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만해 보이지만 외로움을 느끼는 자들을 위해
지난주 월요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영화관에 달려가 [녹색광선]을 보았다. 내가 자주 찾는 영화관에 운 좋게 에릭 로메르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명감독의 유산들이 연달아 상영 중이었고 [녹색광선]은 그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이지만, 그것만이 내가 이 영화를 선택한 유일한 동기는 아니었다.
어느 날 지인과 대화를 하다 [녹색광선]이라는 영화를 주워 듣고 포털 사이트에 그 이름을 검색해 보았을 때, 85개의 추천으로 가장 상단에 올라 있는 감상평.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관객이 남긴 추천사가 나를 영화관으로 이끌게 했다.
‘아무나 만날 바에야 혼자인 지금 이대로가 좋지만 그렇다고해서 지금 당장 외롭지 않은 건 아닌 이들에게’ - [녹색광선] 네이버 관람평 / 관람객 kims****
이 문구를 보고 내게 [녹색광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이 없었기에 감명 깊었던 위 감상평은 흐릿한 기억으로 변했다. 그러나 내 안에 잠재된 고민은 시간이 지나 희미해지긴 커녕 더 또렷해진 것일까. 상영 시간표에서 [녹색광선]을 발견하자 곧바로 예전에 보았던 익명의 추천사가 머릿속을 메웠다. 혹시나 이 영화가 마구잡이로 엉켜버린 난제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믿은 채 나는 영화관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외로움에 대해 얼마나 아는가?
영화가 수작인 만큼 아트인사이트에는 양질의 [녹색광선] 관련 리뷰와 오피니언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따라서 본 오피니언에서는 영화의 형식적인 내용보다 주제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서론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이 영화는 외로움이라는 큰 주제로 서사를 이끌어 나간다. 하지만 단순히 겉핥는 방식으로 외로움이라는 심오한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다. 외로움이 닥쳤을 때 주체가 겪는 혼란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그리고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상처만 줄 뿐인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해결 방식은 34년이 지난 현대의 시대상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지난 34년 동안 수많은 사실을 알아내어 인류 역사상 범접할 수 없는 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보이지만, -발전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퇴보라고 판단할 수 있다- 외로움에 대해서는 얼마나 더 알게 되었을까. 필자가 아직 좁은 시야를 지닌 탓에 세계의 상황을 재단할 수는 없지만, 한국 사회의 경우 확실하고 명확한 퇴보를 이룩하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회가 외로움에서 비롯된 관계의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나서는 중이다. 하지만 방향성이 잘못됐다. 외로움을 대하는 사회의 자세. ‘혼자라도 괜찮아’, ‘그래도 외로우면 사람을 소개 시켜줄게’와 같은 대처법은 외로움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접근이다. 마치 당뇨 환자에게 포도당을 투여하는 것과 같은 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짚어내야 할 외로움의 본질은 무엇일까. 과거의 수많은 현인과 오늘 다룰 영화 [녹색광선]은 선명히 그것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필자가 철학보다 영화에 친숙한 만큼 후자를 통해 외로움의 본질을 알아보자.
그런데 과연 사회는 외로움의 본질을 알아내고 싶어 할까?
영화의 주인공 델핀은 외로움을 겪기에 고통을 느낀다. 외로움은 흔히 홀로 남겨질 때 겪는 감정으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 속 델핀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사람들 가운데에 존재한다. 이 점이 핵심이다. 자신의 신념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 속에서 델핀은 그들과 유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어쩌다 친밀해진 사람들과 보낼 때 가지는 안정감도 그때 잠시일 뿐, 동이 트고 혼자가 된 델핀은 다시금 우울감에 빠진다.
그렇다고 홀로 있을 때 델핀을 충만을 느끼는가? 그렇지도 않다. 혼자 산에 올라간 델핀은 이내 여행을 포기하고 집으로 되돌아온다. 요즘 유행하는 혼자여도 괜찮다는 말. 혼자일 때 괜찮은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주인공 델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혼자 시간을 보내도 델핀의 외로움은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녹색광선]은, 에릭 로메르는 무엇이 외로움의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고 보았을까. 영화 내내 프랑스의 긴 휴가철과 씨름하던 델핀은 우연히 노인들의 대화를 엿 들으며 녹색광선에 대해 알게 된다. 바다에서 노을이 질 때, 태양이 바다 너머 수평선으로 사라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초록빛. 즉, 녹색광선의 존재를 접하게 된 델핀의 마음에는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아야겠다는 강한 욕망이 우연한 과정을 거쳐 피어오르게 된다.
델핀은 그간 경계의 대상이었던, 처음 마주친 남성과 데이트를 한 뒤 그와 나란히 앉은 벤치에서 그동안 열망하던 녹색광선을 보게 된다. 이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녹색광선을 보는 것과 외로움을 해결하는 것의 상관관계는 겉으로 볼 때 희미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에서 녹색광선을 보는 것은 근사한 남자친구를 만들어 바캉스를 가는, 가능성이 희박한 소망을 제외하면 델핀이 가진 유일한 욕망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델핀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충만함을 느낀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 욕망을 얻게 되는 과정은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영화에서는 녹색광선이라는 자연현상으로 대체되었지만, 소수의 외로움 연구와 과거의 현인들은 그것을 자아실현과 결부시킨다. 그리고 우연히 얻게된 목적이라는 측면에서 녹색광선과 자아실현은 유사한 특성을 지닌다. 몰두하게 된 대상을 처음 접했을 때 그것을 사랑하게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렇기에 자아는, 그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들어와 자리잡게 된 존재인 것이다.
즉, 외로움은 자아를 실현하기 위한, 인간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감정이다. 고독을 느낄 때 인간은 자신을 향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고민 끝에 내가 원하는 것,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은 사람들은 비로소 외로움에게 해방되어 한 층 더 나은 존재로 성장한다.
그러나 현 사회는 오로지 관계의 측면에서 외로움을 해결하려 한다. 그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괜찮겠지, 그럴 수 없는 환경이라면 혼자 잘 살 수 있게 하면 되지 않을까. 와 같은 가볍게 넘겨짚은 추측으로 외로움을 겪는 사람들을 더욱 곪게 한다. 그렇기에 필자는 조금 위험한 추측을 해보려 한다.
어쩌면 사회는, 우리가 소속된 집단은 이 사실을 모두 아는 것 아닐까. 사람들이 자아를 찾는 것은 집단의 발전에 해가 되면 되었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잘못된 처방전만 들이미는 것 아닐까… 라고. 필자가 넘겨짚었을 가능성이 다분하지만 이런 추측은 충실히 사회가 보여주는 것에서 기반한 것이다.
외로움은 대게 결핍의 부재에서 느끼는 감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물론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나 역시 타인의 인정을 주식으로 여태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음에도 외로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보다 고차원의 외로움일 것이다. 그럴 때, 타자가 제시하는 가짜 처방전에 속지 말고 스스로 자가 진단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음 놓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타자인 존재. 그 존재와 맺는 관계를 유대감이 형성된 관계라 한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그러한 존재가 있는가? 녹색광선을 함께 볼 수 있는, 당신이 그렇게 정한 존재 말이다. 있다면 다행이지만 아직 정하지 못했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일단 나도 없을뿐더러 옆집 할아버지도, 태권도장에서 나오는 아이도, 동네 편의점 알바생에게도 그런 존재는 귀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만큼은 알아주었으면 한다. 존재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는 외로움은 시대를 막론하고 아주 보편적인, 근원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도 알아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