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색채란 뭘까. 전시를 보고 나니 내가 본 것에 대한 정답이 궁금해졌다.

크루즈 디에즈는 색을 인지하는 원리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어 현대 미술의 혁신을 가져왔고, 이를 요약하자면 예술과 과학의 만남이 된다. 전시 소개에도 예술과 과학이 몇 번이고 나란히 등장한다.
그런데 전시를 관람하는 나는 그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하게 느껴졌다. 내가 본 것이 옳은 것인가, 그곳에 있는 것이 정답일까. 색은 보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전시는 색을 경험하며 생각하는 자리였다.

전시장에 입장해서 관련 영상과 전시 소개를 가볍게 보고 지나면 색 포화라는 공간을 경험하게 된다. 전시 팸플렛에는 이걸 '환상적인 색의 공간'이라고 표현했는데 나는 오히려 현실적인 색의 공간으로 느껴졌다.
레드 그린 블루의 인공조명 안에서 사진을 찍다가 못 보고 지나친 색을 발견했다. 저기, 노란색이 있었다. 지나오는 동안에는 녹색과 적색의 경계였는데 지나고 보니 노랑과 주황이 있었다. 나는 그 색을 적색과 청색 사이의 보랏빛에서 발견했다.
그건 환상이 아니라 내가 눈치채지 못한 현실의 영역이었다.
현실적인 색 경험이었다.

Carlos Cruz-Diez in his studio, Paris, France, 2017
Photo: Atelier Cruz-Diez Paris / Lisa Preud'homme
© Carlos Cruz-Diez / Bridgeman Images 2024
["크루즈 디에즈는 과학과 예술을 접목하여 옵아트(Optical Art)와 키네틱 아트(Kinetic Art)를 함께 녹여내는 등 예술의 혁신을 이끌어냈다. 빛의 삼원색인 RGB[빨간색(Red), 녹색(Green), 파란색(Blue)]와 인쇄물의 색을 구성하는 CMYK[파랑(Cyan), 자주(Magenta), 노랑(Yellow), 검정(Key=Black)]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탐구했다.
크루즈 디에즈의 작품은 기본적인 색과 선, 그리고 빛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순한 조합은 실제로 작품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색과 패턴을 생성해 내는 등 환상적인 착시현상을 일으키며 관객에게 색과 빛의 공간 안에서의 예술적이고 초현실적 감각을 경험하게 한다."] - 보도자료 中

도슨트와 시간이 겹쳤지만 중간에 따라잡기도 애매하고 이미 멋대로 작품을 관람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도슨트를 피해서 전시장을 구경했다. 그래도 내가 모르는 예술과 과학이 만난 부분을 찾기 위해 몇몇 작품은 오디오 가이드를 참고하면서 감상했다.
다른 관람객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날 나의 또 다른 눈은 카메라였다. 1배율 기본 카메라로 담기지 않아서 렌즈를 광각으로 전환하니 보이지 않던 색이 나타났다.

선은 무지갯빛이 아니다. 그렇게 보였을 뿐.

아무리 노려봐도 보이지 않았던 하얀색이 거리를 두자 선명해졌다.
색 포화와 평면 작품이 주는 직관적인 경험에 이후 색 간섭 환경과 색채 경험 프로그램 섹션이 조금 심심하게 느껴졌는데 어린 관람객들은 두 공간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큰 감흥 없는 공간이 어린이들에게는 기다리면서 체험하고 싶은 재미있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어른은 눈치껏 자리를 비켜줬다. 같은 걸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할당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여행을 가면 어떻게든 일정에 미술관을 욱여넣지만 국내에서 미술관 가는 빈도는 이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특정 미술관은 앞으로 한동안 가지 않기로 다짐할 정도로 만족스럽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전시는 대체로 취향에 맞는 것도 작용했을 텐데 그것까지 포함해서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 방면에서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모처럼 강렬했다.
직관적인 체험이 재미를 주었다면 관객의 시야를 생각해서 제작된 작품과 착시와 실제 사이의 혼란스러움을 담고 있는 평면 작품은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내가 본 것이 맞을까 작품에 다가서면 각도와 거리를 계산한 작가의 구상만 보였다.
가까이에서 작품을 보고 멀리 물러나면 예상치 못한 색이 등장했다. 눈이 받아들인 걸 뇌가 추론하며 착각을 일으켰다. 예측하지 못했는데 이게 정확하게 계산된 결과라고 한다. 신기함은 재미로 연결되었고 그 과정은 시각의 착각과 화폭 위에 존재하는 색 중 어느 것이 정답일까? 하는 의문을 남겼다.
다른 것이 답이 되는 게 색채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