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대찌개 같은 사회를 향해 -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

글 입력 2024.09.1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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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러운 말이지만 우리나라도 이제 ‘다문화 사회’구나, 라는 걸 새삼스레 느낄 때가 있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공존하며 살아가고,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언어가 들려온다. 우리나라 안에서 타국의 문화를 배우고, 접하는 일도 과거에 비해 훨씬 쉬워졌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소위 ‘외래의 것’은 과거부터 끊임없이 전파되었고, 우리 공동체에 스며들었다. 나름 충격적이고 신선하기도 했던 외국 문화와의 만남과, 외국인과의 소통의 경험은 물론이고 어쩔 수 없이 한국을 떠나야 했고, 혹은 한국으로 떠나와야 했던, 그래서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거부터 늘 존재해 왔다.


연극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외래의 것’이 전파되고 전달되었던 사람들의 경험, 그리고 여러 문화적 배경을 지닌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우리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채 경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연극은 다섯 가지의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옴니버스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상적이면서도 담담한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해외 입양 등 ‘다문화 사회’에 가려져 있던 여러 상처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오슬로에서 온 남자 포스터.jpg

 

 

연극의 첫 시작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두 남녀가 재회하는 <사리아에서 있었던 일>로 시작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만났던 두 남녀는 서울의 한 등산로에서 재회하고, ‘사리아’의 한 식당에서 만났던 벨기에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노인은 한국에는 걸을 길이 없냐며, 왜 이 먼 나라까지 와서 걷냐고 시비조로 묻는다.


“코리안들은 왜 자기 것들을 잘 쓰고 잘 간직하고 잘 키우지 못하고, 왜 걷는 것까지 남의 나라에 와서 하는 거지?”


이후 노인은 자신의 첫딸이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딸이 한국에 가본 적 있냐는 여자의 질문에 노인은 고개를 젓는다. 그의 딸에게 남아있는 한국에서의 기억이라고는, 비행기에서 울다 지쳐 잠이 드는 것뿐이었다고. 남자는 왜인지 모를 부끄러움에 식당을 빠져나온다.


극의 네 번째 이야기이자, 극의 제목이기도 한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어릴 적 노르웨이로 해외 입양된 욘 크리스텐션의 이야기로, 해외 입양의 당사자가 느끼는 그리움을 전달한다.


‘오슬로에서 온 남자’인 욘 크리스텐션은 중년의 나이에 자신이 낳아준 어머니를 찾고자 한국으로 떠난다.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전국 이곳저곳을 떠돌지만, 그는 결국 어머니를 찾지 못한다.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한 그는 매일 술에 의지하며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고, 결국 김해의 어느 고시텔에서 지병으로 죽게 된다. 연극은 그를 도와주던 자원 활동가들과 연출가가 그의 이야기로 연극을 만들고, 그 연극을 연습하는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 그의 죽음으로 잠시 연극 연습이 중단되던 차, 그가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쓴 편지가 전해지며 극이 마무리된다.


어느 집단에도 소속되어 있지 못하다는 소외감과 버림받았다는 외로움. 내가 떠난 고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과 자신의 뿌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 <오슬로에서 온 남자>는 해외 입양 당사자가 느끼는 여러 정서들을 표현해 냈다. 고국을 떠나 낯선 타지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곳에서 언제든지 ‘외국인’으로 호명될 수 있는 사람들. 어느 집단에서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었고,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해야 하는 이들이 느낄 외로움과, 결국에는 자신의 부모, 고국을 찾아 와 그 뿌리를 찾아야만 해소될 것 같다고 느끼는 그들의 그 그리움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연극은 <의정부 부대찌개> 이야기로 막을 내린다. ‘의정부부대찌개 아줌마집’ 주인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1년이 흘러 가족들이 모였다. 그들은 부대찌개에 들어가는 가지각색의 재료를 열거하며 의정부식 부대찌개와 송탄식 부대찌개를 논한다. 가족들은 주인 할머니를 회상하다, 할머니가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띠하’를 자기 딸처럼 받아준 이야기를 나눈다. 한국에서 태어난 띠하는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오고, 어머니가 죽은 후 갈 곳이 없어져 할머니의 부대찌개 집을 찾는다. 할머니는 띠하에게 말없이 밥을 내주고, 자신을 고용해달라는 띠하의 부탁을 들어준다. 띠하는 할머니의 1주기 제사에도 가족처럼 참여하고, 일을 도우며 할머니의 가족들 역시 띠하를 ‘할머니의 손맛을 기억하는 이’로 신뢰하며 가족처럼 의지한다.


한국인 딸을 입양한 외국인 남자를 보며 느낀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이 연극은 결국, 가족들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띠하가 의정부 부대찌개 할머니 가족들과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한국의 부끄러운 현실, 배제와 단절의 이야기가 종국에는 소통과 화합, 포용의 이야기로 변주돼 마무리되는 것이다. 소위 ‘다문화 사회’가 되어가며 우리가 쉽게 잊고 살았던 상처와 아픔을 주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희망찬 미래도 함께 말한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여러 재료들 - 개중에는 한국 전통음식도 있고, 미국 등 서구권 음식 재료들도 있다 -이 섞여 맛을 내는 부대찌개.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사회는 모든 것들이 한데 섞이고 뒤엉키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부대찌개’ 같은 사회라고 이 연극은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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