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원형 밖의 이야기, 터전 밖의 사람들 - 해방자들

글 입력 2024.09.0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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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에게 가장 익숙한 것을 찾게 된다. 내가 직접 경험했거나, 주변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거나.


나에게 익숙한 것은 한국인과, 소설가다.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보다는 한국인, 다른 글을 쓰는 사람보다는 소설가가 낯익다. 한국인은 내가 한국인이어서고, 소설가는 내가 가장 많이 읽는 글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 둘의 그 뒤를 이어서는 한국이 아닌 국적의 사람들이라거나 소설이 아닌 다른 형태의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겠고 그 자세한 순서는 알지 못하나 무엇이 가장 끝에 서 있는지는 알고 있다. 여러 나라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 그리고 여러 형태의 글을 쓰는 사람일 것이다.

 

 


<해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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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라는 키워드는 언제나 내 관심을 끌기에. 이번에 읽은 소설 <해방자들>도 그래서 내 손에 들어왔다. 이건 그냥 디아스포라도 아니고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로 수식되어 있었고, 문예창작, 번역, 그리고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작가 소개와 하나같이 그의 표현 능력을 칭찬하는 추천사에 기대가 컸지만, 솔직히 말해 내 기대와는 다른 책이었다.


내게 책 <해방자들>은 한국인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인물들의 말투도 그렇고 정서적 부분도 그랬다. 소설 같지도 않았다. 표현이 그랬고 형식이 그랬다. 내가 이 책을 편히 읽지 못하는 것의 이유가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며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의 저자가 한국계 미국인이어서 한국만의 정서와는 다른가, 아니면 소설보다 시를 먼저 썼기에 그러한 색이 여전히 묻어 있는가, 아니면 번역을 하는 만큼 두 언어를 다 탐낼 능력이 있기에 이런 일이 생긴 건가. 책을 다 읽고 덮은 지금 생각하기로는, 이 세 가지 이유 모두인 것 같다.

 

 


원형


 

우리는 너무나 광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편법을 쓴다. ‘원형’을 정해 두고 세상의 모든 것을 분류한다. 너는 이것과 닮았으니 여기에 들어가라, 너는 저것과 닮았으니 저기에 들어가라. 그게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고, 보지 않은 세상을 상상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모두에게 터전을 마련해주지만, 모두를 그 터전에 가둔다.


그리고 <해방자들>은 그 터전을 벗어나는 책이다. 한국인이 주인공이지만 그들은 내가 보아온 한국인과 다르다. 소설이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시에 가까운 구석이 많이 보인다. 한국인의 원형과 소설의 원형을 벗어났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 사람의 이야기도 아니고 시도 아닌, 터전 밖의 일이기에 내 상상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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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를 경험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소설 속 인물들은 기존의 터전을 나오게 되었을 때 ‘인숙’의 가족처럼 새 터전에 정착하기 위해 애쓰거나, ‘로버트’처럼 옛 터전을 다시 일구기 위해 애쓴다. 반면 이도 저도 하지 않고 나만의 작은 텃밭을 가꿀 수도 있다.

 

 

 

개개인의 원형


 

인숙의 남편 ‘성호’는 어린 시절 자신을 두고 떠난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래서 어느 날 자신의 아들 ‘헨리’가 눈에 보이지 않자 그가 자신을 떠났을까 봐 걱정한다. 그러나 헨리는 떠나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바닷가를 찾아다니고서 이틀 뒤, 성호가 차도에 서 있는데 언덕 너머로 제니와 하루가 폴짝거리며 뛰어왔다. 둘 사이에 헨리가 있었다. 아들의 말을 알아듣기는 어려웠지만, 따스한 어조는 익숙했다. 성호는 멀리서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제니와 하루의 웃음소리가 귀에 닿자, 성호는 제니가 한 번도 헨리가 사라질까 봐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260)

 

 

성호가 자신의 아버지를 원형으로 두고 거기에 제 아들을 겹쳐볼 때, 헨리의 아내인 ‘제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헨리가 아무리 자유로운 사람이고 머무르지 않는 사람임을 아는 만큼, 그가 떠나지 않을 것도 안다. 누군가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남편인 헨리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이었던 어느 남자와 별개의 인물이다.


많은 이야기 창작자가 간과하고, 심지어는 현실의 많은 사람들도 간과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의 원형이다. 이 소설은 그 점을 놓치지 않는다. 누구라도 원형이 될 수 있다. 명확한 주인공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모든 등장인물과 엮여 있는 인숙이 있긴 하나, 그렇다고 독자가 그에게 이입할 기회가 주어지거나 그가 사건의 중심에 서 있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소제목으로 달고 나온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다. 모두가 개개인의 원형이고 개개인의 조그만 터전을 가지고 살아간다.

 

 


김지수_아트인사이트컬쳐리스트.jpg

 

 

[김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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