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영상의 언어 - 빨간 루비 구두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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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가장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주인공 홍해인이 잠시 정신을 잃는다. 화면은 현실에서 벗어나 눈이 내리는 혼란스러운 곳으로 바뀐다. 이때 카메라가 담은 장면은 홍해인이 신은 신발이다.
흰색의 소복이 쌓인 눈에 선명하게 대비되는 빨강 루비 구두이다. 반짝이는 높은 빨강 구두, 어디서 본 것 같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가 신은 빨간 구두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어쩌면 “returned to home”으로 제목이 붙여졌어야 할 The Wizard of OZ(1939)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 빨간 구두는 영화와 최근의 드라마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주인공이 도중에 길을 잃었음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The Wizard of OZ(1939) 영화를 보았다면 빨간 구두가 영상의 언어가 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빨강 구두는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스토리텔링의 문법과 영화 산업의 문법 모두에서 앞으로 이렇게 큰 힘을 지닌 상징 언어는 나오기 어려울 정도로 큰 가치가 있다. 운 좋게도 이 구두를 실제로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역사 박물관에서 내 눈으로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즈음에 한국인을 가장 설레게 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 드라마에서 비슷한 상징을 가지는 빨간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돌아가야 할 곳으로 돌아가기 위한 상징의 언어가 되다.
단순한 영화 소품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 1900년 출간된 L. 프랭크 바움이 쓴 아동문학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원작에서 주인공 도로시의 신발은 은색이었다. 빨간색은 영화라는 새로운 매체에 맞게 효과적으로 서사를 전달하기 위해 바뀐 부분이다. 현실에서 벗어나 마주하는 노란색 벽돌 길과 더 눈에 띄는 대비를 이루기 위해 빨간색이 선택된 것이다. 금(노란색 벽돌 길)과 은의 대조를 위해서 원작에서는 은색으로 신발색이 사용되었다면 영상의 언어는 두드러지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다른 문법을 사용해야 했다.
“Hollywood’s The Wizard of Spoke to a nation facing an uncertain future.” 집을 떠나 모험을 하게 된 서사 구조는 많은 것을 내포한다. 박물관은 불확실한 경제적 미래를 마주해야 했던 미국 국민의 관점에서 영화가 지닌 의미를 풀어냈다. 영화가 제작된 당시 1930년대 미국은 경제 대공황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이때 도로시가 모험을 위해 밟게 된 노란 벽돌길은 극복해야 될 도전의 길로 여겨진다. 빨간 구두는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중요한 장치이기에 희망을 상징한다. 이는 집을 떠나 마주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과정으로 도로시의 여정을 이해한 것이다. 집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함으로써 잃어버린 가치를 다시 찾도록 하며, 행복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음을 전달한다. 오즈가 떠난 여정을 혼란스러운 위기의 시간으로 해석한다면 어떤 어려움에도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도 전할 수 있다.
"집은 항상 안정적인 상태로서 좋은 의미만을 지니는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이 떨어지지 않기에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핵심 장치인 빨간 구두를 이중적인 의미로 바라보게 되었다. 현실(집)과 판타지(꿈)의 세계로 이분화해서 도로시의 여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학에서 상징의 언어로 빨간 구두를 둘러싼 해석의 본질은 ‘집으로의 회귀를 긍정적으로 볼 것인가’ 혹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의 범위를 축소하려는 시도’로 볼 것인가’에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도로시가 ‘집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를 구두를 바닥에 내리치면서 세 번 외치는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를 보고 자랄 어린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결과적으로 ‘집만큼 안전한 곳이 없다’ 라면 집 밖에 있는, 현실 밖에 있는 것을 꿈꾸지 말고 주위의 행복에서 만족하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도 있다. 주인공 도로시가 여행을 하며 스스로 배운 것에 대해 ‘아줌마 아저씨를 보고 싶다는 그것만으로는 (돌아가는 동기가) 충분하지 않으며 무언가 진정으로 마음으로 바라게 되는 것이 있다면 집 뒷마당보다 더 멀리 나가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에 도로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도로시에게 도로시의 여정에서 집, 즉 현실은 반드시 돌아와야 하는 공간으로 제시된다. 환상보다는 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얼마나 새롭고 즐거운 모험이었든 간에 혹은 여러 등장인물들과 유대관계를 쌓으면 배운 것들이 있다고 한들, 도로시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목적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이 주인공 도로시에게는 극복해야 할 공간이고 여정의 세계야말로 꿈의 공간으로 읽힐 수도 있다. ‘Bruno Bettelheim’이 제시한 ‘fairy tale, 동화’의 정의를 보면, 현실 세계에서는 아이들이 어른과의 대결에서 ‘을’을 차지하고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특징이 있다고 제시했다. 이에 환상의 공간에서는 갑으로 제시되는 ‘갑’인 어른을 상대로 승리하여 ‘을’인 아동에게 쾌감과 대리만족을 주는 것이 아동문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즈의 현실은 어른에게 당하는 공간으로도 볼 수 있다. 영화에서 도로시는 현실에서 어른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해서 이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피해자로서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어른과 아이가 동등해지는 환상의 세계로 먼치킨 랜드를 바라본다면, 이는 아이들에게 위계질서가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이 가미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영화는 원작과 다르게 모두 꿈이었음을 결말로 보여주었다. 이로써 영화는 도로시의 ‘꿈’이라는 결말 장치를 이용해 현실과 환상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었다. 도로시의 환상을 ‘꿈’이라는 비현실적인 공간에 완전히 닫아서 제시하여 현실을 더욱 중요시했다고 볼 수 있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한 도로시의 모습을 읽었다면 집으로의 회귀가 마냥 희망적인 의미를 담을 순 없다.
도로시가 무엇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관객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현장을 포착하는 기계로서 여겨지던 영화가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할 만큼 의미 있는 서사를 담을 수 있는 예술로서 받아들여지기까지도 시차가 있었다. 그 시차를 극복한 작품으로서도 의미가 있다.
할리우드의 아이콘이 되다.
“Over the rainbow” 도로시 역의 주디 갈랜드가 부르는 노래, 흑백의 장면에서 화려한 색채를 담은 세계로 문을 여는 장면은 이미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1939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빅터 플래밍’ 감독의 영화, “The Wizard of OZ(1939)”는, 영화적인 모든 요소에서 볼드체를 그을 수 있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는 시기에 제작된 뮤지컬 영화라는 점, 흑백에서 컬러로 전환되는 장면을 갖고 있는 역사적인 의미, 아동을 주요 타깃층으로 한 최초의 영화지만 노동 착취로 드리운 어두운 현실, 주디 갈랜드와 같은 스타를 만든 할리우드 스타시스템이 적용된 영화이기도 하다.
당시의 영화 제작 환경을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서의 의미도 있기에 영화 속 소품들은 영화의 전개에만 중요할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프레임에서도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최초의 컬러 영화는 아니지만 특히 전환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흑백에서 컬러로의 전환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이목을 끈 작품이라는 점에서 빨간 구두의 의미는 더 큰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경제적으로는 암울한 시기였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관점에서 1930년대는 제작, 배급, 상영을 수직으로 계열화한 할리우드 시스템으로 영화 제작의 전성기였다. 할리우드가 미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게 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시작이 되었다. MGM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영화사로 엄청난 자본을 들여 오즈의 마법사를 제작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Smithsonian Museum) 중 하나인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에서 엄청난 가치를 자랑하는 실무 빨간 구두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시관의 시작점이 빨간 구두와 오즈의 마법사인 데에는 그 이유가 있었다.
영화 공장이 된 할리우드 시스템 속에서 제작되었기에 ‘영화’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주춧돌이 되는 영화이다. 영화제작 과정에서부터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할리우드는 공장이었고 영화는 제작품이었다. 사람들의 인권이 아닌 경제적 효용성에 관심을 가진 시스템이었다. 노동 착취,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위험한 방식의 촬영, 화려한 옷과 분장을 감당해야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은 누군가에겐 영화는 악몽으로 기억되게 했다.
여러 가지 미스터리와 음모론 속에서 영화가 갖는 가치에는 얼룩도 많다. 그 얼룩을 해석하여 나아가는 것은 앞으로의 세대에게 남겨진 몫이었다. 그렇기에 서사의 면에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면에서 빨간 구두는 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주인공 도로시를 집으로 돌아오게 한, “Ruby Slipper”, 일명 빨간 구두는 새로운 시도와 어두운 문제를 동시에 지닌 당대 할리우드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
상징의 언어
The Wizard of OZ(1939) 영화는 아동문학을 영화로 재현했다는 문학사적 의의와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의의를 모두 지닌다. 영화 속 여러 요소들은 역사적 사실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과 상징이 되어 다른 연극과 콘텐츠에서도 발견된다. 주디 갈랜드 또한 하나의 상징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시카고에서 관람한 연극 “The Rise and Fall of the Little Voice”의 무대 세트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주디 갈랜드 포스터였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이를 단순히 돈벌이로 여긴 어른들의 폭력성으로 인해 생겨버린 비극이 주된 내용이다. 연극을 보기 전에는 내용을 예측하게 했고, 연극을 보고 나오면서는 소품이 가진 상징성을 이해하게 도와주었다.
빨간 구두에 대한 해석이 분명하면 이는 상징(symbol)이 아니라 우의(allegory)이다. 상징은 하나의 진술로써 명명될 수 없고 다양한 해석과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독자들은 자신만의 경험과 관점에서 상징의 깊이를 다르게 해석할 수도, 같은 의미를 두고도 다른 깊이로 파악해낼 수 있다. ‘상징’이라는 언어가 가진 매력이다. 자료를 찾아 보면서 내게는 보이지 않던 많은 상징의 언어를 새로 알게 되기도 했다. 개인이 가진 깊이 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에 올바른 해석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곱씹어서 생각해야만 감이 잡히고, 시간이 지나면 또 달리 느껴지고, 옆 사람의 해석으로 같은 작품도 다르게 보이는 경험은 상징의 언어를 읽는 연습의 시간이 된다. 고전영화와 화제의 드라마에서 발견한 빨간 구두는 현대의 독자에게도 상징을 읽어 내는 마음의 힘을 키워줄 언어이다.
[신가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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