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죽음은 곧 생명의 순환 - 서울세계무용축제, 듀이 델 '봄의 제전' [공연]

글 입력 2024.09.12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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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wey Dell  - ph by JohnNguyen.jpeg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봄이 단순한 생명의 시작이 아니라 죽음과 재탄생이 공존하는 시기임을 강조한다. 특히 곤충, 씨앗, 곰팡이와 같은 생명체들에게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탄생임을 의미한다. 곤충은 발아하고 성장하며, 곰팡이는 죽은 유기물을 분해해 생명의 기반을 만든다. 따라서 죽음이 곧 생명의 순환을 의미한다.

 

듀이 델(Dewey Dell)은 이탈리아 소도시에 거주하며 일상의 공허함을 탈피하기 위해 세 남매가 함께 만든 예술 집단이다. 이들은 최초 내한 공연에서 자신들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작품의 모티브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작품을 접하기 전에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음악을 먼저 감상해 보길 권유한다. 불규칙한 박자와 강한 리듬, 그의 음악은 꽤 강렬하다. 듀이 델 무용단이 실현하는 예술세계와 잘 어울린다. 대사 없이 오직 몸짓으로만 표현해야만 하는 무용과 클래식 음악은 닮았다. 아주 세밀한 표현 없이 드러내기 힘들다는 점이 비슷하다.

 

필자는 작품 감상 후, 이 음악을 들었다. 무대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무용단의 몸짓이 눈앞에서 그려졌다. 만약 극을 보기 전에 들었더라면, 음악 자체에 집중했을 것이다. 봄의 제전은 무거운 분위기에 가깝다. 눈으로 감상하기 전에 청각으로 먼저 음미하고, 시각의 다채로움을 느껴보길 바란다.



Le Sacre du Printemps by Lorenza Daverio.jpg

 

 

공연을 감상하는 내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웅장한 음악은 뭔지 모를 공포에 휩싸이게 했고, 무용단이 표현하는 생물은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게 만든다. 참고로 공연이 난해하다는 의견은 전혀 아님을 밝힌다. 오히려 공연에 점점 몰입하게 되어, 무용단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세계 깊이 빠진 셈이다. 마치 관객이 무대에 난입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 정도로 무대에 푹 빠졌다. 곤충이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이미 작품의 주제를 알고 있기 때문일까.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생명을 마주하는 그 순간이 긴장 상태였다.


 

 

삶의 순환에서 관찰한 철학적인 요소


 

'봄의 제전'을 감상하는 내내 심오한 질문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왜 생명은 순환하는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절망이라는 잔상을 남기고 자기 죽음은 피하고 싶은 인생챕터로 마주한다. 사실 우리는 언제 삶의 끝을 맞이할지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변수 하나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마냥 두려움에 떨지 않길 바란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 극에서도 보았듯이, 자연에 있는 생물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가?

 

필자는 윤회론을 신뢰하는 처지에 가까우므로 그렇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윤회론은 죽음 이후에 생명이 끝나지 않고, 다시 탄생한다는 철학적인 개념이다. 우리는 자연과 똑같이 여러 번의 삶을 반복했을지 모른다. 전생(前生)에 옳은 행동을 많이 했다면 선업(善業)을 쌓은 것이고, 옳지 않은 행동으로 타인에게 고통을 주었다면 악업(惡業)을 쌓아온 것이다. 이 행동의 결과를 카르마(Karma)라고 칭한다. 윤회론과 카르마는 뗄 수 없는 개념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현생은 전생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조심스레 짐작한다. 그래야 삶의 순환 방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말이지만,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철학적인 요소라고 이해해주길 바란다.

 

 


깊은 사색이 필요한 작품


 

죽음 앞에서 경건해지는 나의 심정을 글로 풀어봤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예측불허한 삶을 돌아보게 했고, 무용단의 섬세한 몸짓은 공허한 마음을 더 헛헛해지게 만들었다. 마냥 공연을 편히 즐길 수 없었다. 평소와 같이 문화예술이라는 한 분야가 아닌, 광활한 철학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죽음을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평소 깊이 사색한 사람만이 이 무대를 무거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거다.

 

봄의 제전은 관객마다 해석하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죽음과 삶의 순환이라는 본질적인 주제는 누구나 깊이 느꼈을거라고 생각한다. 고군분투하는 곤충, 다시 발아하는 씨앗 등. 인간의 형상과 매우 다를 바 없다. 자연과 인간은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순환한다는 점은 같다는 걸 인지하며 공연을 감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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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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