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교육의 기술자들, 수능이라는 세계관 - 수능 해킹 [도서]

글 입력 2024.07.0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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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진학률이 70%인 나라.


 

11월 셋째 주 목요일. 비행기도 날지 않는다는 이날은 한국의 수능 시험 일이다. 수능은 한국에서 하나의 거대한 이벤트이다. 이제는 사라진 성인식의 대체물이며, 스무 살로 넘어가는 1월 1일보다 결정적인 날이다. 누군가에게는 수능이 어떠한 의미도 있지 않다는 것, 그렇기에 수능을 당연히 전제하는 말들이 필연적으로 배제의 논리를 수반함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학 진학률이 70%인 한국에서 수능은 누구나 할 말이 있을 수밖에 없는 주제이다. 평소에 꿈을 잘 꾸지 않는 나는 이 책을 읽다 잠든 날 꿈에서 모의고사를 풀고 있었다. 수능을 본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나의 무의식에는 그 순간이 깊이 배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고등학생 때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학생 인권과 관련된 책을 우연히 접했다. 그 책은 나에게 놀라운 경험을 주었는데, 학생인 나에게도 인권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교복 안에 입어야 했던 속옷의 종류를 학교가 정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추운 겨울날 복장 규정 때문에 교실 내에서 점퍼를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인권 침해였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물리적 폭력이 단지 학생이기 때문에 체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것도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입시 경쟁이 부당하다는 것, 야간 자율학습이 자율권의 침해라는 것, 사교육이 문제라는 주제에는 온전히 동의하거나 입장을 가지기 어려웠다. 원론적으로 맞더라도 나에게 어떠한 도움도,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입시제도라는 주제를 던지면 백이면 백 다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정시와 수시 비율이 문제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사교육이 혹은 대치동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경쟁 교육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이 모든 논의의 공통점이라면 그 누구도 수험생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리라. <수능 해킹>은 거시적 논의도 세부적 논의도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이렇게 말한다.


“달리 말하면 학벌을 향한 집단적 선망에는 공포가 깃들어 있습니다. 충분한 학벌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이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 죽고 말 것이라는, 생존에 대한 공포입니다. 이 감각은 2020년대의 현실이거니와 한국의 근현대사에 뿌리내린 것이기도 합니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은 전태일이 지켜내고자 했던 공장 노동자를 제물 삼아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또한 사무직 중산층을 육성한) 나라이고, 삶과 죽음의 권리는 교육 수준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에도 매일 평균 두 명 이상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한다는 사실, 청소년이 참여하는 직업계고 현장실습조차 죽음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삶과 죽음의 권리’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지니게 되지요.” (460쪽)


이러한 상황에서 <수능 해킹>의 목표는 명확하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구체성과 실질성이 결여된 대책은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문제의식에서이다. 즉, 사교육을 악마화하는 것도, 입시경쟁은 결국 일자리의 문제라고 퉁쳐버리는 것도 학생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관점이라는 것이다. <수능 해킹>은 이 책에서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사교육 시장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일정한 등급을 산출해야 하는 평가원의 입장에서는 유형화된 문제를 출제할 수밖에 없다. 문제가 유형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사교육의 성장을 의미한다. 동시에 신유형을 내더라도 쉬운 풀이법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사교육의 유인을 높이게 된다. 이렇듯 사교육은 수능 해킹이 된다. 책에서는 90년대부터 시작하며 수능의 변천을 보다 역사적으로 다루며 2020년대의 수능 경향을 별도로 짚는다.

 

 

 

나, 수능 해킹의 관여자


 

수능이 끝난 다음 달부터 나는 바로 과외를 했다. 과외를 하느냐 수능이 끝나고도 놀지도 않았던 겨울날들을 생각한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직장인의 한 달 치 월급을 벌 수도 있었다. 미친 듯이 돈을 쓸어 담았던(아마추어 대학생 과외 시장에서는 대학 새내기~2학년이 가장 수요가 높다) 1학년 이후에도 사교육 시장은 나의 대학 시절 생활비를 책임졌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늘 시간이 부족했다. 유연한 시간 배분이 필요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물류센터 아니면 사교육 시장이었다. 사교육 다시는 안 하고 싶다고 선택한 물류센터를 반년 정도 나가자, 돈과 시간이 모두 아깝게 느껴졌다. 다시 과외를 구하면서는 앞으로 사교육 시장에서 일하지 않겠다는 다짐 같은 건 하지 않기로 했다. 스무 살 이후 사교육 업계는 나에게 인생 해킹과 같은 존재였다. 아무리 과외 시급이 학원 시급이 전보다 못하다고 하더라도, 눈치껏 학업과 병행할 수도 있고 몸을 최소한으로 쓸 수 있는 사교육 일은 너무 매력적인 선택지였다. 당장 내가 일자리를 잃더라도 나를 굶기지 않겠다 굳게 약속을 해주는 유일한 산업이었다.


전체 사교육 시장에서 나와 같은 대학생 강사는 작은 요소일 뿐이다. 나는 경기도와 서울 강북 지역, 서초구와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강사 혹은 조교로 일해왔다. 강사만 수십 명인 대형 학원부터 강사라고는 나와 원장쌤 뿐인 동네 공부방까지 사업장 크기도 다양했고 <수능 해킹>에서 최신 경향으로 지적한 일명 ‘손풀’(태블릿으로 학생에게 맞춤으로 풀이 과정을 녹화하는 알바)도 단기로 해본 적 있다. 학생들은 초등학생부터 고3 수험생까지 다양했다. 어디를 가든 내가 할 일은 명확했다. 성적을 올려주는 일이었다. 성적을 올리는 메커니즘은 단순했다. 평가원 출제 기출에는 학생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일정한 패턴이 있었고, 해당 패턴을 체화한 상태에서 문제 풀이 과정을 보여주면 되었다. 학원 규모가 커지면 내가 하는 일이 세분되었고, 학원이 작아지면 내가 하는 일은 이 과정 전체가 되었다. 그렇기에 <수능 해킹>을 읽으며 내가 간파되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수능 해킹>은 행위자들이 모여 만든 수능이라는 생태계 자체를 너르게 분석해 나간다.

 

 

 

공포와 불안이 아닌 다른 길이 있을까


 

모두 잊고 있지만 교육은 다음 세대의 시민을 만드는 일이다. 이 당연한 말이 당장의 한국 청소년들의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건 내가 사교육에서 강사라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다. 이 판이 잘못됐다거나 학생의 존엄함을 함부로 일깨우는 것보다는 당장 다음 내신 시험에서 등급을 올려주는 것이 이 학생의 삶에 이로울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좋은 대학에만 가도 네가 사교육에서 쓴 돈은 충분히 회수할 수 있다는 이 시장의 원리도 전수한다. 그다음의 인생은 각자 알아서 하더라도.


<수능 해킹>은 현 입시제도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리라. 다만 한국을 지금까지 달려오게 만든 공포와 불안의 힘이 그 동력의 내적 모순으로 한국을 붕괴시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0.7명대로 떨어진 합계출생률과 40%에 가까워지는 수능 응시 N수생 비율이, 역대 최고를 기록한 사교육비 규모가 대표적인 증거일 것이다. 허울 좋은 선언도, 세상 다 산 듯 한 회의도 아닌 수능을 둘러싼 관계들의 총합을 직시하려는 것만으로도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빨리 뜨는 게 이득인 판’이라고 고등학생 때 생각했던 수능의 개념을 떠올린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나. 우리가 달라질 수 있을까. 성실한 수험생에서 수능 해킹 알바생까지, 나의 실재했던 삶을 부정하지 않고자 빠르게 읽어낸 책이었다.

 

 

[진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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