 잠시 고모네서 할머니를 모시면서 아빠가 오가면 어떠냐는 이야기를 나눴는데 할머니의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무산되었다. 아주 타이밍을 잃은 이야기가 되었다. 아빠는 할머니한테 다녀올 때마다 오늘은 괜찮으셨다, 말 거니까 알아봤다, 기억하더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가족끼리 누워만 계셔도 좋으니 좀 더 버티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어르신들 이러다가도 오래 버티시더란 말을 먼저 꺼냈다. 멀리 있다고 생각한 게 어느 날 성큼 가까워졌지만 그게 금방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는 않으셔서 이대로 기운 차리시지는 못하셔도 더 나빠지지는 않으시겠거니 하며 상황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또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이번에도 상태가 안 좋으시다고. 다음 날 가니 어쩌니 이야기가 나왔는데 다행스럽게도 상태가 나아지셨다고, 안 오셔도 될 것 같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 열이 오르면 바로 연락하듯, 요양원에선 할머니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바로 연락이 온다. 작년까지는 그러지 않았는데...
찾아갈 때마다 늘 걸어 나오셨다. 부축을 받게 되었어도 요양원 마당 정자에 앉아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다음은 휠체어였지만 아주 앉아 계시기만 한 건 아니었다. 몸이 힘드니까 쉬려고 우리에게 일찍 가보라고 하셨던 게 아마도 마지막 기억. 그런데 이번에 가야 할 곳은 침대였다. 신발 갈아 신고 장갑을 끼는 사이 가족을 놓쳐서 두리번거리자 나와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손으로 가야 할 곳을 일러주셨다. 우리 할머니도 매번 밖에 나와 계셨었는데.... 가보지 못한 몇 개월 사이 할머니는 살이 많이 내린 상태에서 침대에 누워만 계셨다. 옆에서는 요즘 식사를 잘 못 하신다고, 입에 음식을 넣어드리면 씹으시지만, 입을 잘 벌리지 않으신다고. 그래도 상태가 좋으실 땐 일반식 한 끼는 드신다고 했다.
누워서 유동식만 먹는 환자도 있는데 음식을 씹어서 먹을 수 있는 상태라니 얼마나 다행인가. 정신이 없어서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더라도 이만하면 그래도 다행이지 않나 마음을 쓸어내렸다. 아빠가 할머니의 주의를 끌며 말을 걸자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아니다. 그 눈빛은 우리가 아는 모습이었다. 요양원 내려가는 차 안에서는 경조사 휴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올라오면서는 그런 얘기가 전혀 오가지 않았다. 아주 생각 못 할 일은 아니지만 벌써부터 꺼내기엔 이른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어서.
기력이 다한다는 것, 기력이 쇠한다는 것. 사람이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기력이 소진된다는 건 이런 걸까. 기운이 없다는 말을 기력이 떨어졌다고 표현하지만 잠깐의 상태였는데, 할머니를 보면 기력이 게임의 HP 상태 창처럼 빨간색으로 바뀌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남은 기력이 없으면 삶의 스위치가 꺼지는 걸까. 그런 변화를 보게 되는 시간의 흐름이 서글프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