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구름과 맑은 하늘 때문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 고민형
이 모임에는 무언가 두부 같은 부분이 있어 나는 말을 얹기가 조심스럽다. 몽글하고 폭신한, 포슬포슬하게 부서져 내릴듯한 감정들이 뒤섞여있어 손을 대기 망설여진다. 이 글을 쓰는 일이 무언가를 훼손시킬 것만 같다.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면 보통 무언가를 쓰고 싶어지지만, 종종 그냥 조용히 마지막 장면을 덮고 싶은 날이 생긴다. 정확하게 표현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기 때문이고, 글로 담길만한 것을 취사선택해서 구체화하는 동안 불가피하게 흩어지는 감각들과 표현의 한계에 의해 담기지 못한 부분이 휘발되는 아쉬움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호해서 느껴지는 포괄적인 감각같은게 있는데 거기서 형체를 구분해내는 순간 흐릿하지만 분명 거기에 있던 부분이 날아가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나는 공익을 위해 글을 쓰기는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글을 기다리는 나의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고(나이가 가장 어린 내가 이렇게 말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그들은 아마 개의치 않을 것이다.), 우리 만남의 좋음을 토로하는 글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모임에서 나는 모종의 흥미로움을 직감했던 것 같다. 나는 세상을 직관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강하다. 조심스럽게 말하면 예감이 종종 맞아 들어가고 대부분이 머릿속 예상 바운더리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고, 거칠게 말하면 어떤 현상을 마주했을 때 얼추 견적이 나온다는 것이다.
기억의 파편을 긁어 이 모임의 첫 만남을 기억해보자면, 나는 우리가 꽤나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았고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랬다.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의 분위기와 시간과 모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공기의 흐름이 기억난다. 그 안에는 언급되고 또 언급되지 않은 각자의 사연과 사고흐름과 감정의 변화가 있었겠지만 나는 그저 그 속에 있는 것이 좋았다.
돌아보면 나는 이 모임에서 말을 하지 않고 한동안 가만히 듣고만 있던 순간들이 있었는데, 조금 묘한 일이었다. 한 발 떨어져서 이 만남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저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군. 아 저 사람은 저런 표정을 짓는군. 저 표정은 아마 이런 감정이려나. 되돌아오는 저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발화의 바톤을 다음 사람에게 넘긴 후에 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스쳐간 저 표정의 의미는 뭐였을까.
답을 찾지는 않았다. 찾지 못했고, 감히 찾으려들지도 않았다. 그냥 그 순간들이 모두 흥미로웠다. 외부세계에 쉽게 침범 받지 않을만한 자기만의 세계와 유일함을 가진 에디터는 우리와 처음 만나는 세계가 신기하다는 듯 체험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내가 편안함과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던 다른 에디터는 실타래를 풀어내듯 슬며시 자기를 꺼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든든한 나의 뒷배가 되어줄 에디터 하나. 말문이 막히거나 체력 이슈로 기가 빨리거나 낯설 때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 왠지 ‘하하하- 이 녀석아 걱정하지 말아라’라고 말하며 대화와 모임의 주도권을 가져가 이끌어줄 것만 같았다. 그의 인도에 살포시 기대어 나는 다른 두 세계를 탐방해갔고, 좋은 것들을 공유해나가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 나의 고민, 나의 생각, 나의 전시, 등등. 세 명이 가진 독특한 분위기와 역할 덕분에 나는 이 모임에서 주저 없이 말할 수 있었다.
전시를 테마로 만난만큼 주제에 소홀한 적은 없었지만 우리는 전시를 매개로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사람을 하나의 전시라고 봐도 될까? 우리는 모두 개인이니까 각자 하나씩의 개인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첫 만남에 웃으며 인사하듯 문을 열면 가장 크게 전시되어 있는 테마 그림. 그 옆으로 선형적으로, 때로는 산발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그림들. 그림을 살펴보는데에는 필연적으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림들 사이의 일관성과 중간중간 튀어나와있는 그림의 의외성과, 설명이 있거나 없거나 필요하거나 필요하지 않은 그림들.
우리는 자신의 편린에 대해 기록해놓은 글 - 작가노트와, 대화라는 발화 - 상주해있는 작가의 해설에 기대 개인전을 관람해나간다, 그러다 삐져나온 흔적-들키고 싶은 비밀-을 발견해 질문하고, 머슥해 하면서도 내심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풀려나오는 이야기들. 나는 이 일들에 아무런 가치판단도 부여하고 싶지 않다. 그냥 거기에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 우리는 말했고, 보여주었고, 또 동시에 말하지 않았고,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보았고, 보지 못했고, 그래서 아름다웠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만나 짧은 전시를 봤고, 밥을 먹었고, 강남에서 보드게임을 했다. 행궁동에서 또 만나 걸었고 밥을 먹었고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막걸리를 한 잔 마셨다. 어느 날 카톡으로는 각자 본 전시의 좋은 장면을 담아 공유했다. 이번엔 성수에서 만나 커피를 마셨고 각자 보고 온 전시 관련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숲에 들러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술을 또 한 잔 마셨다.
이렇게 건조하게 적어도 될까. 설명하기 어렵지만 사후적으로 구태여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우리가 그곳에 있었고 밥과 술을 먹었고, 전시와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으며, 서로를 알아갔다. 우리는 그 만남들을 통해 어떻게 변화한걸까? 표정이 밝아졌나, 취향이 넓어졌나, 전시를 보는 전문가가 되었나, 모르겠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좋다-라고 담백하고 쓰고싶었던 문장이 여기까지 왔다.
<나의 전시 친구들을 위해 직접 만들어간 간식거리 자랑, 부럽다면 나의 친구가 되시라!>
최근에는 인터뷰를 하러 다닌다.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겁고, 누군가를 만나 발견해내는 삶의 진실들이 반짝여서다. 사전에 질문지를 공유해드리지만, 너무 미리는 주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질문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는 일이 대화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주어지면 자꾸만 반복하고 생각하고 찾아내느라 ‘정해진 답변’이 생기고, 지나치게 의미화되고 상투화된 답변이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는 삶과 삶으로 부딪히는 것이 좋다. 우리 사이에 질문지가 놓여있더라도 그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과 사람으로 섞여들어가는 것이 좋다. 그래서 자주 딴소리를 늘어놓고, 질문지에 벗어난 주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질문 뒤에 숨은 내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주제없는 대화가 좋고 주제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대화가 좋다.
의미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 무작위로 놓여진 삶을 편집하고 구성하여 배치하는 것. 우리는 삶을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글이란 그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수단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왠지 어떤 작품 앞에서는, 어떤 순간 앞에서는, 어떤 현상이나 만남 앞에서는 그저 그것을 포기해버리고 싶다. 손에 꽉 쥐지 말고 느슨하게 풀어지게 두고싶다. 라쿤이 솜사탕을 물에 씻어먹듯이 그저 달콤하게 흩어지도록 두고 싶다. 이 말을 당신은 이해할까.
이 모임에는 수많은 결들이 살아 숨쉬고 있어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럽다. 스프레이로 뿌리듯이 미스트처럼 우리를 감싸안은 다양한 것들. 나는 들이치는 해를 바라보며 담담히 우리를 바라볼 뿐이다. 아마 쉽게 잊히지는 않을 얼굴들. 우리는 자주, 또 가끔 만날 것이고 함께한 시간을 기억할 것이고 서로를 떠올릴 것이다. 방명록을 적는다. 김인규 왔다 갑니다- 그들 전시장 한 구석에 나의 흔적도 기록되어 있으면 좋겠다. 나는 마음 한 구석에 우리를 위한 액자 하나를 짜맞추어야지. 아무런 해설도 해석도 적혀있지 않은 그곳에 우리가 함께 있던 사진 몇장과 그림 몇 점을 남겨둘 예정이다.
그곳에도 나의 들키고 싶은 비밀이 존재할까? 나는 모른다. 내가 모르면 누가 알겠냐만은 그건 앞으로 여러분들의 숙제로 남기겠습니다. 나의 전시 친구들. 궁금하다면 자주 연락하고 자주 만나시죠 우리. 포근했던 봄의 흔적을 여기에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