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19세기에 셜록 홈즈가 있다면, 중세시대엔 캐드펠 수사가 있다 - 도서 '캐드펠 수사 시리즈'

역사와 추리가 절묘하게 조화된 역사추리소설 최고의 걸작
글 입력 2024.08.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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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의 매력은 하나씩 퍼즐처럼 맞춰지는 사건의 진상에 있다. 어느날 발생한 의문의 사건, 해결의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던 거대한 어둠의 베일이 점차 벗겨질 때. 그리고 결국 그 모든 자초지종이 밝혀질 때의 카타르시스가 대단하다.

때론 아주 작은 단서가 모든 사건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삶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고, 채 완결되지 못한 희생자의 마지막 순간을 온전히 닫아주는건 또 다른 살아있는 자의 몫이다. 얼핏 보기에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평범한 순간들 사이에서 세심한 관찰력과 끈질긴 추리력으로 탐정은 일종의 어떤 ‘연결고리’를 찾아낸다.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탐정의 시선을 따라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전개에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어진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영국 BBC 드라마 <캐드펠>의 원작이자 전세계 22개국에서 번역된  역사추리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은 12세기 중세 영국의 슈루즈베리 수도원, 주인공 캐드펠은 신에게 자신을 의탁한 수도사이다. 작품 속 묘사에 따르면 ‘작달막하고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는 체구에 햇빛에 그을고 험한 기후에 단련된 듯한 외모의 중년 수사’인 그는 그러나, 경건한 수도사이기 이전에 어딘지 모르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모험가 같은 인상을 풍긴다.

작중에서 캐드펠은 젊은 시절 십자군 전쟁에 참여하고 10년 동안 배의 선장으로 바다를 누볐던 파란만장한 삶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인데, 이는 덜리 지역 약국의 약 조제사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해군으로 참전했던 저자 엘리스 피터스의 삶의 경험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한때는 세계를 누비는 모험가였으나, 현재는 수도원 안의 텃밭에서 허브를 재배하며 고요한 삶을 살고 있는 캐드펠에겐 ‘바깥 세상이 혼란에 빠져도 자기가 맡은 땅만큼은 황폐해지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소박한 결심이 있다.

하지만 그의 주변에서 의문의 사건들이 발생하고, 캐드펠 또한 소용돌이치는 세상의 흐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개인이었다. 수사를 위한 과학 기술이나 전문 인력도 전무한 12세기의 중세시대, 캐드펠은 삶의 경험을 통해 축적한 통찰력과 특유의 관찰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사건의 진상을 밝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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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 배경은 1137년,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병화롭게 허브밭을 가꾸며 신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캐드펠 수사에게 귀더린의 성녀 위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라는 임무가 부여된다. 부수도원장을 위시해 귀더린으로 떠난 수사들은 귀더린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맞닥뜨리고, 급기야 반대파를 대표하던 영주가 화살에 맞아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만다. 

2권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에 왕위를 둘러싼 혈전이 벌어지던 1138년의 잉글랜드. 전쟁의 피비린내와 매캐한 연기는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에도 음산학 내려앉는다. 아흔네 명의 포로가 처형당한 끔찍한 밤이 지나고, 시신의 수습을 위해 파견된 캐드펠 수사는 시신이 한 구 더 있는 것을 발견한다. 미지의 시신을 둘러싼 진실, 그리고 공포와 의심, 협잡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

3권 수도사의 두건 - 전 재산을 기탁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겠다고 수도원에 찾아온 한 주가 독살을 당한다. 그리고 범행에 쓰인 독극물은 캐드펠 수사가 '수 도사의 두건'이라는 풀로 제조한 맹독성 약물임이 밝혀진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하는 캐드펠 수사 앞에 피해자를 둘러싼 거미줄처럼 얽 히고설킨 복잡한 가족사가 펼쳐지고, 그 한가운데에는 젊은 날 캐드펠 수사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가 서 있는데·······.

4권 성 베드로 축일 -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슈루즈베리에서 성 베드로 축일장이 열린다. 축일장의 수익 배분을 두고 수도원과 시민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각지에서 내로라하는 장사꾼들과 구경꾼들로 오랜만에 활기를 띤 슈루즈베리. 삼 일간의 축일장을 준비하던 중 한 거상이 알몸으로 단검 에 찔려 죽는 사건이 벌어지고, 피해자의 아름다운 조카딸과 캐드펠 수사는 진상을 밝히기 위해 영리한 게임을 시작한다.

5권 세인트자일스의 나환자 - 오만한 늙은 남작과 어린 고아 상속녀의 결혼 행렬이 수도원을 찾 는다. 이 행렬을 지켜보는 의미심장한 눈빛들 속에서 캐드펠 수사 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혼례식 전날 밤 신랑이 처참하게 살 해당하고, 현장에서는 누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몇이 발견되는데....... 사건의 진상을 추적하던 캐드펠 수사는 진정한 안식을 찾아 고행의 여정을 수행하는 한 늙은 영혼의 마지 막 결투를 목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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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영국을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한 치밀한 묘사, 화려하면서도 쉽게 읽히는 문장, 빠르고 다채롭게 전개되는 스토리, 탄탄한 구성과 함께 이 작품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사건을 풀어가는 ‘탐정’ 캐드펠 수사의 시선이다.

작가는 사건을 풀어가는 캐드펠 수사를 통해 삶과 죽음, 인간군상 하나하나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인간적인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달한다. 캐드펠 수사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때론 신의 연민과도 닮아 있는 깊은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언제나 이야기는 밭에서 허브를 재배하는 캐드펠 수사로 시작한다. 그 모든 사건을 겪고도 다시 캐드펠 수사가 묵묵히 다시 돌아와 가꿀 흙에선 순환하는 삶과 죽음, 죽은 자와 그럼에도 삶을 살아가는 자들로 이루어진 세상의 흐름이 느껴진다.
 
막힘 없이 술술 읽히는 문장과 물 흐르듯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고 있는 본인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눈 앞에 중세시대 영국이 그대로 펼쳐져 있는 것만 같은 섬세하고 매끄러운 묘사는 덤이다.

 
전쟁의 위협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성과 마을에 드리웠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캐드펠 수사는 파멸과 전쟁보다는 삶과 생장 쪽에 마음을 쓰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방식의 살인, 이렇게 무질서한 시대에조차 허용되지 않는 은밀한 살인이 그가 선택한 삶의 평온을 깨뜨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였다. (...)
 
“우선 완두밭부터 일을 시작하자. 마른 줄기들을 베어내서 한 켠에 쌓아라. 나중에 마구간이나 외양간 바닥에 깔릴 거야. 뿌리는 흙으로 되돌아가고.”

“인간들이 그러하듯요.” 고드릭이 불쑥 말했다.

“그래. 인간들이 그러하듯.” 이 골육상잔으로 너무도 많은 이들이 때 이르게 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삶이란 전쟁이나 재앙이나 죽음에 의해 침범당하기를 거부할 때만 지탱되는 것이기에, 수사들은 기도며 수도회 평의회며 미사며 노동이며 가리지 않고 자신들이 선택한 조직체의 일상을 열심히 이어갔다.

- 캐드펠 수사 시리즈 2권 ‘시체가 한 구 더 있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편은 2권 ‘시체 한 구가 더 있다’ 편이었다.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 간에 왕위를 둘러싼 치열한 혈전이 벌어지던 1138년의 영국, 끝내 항전하던 모드 황후 지지자들의 성이 함락되고 스티븐 왕은 성의 수비대였던 아흔네 명의 포로들을 전원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시신의 수습을 위해 파견된 캐드펠 수사는 시신이 한 구 더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 신원미상의 시신의 정체를 밝히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뤘다.

스티븐 왕과 모드 황후의 권력 다툼, 자신만의 신념과 이익을 위해 뒤엉키는 운명들, 그리고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사랑 등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중간의 반전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편이었다.

정세랑 작가의 서평을 끝으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있게 이 책을 추천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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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에, 학교 도서관에서 처음 '캐드펠 시리즈'를 읽었는데 완전히 푹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21세기 한국의 고등학생이 12세기 영국의 수도사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책을 펼치면 캐드펠 수사가 가꾸는 허브밭의 싱그러운 향이 미풍에 실려 오는 것만 같았고, 부지불식간에 이웃처럼 정이 든 마을 사람들이 삶의 우여곡절을 겪을 때는 함께 탄식했다. 그 생생한 경험을 통해 역사와 문학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서른다섯 살이 되어 '캐드펠 시리즈'를 다시 읽고 싶어졌는데, 혹시 두 번째로 읽었을 때의 감회가 예전만 못할까 걱정했었다. 기우 중의 기우였다. 열일곱 살에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잔뜩 발견하며 읽을 수 있었고, 역사추리소설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매번 자신 있게 추천하곤 했다. 소박하고 담백하게 시작해 역사의 큰 톱니바퀴와 힘 있게 맞물려 들어가는 이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 말할 때 한없이 행복했다.

엘리스 피터스가 육십대 중반에 이처럼 대단한 시리즈를 시작했다는 것을 떠올리면 마음에 환한 빛이 든다. 먼 길을 다녀와 켜켜이 쌓인 지혜를 품고 유적지를 직접 걸으며 작품을 구상했을 작가를 상상하고 만다. 멋진 일은 언제든 시작될 수 있고, 심혈을 다해 빚은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이 보물 같은 작품들을 통해 믿게 되었다."
 
- 정세랑(소설가)
 
 
[박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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