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돈 버는데 경중은 없다 [사람]

성수동 자영업자 윤모씨의 사연
글 입력 2024.06.1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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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다마이 쫙 빼입고, 롤렉스 덜렁거리면서, 벤츠를 뾱뾱 열어 우렁찬 8기통 배기음과 함께 지하주차장을 끼리릭 거린다. 어머 대표님, 본부장님, 편집장님이라며 다들 나를 반기는 전화에 시크하게 이건 이래 하고 저건 저래 하라 오더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같은 사무실에 도착하면 A급 비서가 A급 커피를 내오고, 오늘 일정을 브리핑한다. 돈 버는데 경중은 있는 거라고, 우리는 그렇게 배운다.


우리 아부지를 보며 나도 그렇게 배웠다. 그는 잘 나가는 샐러리맨이었다. 아침이면, 분명 저러다 지각할 텐데 싶은 그때까지 코를 골며 자다가도 트랜스포머인가 싶은 속도로 샤워를 하고 드라이를 하고 가다마이 빼입고 아침을 먹고 있다. 내가 EBS 틀어놓고 쇼파서 꾸벅대고 있으면 늘 이런 풍경이었다. 문안인사를 드리면 만 원 한 장 찔러주며, 저금만 하지 말고 남자는 돈도 좀 쓸 줄 알아야 한다며 엄마한테는 비밀이라 했다. 나는 그렇게 유복하게 자랐고, 나도 저래 되고 싶다 생각했다.


내 대가리가 커지면서 아부지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다. 보증 잘못 서서 집이 쫄딱 망할 뻔하고, 집이라도 지키려다 이혼하고, 5년 동안 가족들과 생면부지였던 게 알고 보니 스트레스성 하반신 마비로 2년간 병실에 누워있기도 했다. 경력 단절로 연봉은 반에 반토막이 났고, 다시 식구들 유복하게 먹여 살리겠다 치킨집을 시작했다. 슬픈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


일평생 가다마이에 롤렉스와 벤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딜 가도 좋은 거 먹고 좋은 대접받던 사람이 앞치마와 고무장갑과 스쿠터를 탄다는 게 슬픈 일, 이라 생각했다. 20대 초반을 아르바이트에 매진한 결과, 십중팔구 양아치라는 교훈에. 동족 취급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픈 일, 이라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낌 있다, 라는 생각이 든다.


자존심을 꺾을 줄 안다는 생각이 느낌 있다. 그의 앞치마와 고무장갑과 스쿠터, 낡아진 그랜저와 휑환 손목과 썩어가는 양복이 느낌 있다.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벤츠와 롤렉스와 가다마이에 미련 두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느낌 있다. 양아치가 아니라는 행동들이 느낌 있다.


성수동 최저가 원룸에서 일어나, 매장 문을 열어 홀 청소를 하고 진상손님과 씨름하고 경쟁업체 쿠사리에 스트레스받고, 알바생이 출근하면 배달업체 수수료 아끼려 배달을 나가고, 알바생이 퇴근하면 주방 청소에 2시간을 할애한다. 배달원들에게는 음료를 무한 제공하고, 납품 기사에게는 꼭 아이스크림 하나씩 챙겨주고, 경비 할아버지 끼니로 치킨 1마리를 굽는다. 교환학생 외국인 알바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고국행 비행기표를 끊어준다. 성동구 저소득층 후원에 익명으로 월 100만 원을 기부한다. 자영업 반년 만에 수도권 매출 탑을 찍고, 본사에서는 인터뷰를 하러 왔다.


수능 망친 동생은 월 500 재수학원을 가고. 군바리인 나는 용돈을 받는다. 무정란이 유정란으로 바뀌고 수입산이 국내산으로 바뀌었다. 본인은 조금 야위셨다.


돈을 버는 이유가, 더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해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벤츠 타면 끝내주고 롤렉스 차면 죽여주고 가다마이 빼입으면 짜세 나지 않나. 폼생폼사인 나로서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참 많다 생각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영화에 나오는 저 양반들처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직군이라면, 그렇다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생각했다. 돈 버는데 경중은 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짜세나게 버는 돈이라면 불행도 막고 행복도 어느 정도는 살 수 있다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라는 걸, 아부지로부터 배운다. 돈으로 부릴 수 있는 허세나 허영보다 책임져야 할 것들을 책임질 수 있는 안도감이 더 크다는 걸, 뿌듯함이 더 크다는 걸, 배부름이 더 크다는 걸. 아부지로부터 배운다. 야위고 늙었지만 눈빛이 살아있고 전보다 자주 웃는 아부지 하루 일과가 느낌 있다.


그러고 보니 술에 쩔어 비틀비틀 새벽길에, 환경미화원이 느낌 있다. 아침 식사 됩니다, 국밥집이 느낌 있다. 화물트럭이 느낌 있다. 배달 오토바이가 느낌 있다. 첫 차 버스 기사님 선글라스가 느낌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애정하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들을 책임질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최저가 원룸도 느낌 있다. 고무장갑과 스쿠터도 느낌 있다. 감가 맞은 중고차와 휑한 손목과 썩어가는 위아래 59,000원 가다마이도 느낌 있다. 자존심보다 책임감이 우선인, 그 생각이 느낌 있다.


그는 요즘, 경쟁업체 쿠사리에 배달업체 갑질에 새로운 묘책을 구안 중이다. 새로운 가게를 준비 중이다. 잘 될지 안 될지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나는 모른다. 어찌됐건 좌우지간 느낌 있다. 돈 버는데 경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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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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