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쉽지만, 결코 얕지 않은 - 더 발레리나

글 입력 2024.06.0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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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llerina(하남)-ⓒ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99).jpg

 

 

상당히 쉬운 극이다. 다만 결코 얕지 않다.

 

이 극은 막을 올린 채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밝은 극장의 조명들은 출연 무용수들이 연습복으로 몸을 푸는 것을 비춘다. 객석을 찾아 앉자마자 이건 연출인가 실수인가에 혼란해진다.

 

영화로 치면 제4의 벽을 깨는 식(?)으로 연출한 극들이 너무나 얕아지는 것을 보아왔다. 과연 이들은 이 리스크를 어떻게 이끌어 작품으로 만들것인지 궁금해졌다.

 

 

The Ballerina(하남)-ⓒ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66).jpg

 

 

어쨋든, 실수가 아닌 연출이었던 이 시작은 발레 연습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부상과 실수, 연습과 땀, 희비의 엇갈림, 와중에 지각하는 발레리노, 칼군무를 위해 같은 장면을 반복연습하는 단원들 등.

 

사실 일개 관객으로서 무대에서 보는 무용수들은 참 인간같진 않다. 아니, 무대 밖에서 보는 무용수들도 인간같진 않다.

 

국현미 근처를 지나거나 북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종종 예원학교 학생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그 완벽한 똥머리와 곧은 자세를 보고있으면 나랑은 같은 종족이 확실히 아닌 것 같다.

 

물론 저 동네도 사람사는 동네인데, 드라마가 없겠어? 싶었지만 이 극에서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그 일상적 드라마를 표현할까 궁금했던 나는 극이 시작에서 보여지는 다양한 휴먼드라마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The Ballerina-ⓒ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3).JPG

 

 

극은 곧 액자식 구성으로 들어간다. 극속의 공연이다. 총 4개의 창작발레를 찍먹할 수 있다.

 

2024년 시즌 개막작 <코리아 이모션 情>에서 선보였던 <비연>과 K-발레의 위상을 드높인 <미리내길>을 비롯하여 <파가니니 랩소디> 등 모두 예술성과 작품성, 음악성을 고루 갖춘 창작발레들이다.


액자식 구성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갑자기 공연장의 불이 환해지면서 발레 공연장으로 입장하는 듯한 관객들이 등장을 하기도 한다. 이게 참 묘미였다.

 

인기많다는 공연 티켓사려고 힘 좀 쓴 오빠와 환호하는 여자친구. 많아봤자 6살은 되었을까싶은 아이에게 헨리 3세와 발레의 역사를 설명하며 공연장으로 향하는 열혈어머니. 보는 내내 객석이 빵빵터졌다.

 

발레 공연 관계자, 무용인들이 얼마나 이런 관객들을 많이 봤으면 싶을 정도로 정말 현실감 있는 인물들이었다. 또한, 이렇게 중간 상황극 때 조명을 밝히고, 다시 극으로 들어가면서 조명을 꺼주니 짧은 인터미션을 가진 듯한 착각도 좀 든다.

 

 

The Ballerina-ⓒ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2).jpg

 

 

그리고 오늘도 우아하게 등장하셨던 문훈숙 단장님.

 

말뿐이 아닌 직접 춤을 시연하시며 발레와 한국무용의 차이점, 그리고 둘을 어떻게 섞었는지 안내해주신다. 발레를 모르는 관객 입장에서도 쉽게 이해되고, 극 감상의 친절한 가이드가 된다.

 

사담이지만, 이끌고 계셨던 자원봉사단 '애원'의 이사장 자리에선 내려오신건지 궁금해진다.

 

애원 연차보고서인 <꿈씨 오쟁이> 서문에 늘 이사장 직함으로 등장하셨는데 24년도 연차보고서에서 새로운 분이 올라왔다. 단장님이 쓰셨던 연차보고서의 따뜻한 글을 좋아했던 사람으로서는 조금 아쉽다.

 

 

The Ballerina(하남)-ⓒ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410).jpg

 

 

난 4개의 창작발레 중 2개 정도는 전체 공연을 관람했었다. 그때도 많이 울고 웃고 하면서 봤는데, 이렇게 짧게 하이라이트를 보는 것도 좋았다. 발레의 숏츠 버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등장인물들의 휴머니즘적 성격을 보여줬던 초반과 완전히 대비되는 전투 모드 발레리나들의 변신도 관람포인트였다. 연습때는 거세게 몰아쉬던 숨소리, 우는 소리와 실수는 어디에 갔는지 완전히 준비된듯 보이는 발레리나들이 마치 전장에 나가는 장수들처럼 보인다.

 

 

The Ballerina(하남)-ⓒ Universal Ballet_Photo by Kyoungjin Kim (71).jpg

 

 

마무리는 다시 발레 연습실로 돌아간다. "우리 호두까기 인형 총 40회 잡힌거 봤어?"하는 투덜거림, 그럼에도 묵묵히 시작되는 연습은 무대 앞과 뒤, 삶과 예술이 공존하는 그들의 삶의 현장을 보여준다.

 

무언가가 쉬워보인다면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문장이 떠오른다.

 

조금 유치할 것 같았던 시작이 적절한 각본과 연출을 만나 완성되기까지 각본가와 연출가가 얼마나 머리를 싸매고 글을 썼을까.

 

또한 4개의 기존 발레공연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품이었는데, 이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조명, 무대 연출과 미술, 음향과 옷 헤어 메이크업 등등, 몇시간 공연을 위해 몇 년을 공부하고, 좌절하고, 성장했을까. 저렇게 공중에서 가볍게 뛰어다니기 위해 이들은 얼마나 땀을 흘렸을까.


무대는 뒤가 더 매력적이다. 요즘 이 생각을 많이 한다.

 

모든 것이 정돈되고 다듬어진 무대 위와 다르게 땀과 눈물, 성공과 실패가 지저분하게 뒤섞인 무대 뒤가 진짜 사람이 사는 동네다. 이번 공연이 끝나고도 다음을 향한 창작의 고통은 계속되겠지만, 당신들의 노력이 허사는 아니었다고, 발레와 공연장의 삶을 선택해줘서 고맙다고 박수를 보내고싶다.

 

 

[한승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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