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 그것은 [문화 전반]

글 입력 2024.06.2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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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활동 4개월의 마지막 글이다. 도대체 어떤 글을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평소처럼 기존에 향유한 콘텐츠 하나를 선정하여 관련 글을 작성할 수도 있지만. 더욱 더 보편적이고 넓고.. 또 근본적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다. 정말 중요한 것. 내 삶을 관통하는 것. 내가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 조금은 사적인 글이 될지라도 말이다.

 

 

IMG_4017.jpg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표지 뒷면

 

 

4년 전쯤 내가 쓴 일기에는 이 사진과 함께. 나는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정말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 정말로- 라는 짧은 코멘트가 남겨져 있다. 누가 삶의 의미나 목적을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사랑이라 대답할 것인데. 그건 4년 전에도 지금도 4년 후에도 감히. 같을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말하는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는 사랑은 넓다. 단순한 (사실 단순하진 않지만) 남녀 간의 이성적인 사랑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꽤 많고 다양하더라. 그걸 몸소 알아가고 혹은 이상한 편견을 갖고 또 다시 무너지고 그렇게 사랑 찾아 산 멀리-를 반복하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랑을 사랑하는지를 깨닫는 것조차도 오래 걸렸다. (걸린다-고 표현해야 맞겠다 여전히 찾고 있으니) 그저 나의 '사랑 찾아 산 멀리-' 의 과정을.. 노래와 시를 통해 약간이나마 공유하고자 한다.

 

 

 

# 1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

 

- 허연,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중

 

 

사랑은 자해다.... 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정말 육체적으로 아프고, 물리적으로 고통스러움을 주는. 그런 불같고 자기 파괴적인 사랑만을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했던 나날들. 잠에 들기 전에 콩닥콩닥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심호흡하며 감정을 정리하거나, 새어 나오는 울음을 감추며 그렇게 어렵게 힘겹게 하는 사랑.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만이 사랑인줄 알았다. 아프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냥 사랑은 이런 건 줄 알았고... 다 이런건 줄 만 알았다.

 

그토록 자해 같던 사랑이 끝이 나고. 그러니까. 불타는 자동차에서 내리고. 나는 힘을 잃었다. 어떻게 보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내 힘은 사랑에서 비롯되었나보다-. 사랑이 먼저인지 힘이 먼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확실한 건 내 안에 힘과 사랑 모두의 부재를 살벌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랑과 원함을 처절하게 구분해 내는 과정을 통해 이내 나는, 나의 이 모든 형체 없는 고통이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됨을 깨닫는다. '내'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구나. 김광석 아저씨가 불러주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을 들으며 하염없이 나를 줍는다.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중

 

 


# 2


 

 

 

7년 전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는 jamjam이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히려 뭐랄까.. 이렇게 의무감과 거짓으로 점철된 사랑은 정말 하고 싶지 않다고만 생각했달까. 그러나 놀랍게도 그리고 우습게도 '나'를 줍는 과정에서 수없이도 들었다. 다시 찾게 되더라. 천성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은 나는. 타인이라는 자극에 크게 피로함을 느낀다. 말과 행동을 계속 곱씹고, 멋대로 넘겨짚고 불안해한다. 그렇게 하염없이 불안하고 후회하다보니... 세상일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감을 깨달았다. 인간관계는 더욱더 그러하다. 나만 잘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니. 그저 좋은 게 좋은 거고. 좋을 때 좋아야하고. 당장 설탕이 필요한 것뿐이다. 그게 좋은게 아니라거나 사랑이 아니란 법은 없지 않냐.

 

 

 

# 3


 

 

 

내가 다니던 특목고는 친구들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한창 예민하고 자아가 성장할 시기에 서로는 서로에게 아주 큰 자극이다. 고3 새 학기 담임 선생님께서 종례 시간에 이 노래를 들려주셨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아이들의 원성과 찌푸린 표정 속에서. 나만이 눈물을 훔치느라 급급했던 기억이 있다.

 

유독 사이가 좋았던 우리 반 아이들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럴 때마다 씨익 웃으시며, 웃을 수 있을 때 마음껏 웃어놓으라고 말하시던 담임 선생님은. 앞으로 펼쳐질.. 분명히 힘들 1년을 위로하며, 오르막길을 예고하며,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상기시켜 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닐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친구들. 이 막막한 오르막길을 함께 오를 사람이 있다는 것. 당장 눈 앞에 놓인 것에 눈이 멀어 더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셨을 테다.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아빠는 이 노래를 처음 듣고 달리던 차를 갓길에 세워 펑펑 우셨다고 한다.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편찮으셨던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저 가사를 들으셨을까. 윤종신의 오르막길은 나에게 다양한 사랑을 들려준다. 여전히 이 노래는 가끔 듣는다. 들을 때마다 너무 많은 감정을 느껴야 해서 버겁달까. 경쟁 속에서 너덜너덜해지던 우정을 붙잡아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작해서... 아무리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일지라도 상관없으리라 생각했던 첫사랑... 그리고 차에서 혼자 우셨을 아빠와 묵묵히 살아가는 엄마. 온갖 사랑이 다 섞여 있다.

 

 

 

# 4


 

 

하이데거는 사물은 사람과 달리 본질이 실존을 앞선다고 말한다. 즉 용도가 정해져 있고 그에 맞는 존재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캐리어라는 사물에게 새로운 의미를 계속해서 부여해 왔다. 캐리어에게 나의 학창 시절의 열정을, 겪어왔던 고난을, 지난 사계절을 투영했다. 캐리어는 내 삶, 나의 계절과 시간을 되돌아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되었다.

 

사물의 실존이 본질을 앞설 때, 나는 비로소 이 사물을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사물의 원래 용도가 무색해질 만큼 그 사물 자체에 대한 애정이 생길 수 있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캐리어가 자신의 원래 용도를 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나는 그 캐리어에 대한 애정을 간직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 한정아, <사물이 실존의 본질을 앞설 때> 중

 

 

캐리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짐을 보관하고 이동할 때 편리하게 사용되는 그 캐리어 말이다. 3년 내내 같은 캐리어를 사용했던 나는.. 우습게도 그곳에서조차 사랑을 포착한다. 사실 우스울 일은 아닌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정말로 생각하던 사랑이었으니 말이다. 캐리어의 바퀴가 다 빠져버리고, 몸체가 망가지더라도 여전히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하던 그 생각! 에서... 내가 원하는 사랑을 이제서야 잡아두어서 표현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5


 

 

 

"사랑이란 파편화의 무력함이 아닐까. 절대적이고 연속적인 것. 이 사람의 성격이 어떻고, 외모가 어떻고, 배경이 어떻고 등의 특성을 나열하는 것이 아무 쓸모가 없고. 도저히 소용이 없어질 때 그제야 사랑-을 꺼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여기서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특성 혹은 요소들을 그 사람과 절대 떼어놓고 생각해 볼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그의 모든 것이 그의 것이기에 의미가 생기고 사랑이 유효해진다. 내가 이제껏 꾹꾹 생각하고 경험하고 꿈꿔온 사랑은 그런 것이다." - 내가 쓴 언젠가의 일기 중

 

이 큰 사랑을 모두에 적용한다. 내 또래 남자애, 할아버지, 슈퍼 아줌마, 지나가던 고양이, 집 앞 나무... 심지어는 나에게도. 이 연속적인 사랑을 실현할 수만 있다면....

 

 

 

# 6


 

 

 

알아가거나

잊어가거나

사랑하거나

슬퍼하거나

 

잊어가거나

잊혀가거나

사랑해야지

슬퍼하지마

 

 

혁오의 <사랑으로> 앨범. 짧은 8마디의 가사. 이게 바로 삶 아닌가.... 더 이상 진정한 사랑이 뭔지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니까 '사랑 찾아 산 멀리-'는 끝났다 이거다. 정답을 찾아서 끝났다기보다는. 찾을 수 없어서 끝났다? 찾을 수 없으니 끝난 게 끝난 게 아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집착이 나에게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랑들을 놓치게 만들고 있었을지도 모르잖냐. 오직 필요한 건 순간을 꽉 차게 사랑하는 것. 내가 하는 것이 어떤 사랑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가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으나. 그렇게 얼렁뚱땅 모든 것을 사랑할 테다.

 

 

[한정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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