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드보일드하지 않은 현명한 수사와 현실적인 죄인들을 만나보십쇼 - 도서 '캐드펠 수사 시리즈'

글 입력 2024.08.29 13:0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책을 오락으로 즐길 수 있을까?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셜록홈즈보다는 드라마 셜록이 더 장벽이 낮고, 캐드펠 수사 시리즈 보다 드라마 캐드펠이 더 기대된다. 독서는 즐겁지만 다른 매체와 비교해서 기본적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나는 그런 가성비를 계산해서 오락적 즐거움을 목적으로는 다른 매체를 선택해왔다. 같은 추리 장르의 오락을 즐기고 싶을 때 머더미스테리 보드게임이나 추리 게임, 혹은 추리 드라마를 선택해왔다는 뜻이다.

 

그런 독자로서 오늘 리뷰할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상당히 신선한 경험을 줬다. 왜냐면 내가 앞서 대신 선택해 왔던 것들만큼, 혹은 그보다 순수하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이 경험은 나한테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책이 순수하게 재밌다"라니? 어떤 학습적 목적, 깨달음의 목적 없이 순수하게 책을 즐겼던게 언제였던가? 글쎄, 야자 시간에 몰래 드래곤 라자나 룬의 아이들을 읽었던 시절?

 

그때를 기억하게 할 만큼 이 책은 정말 재밌다.이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나는 다섯 권의 책을 불과 2주 전에 배송받았다. 그리고 캐드펠 시리즈는 한 권당 250~350페이지다. 그리고 나는 다른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하게 바쁜 사람이다. 봉투에 가득 차있는 책들을 보면서 후회하는 감정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느새 다 읽었다. 그것도 엄청나게 재밌게. 이게 가능한 일인가? 최소한 나한테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엄청난 속독 기술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이 책이 정말 재밌어서 그랬다. 내가 추리소설 매니아인가? 절대 아니다. 셜록은 읽어본 적도 없고,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고등학생 때 10퍼센트 쯤 읽다 포기했다. 하지만 이 책은 술술 읽힌다.

 

그래서 나름대로 이 책이 재밌었던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분석해봤다.

 

첫 번째가 가장 강력한 이유다. 캐드펠 수사라는 인물이 정말 너무나 매력적이다. 캐드펠 수사는 일반적인 탐정소설의 하드보일드 형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매력적이다. 비슷한 장르의 탐정이나 형사들과 마찬가지로 캐드펠 역시 합리적이고, 정의를 추구하고, 유연한 사고를 한다. 하지만 다른 형사들과 다르게, 그는 온정적이고 종교적이다.

 

그는 합리성을 기반으로 종교의 신실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가 권위적이고 때로는 종교적 환상에 집착하지 않는 수사라는 것이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에서 드러나고, 처단이 아닌 관용을 베풀 수 있는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는 자라는 것이 '수도사의 두건'에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수도사의 두건'에서 범인을 대하는 캐드펠의 행보가 정말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인물 묘사, 상황 속에서 도덕과 양심을 순발력 있게 선택하는 캐드펠은 시리즈 내내 독자의 호감을 샀지만, 이 시점에서 그는 현명한 수사다운 선택을 했다.

 

캐드펠의 시선에서 사건과 인물을 보기 때문에, 그의 세계관이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감싼다. 캐드펠이 죄를 대하는 대전제, 다섯 권을 기준으로 사건의 척추를 맡는 메시지를 하나 정하라고 한다면 "모든 죄는 철저하게 현실적이다."이다. 그래서 캐드펠은 죄를 저지르건 저지르지 않건 그대로의 인간을 바라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캐드펠이 자신이 진심으로 믿는 종교에 대한 관점이 마음에 들었다. 캐드펠 역시 기적을 믿는다. 하지만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현할 인간의 손이 필요하다. 우연히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운이 선의의 결말로 맞닿을 때, 그는 작게 성호를 긋는다.

 

사실 다섯 번째 책까지는 수사에게 갖는 의문들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지금으로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성전사의 모습이나, 누군가의 연인이었을 모습은 내가 읽은 부분까지 설명되지 않는다. 전 연인이 등장하긴 하지만, 수사가 된 그는 그녀에게 약간의 추억과 깊은 애정을 느끼지만, 애욕과는 분명히 거리가 멀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전쟁에서 누군가를 찔렀으리라고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단검을 젊은이에게 건네주지 않았는가.

 

이런 부분은 앞으로 전개되는 소설에서 해결되지 않을까 싶다. 당장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에서만 해도 캐드펠의 진정한 성격적인 특징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캐드펠의 감춰진 이야기는 앞으로 나오는 번역본을 기대해본다.

 

둘째, 세계관과 등장인물을 서서히 넓혀가는 솜씨가 발군이다. 캐드펠 하나가 매력적이고, 짜임새 있는 사건이 제시되는 데에서 끝난다면 시리즈가 될 수 없다. 명탐정 코난이나 김전일 같은 작품은 아무래도 현대고 사건을 위주로 전개되다 보니 이런 부분이 부족하긴 한데, 조금이라도 조미료처럼 쳐진 세계관이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캐드펠에도 살인사건 외에 동시에 전개되는 맥락이 있는데, 영국의 정치와 수도원 내 정치다. 영국 역사에 많은 걸 알고 있지 않은 입장에서 실제로 이 소설이 현실과 얼마나 닮았는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소설 내에서 묘사되는 현실은 상당히 생생하다.

 

사실 이런 정치적 맥락을 가져온 것은 작가로서 달리 선택지가 없었을 수도 있다. 캐드펠은 형사나 행정부 장관이 아니라 수도원의 허브를 키우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수사가 흉흉한 사건과 연결되기 위해선 어떻게든 외부에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이 연결을 만들어가는 부분을 찾는 것도 상당히 재밌다.

 

예를들어, '유골'에서는 수도원 내 정치를 파악한 캐드펠의 호기심이 사건에 휘말리게 했고, '시신'에서는 그의 수도사로서의 사명과 특유의 집요함이, '성축일'에서는 유능한 번역가이자 수도원의 관련인으로, '수도사의 두건'에서는 범행도구의 제공자로서, '나환자'에서는 불운으로 엮여 들어간다. 이렇게 나열하고 있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전개되어서 수사인 캐드펠이 왜 사건에 연루되는가에 큰 의문을 갖지 않게 한다(물론 행정 장관이 왜 당신이 개입하느냐고 초를 치긴 한다. 그래서 작가는 휴 베링어를 넣었다.).

 

캐드펠은 사건에 연루하면 연루할수록 몇몇 사건들은 상당히 정치적인 사건이 휘말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와 관련된 인물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외부세계와 관계를 맺게 된다. 살인 사건을 통해 정치적 내전에 휘말려가는 캐드펠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셋째, 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입체적이고 생생한 캐릭터 묘사다. 한 권당 5명에서 6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중 한 두명이 이후 권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하지만 앞서 말한 죄의 대원칙에 따라 각 캐릭터는 각자의 동기에 의해 행동하는 생동감 있는 인물이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살인사건은 화려하지 않다. 그 당시에 있을만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독자로서 거의 없다시피 하다. 지문채취도, CCTV도 없던 시절 수사가 화려했을 것 같지도 않다. 일견 단순해 보이는 살인사건을 흥미롭게 하는 것은, 사건 전, 중, 후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으레 할만한 행동들이다. 내가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 가장 만족하는 것이 사람들의 합리적인 행동이다. 범죄 동기부터 반응까지 현실적이다. 진짜 수사에 참여하는 것 같은 느낌은 실제 사람들과 같은 캐릭터의 행동들 덕분이고, 각 캐릭터가 소설의 처음과 끝에서 모순되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골'에서는 일관적이고 깔끔한 묘사가 특히 돋보인다. 범인을 알고 처음부터 읽으면 내가 왜 이렇게 설명하는지 금방 납득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실에 맞춰 캐릭터에 과장을 전혀 섞지 않는 것도 아니다. 로버트 부수도원장이나 휴 베링어, '나환자'의 문둥이 노인은 현실적이지만 매력적일만큼 과장했다. 솔직히 '나환자'의 일부 부분은 무협소설을 보는 것 같은 과장이 있었지만, 캐드펠 수사의 현실적인 분위기와 대조되어서 오히려 정말 멋있어 보였다. 정말 이 부분은 읽어봐야 안다.

 

최대한 스포를 피하면서 쓰고 있지만, 솔직히 이 글을 읽고 책을 읽었을 때 내가 느낀 납득되는 반전들을 즐기지 못할까 걱정되긴 한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느낀 바를 열심히 썼다. 내가 뭉뚱그려 쓰지 않고 내가 좋았던 부분을-약간의 재미를 꺾는 한이 있더라도- 적극 쓴 이유는, 긴 시리즈를 시작하기 정말 어렵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책 다섯 권을 받고 약간의 후회의 감정을 느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재밌다. 캐드펠의 행동에 약간 감동할 수도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마무리에 묘한 감정도 느낄 수 있다. 몇 번이나 말하지만, 나는 최대한 스포를 안 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큼의 재미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의미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일방향으로 읽어가는 소설에서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은 어느 보드게임 못지않게 재밌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거드럭거리지 않고 정말로 정의롭고 따뜻한 캐드펠이 다른 형사와 비교 안 될 정도로 멋있다. 아니, 당신도 내가 여기까지 말하는데 한번 읽어보는 건 어떨까?

 

 

20240828103007_xqsvdgzq.jpg

 

 

[이승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10.1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