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때 나를 살게 했던 파랑 [공연]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과 「컴 프롬 어웨이」를 돌아보며
글 입력 2024.06.24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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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갖고 있는 특유의 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나는 계절 특유의 향 맡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향을 맡으면 그 계절의 냄새를 온전히 만끽하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기 때문이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공연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공연마다 느껴지는 향이 각자 다르다. 때문에 내가 공연을 기억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이 향을 기억하는 것이다. 다만 공연은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결합된 예술이기에 이 향이 조금 신기한 형태로 기억에 남는다.


나를 한때 살게 했던 두 작품은 푸른 냄새가 난다. 하나는 잔잔한 물결의 바다이나 그 심연은 끝도 없이 깊다. 또 다른 하나는 강인한 생명력과 활력을 품고 있다. 나는 오늘 내가 파랑의 향기를 맡은 이 두 작품에 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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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지만 그만큼 찬란한 파도.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

 

 

재작년 여름과 가을 사이, 나는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대학로로 향하던 길을 떠올려본다. 공연이 올라간 시기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남아있었기에 혜화역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극장 안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싱그러운 여름 냄새를 맡을 새도 없이 도착한 공연장은 신선한 바다 내음으로 가득했다. 작품 안에서 바다는 인물들의 비극적인 순간을 담고 있는 공간이지만, 그 바다에 함께 있는 친구들을 생각하면 왠지 모를 위로가 물밀듯 밀려온다.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은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한 수현이 죽음을 결심한 순간, 학교에 떠돌던 귀신들과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귀신들은 수현의 몸에 빙의하여 단숨에 눈에 띄지 않던 아이에서 농구 잘하는 학생으로 거듭나게 되고, 구청 대표 농구팀으로 시합에 출전하게 된다. 그러던 도중 전지훈련을 핑계로 (사실은 그냥 놀러 가는 거나 다름없다) 바다에 간 수현과 귀신들, 그곳에서 종우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되지만, 이내 상록구청 농구팀원들 그리고 수현과 함께 이겨내며 누구보다 크게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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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나에게 가장 큰 위로를 안겨준 뮤지컬이다.

 

「전설의 리틀 농구단」이 공연하고 있을 당시, 나는 스무 살이었고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막 끝낸 학생이었다. 아직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확실히 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다. 작품 속 수현이라는 아이를 볼 때마다 내내 마음에 걸렸다. 수현이의 어떤 모습에서는 과거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또 다른 모습에서는 나의 주변 친구를 찾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수현이들에게 위로를 전해주고픈 마음이 컸다.

 

종우, 수현, 승우, 지훈, 다인, 상태가 저마다의 푸른색을 찾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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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생명력의 짙은 파랑.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

 

 

이 작품이 올라왔던 극장인 광림아트센터는 압구정역에서 내리고 난 후에도 골목길 사이 안으로 들어가야만 도착할 수 있는 극장이다. 작품이 올라온 시기에는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린 날이 꽤 많았다. 털옷을 입고 우산을 든 채 압구정역까지 가는 건 공연을 보기 전부터 힘을 다 빠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이 변덕스러운 날씨를 뚫고 극장으로 향하는 과정은 그 나름대로 나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극장 안으로 들어왔을 때 나는 김이 서린 안경을 옷매무새로 닦은 채 주위를 둘러본다. 이미 익숙해진 광림아트센터 내부지만, 어제와 다른 오늘의 공연이 올라올 이 공간은 나에게 매일 새롭다.


뮤지컬 「컴 프롬 어웨이」는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했을 당시 캐나다 뉴펀들랜드섬에 불시착한 비행기의 승객들 그리고 갠더 마을 주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열두 명의 배우들은 비행기의 승객과 갠더 마을 주민들을 동시에 연기하며 환상적인 일인다역을 보여준다. 이미 비극을 경험한 승객들이 갠더 마을에서 겪는 일련의 사건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갠더 마을 주민들이 낯선 타지에서 온 수백 명의 사람들을 아무런 대가 없이 도와줄 수 있었던 건 그들이 갖고 있던 정신과 강한 연대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거친 바위에 난 뿌리내렸네

거친 땅 위에 난 살아간다네

 

- ‘웰 컴 투 더 락’ 넘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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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작품을 보며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파랑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들이 관객들에게 보여준 연대의 힘은 저들끼리 얽히고설켜 진한 감동을 자아낸다. 커튼콜까지 전부 끝나고 배우들까지 전부 퇴장한 빈 무대를 나는 바라보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던 공간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과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여전히 비행기의 승객들과 갠더 마을 주민들이 남기고 간 모든 것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모든 것’에는 사랑, 환희, 절망, 슬픔 등 여러 순간이 복합적으로 뒤섞여있다. 극장 밖으로 나설 때 나는 무대 위에 놓여져 있는 모든 감정을 한아름 안고 간다. 마치 갠더 마을에 잠시 머물렀던 이들이 마을 주민들에게 놓고 간 쪽지와 선물들처럼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관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감정을 전해주고 떠난다.

 

두 작품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파랑의 향기가 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그 순간의 파란 기억이 코끝에 맴도는 기분이 든다. 나에게 여름과 겨울의 파랑은 아마 이 두 작품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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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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