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HANEL, 장소의 정신③

글 입력 2014.09.28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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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안 패러독스


카펠이 기반을 닦은 샤넬 제국은 건재했다.

비아리츠 매장의 매출액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여서 가브리엘이 그곳에 머무르는 것은 당연했다. 로마노프 가문 사람들 몇몇이 과거 영화를 누리던 시절 휴가를 보내던 바스크 연안에 다시 온 것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그곳에 별장을 가지고 있었다.


패러독스(paradox). 사전적 의미로 ‘역설’이라는 뜻입니다. ‘러시안 패러독스’, 즉 러시아의 역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제1차 세계대전이 계속되면서 사교계의 휴양지는 비아리츠로 옮겨집니다. 1915년 가브리엘 샤넬도 아서 카펠의 후원을 받아 카지노와 호텔, 해변이 가까운 빌라 드 라랄드에 첫 의상실을 오픈합니다. 비아리츠는 당시 중립국이었던 스페인과 가까웠으며, 전선에서도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이 곳에서 샤넬은 도빌의 상류층 인사들뿐만 아니라, 스페인 부자들의 주문도 받아 의상실은 큰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비아리츠에는 러시아 망명자들도 많이 몰려들었는데, 1917년 러시아 대혁명을 기점으로 공동체가 크게 확대됩니다. 그 공동체에는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도 있었으며, 샤넬에게 반한 대공은 러시아 황제파 귀족들에게 샤넬을 소개합니다.


그 중에는 러시아 황궁의 조향사였던 에르네스트 보도 있었습니다. 이 둘의 만남은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샤넬의 대표 향수, ‘샤넬 No.5’를 탄생시킵니다. 샤넬은 에르네스트 보에게 No.5와 ‘뀌르 드 루시’의 제조를 일임합니다. No.5에는 인공합성물이 가미되어, 최초의 천연향이 아닌 추상적인 향수로 탄생합니다. 샤넬은 딱 떨어지는, 절제미 있는 사각형 향수병에 흡사 실험실의 시약병 이름표와 비슷한 디자인의 라벨을 붙입니다. 그리고 No.5에 대한 찬사의 의미로, 문자, 주사위, 바늘, 체스 말, 행운의 상징들, 암시적인 언어들을 섞어 다다이즘 풍의 콜라주로 된 수수께끼 그림 다섯 점을 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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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No.5,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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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장식 대문자를 사용해 콜라주 기법으로 꾸민 코코 샤넬의 이름>


샤넬은 황제파 러시아인들과 접촉하면서 옛 러시아 제국에게서 영감을 받았으며, 다수의 러시아인들을 자신의 의상실에 고용하였습니다. 샤넬이 고용한 드미트리의 여동생 마리아 파블로브나 대공비는 컬렉션에 쓰이는 자수 작업을 키트미르 공방에 맡겼습니다. 아래의 키트미르 직조들을 보면 러시아의 아방가르드 풍이 샤넬에게 미친 영향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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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눈종이에 그린 샤넬 직물의 초벌 그림>


당시 샤넬에게 영감을 준 러시아의 예술은 전통예술과 현대예술의 교차점에 놓여 있었고, 샤넬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이를 역설하고자 하였습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칼 라거펠트의 컬렉션에도 영향을 미치는데요, 이는 2007년 파리/모스크바 공방 컬렉션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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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파리-모스크바 공방 컬렉션 의상을 착용한 나타샤 폴리와 잉구나 부탄>




블루 트레인

그것은 그녀가 급속도로 영국의 환경에 거의 매료되다시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곳에서 받아들인 것을 제대로 헤아릴 줄 알았고, 이튼 홀도 금세 편안하게 느껴졌다. 영국 생활 초반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중세 분위기로 가득 채워진 성의 건축양식이라든가 그 모드 기상천외함에 애착을 갖게 될 정도였다.


‘블루 트레인‘은 1886년 ‘콩파니 데 바공 리’사가 개통한 ‘칼레-메디테라네 익스프레스’ 기차의 별칭입니다. 영국에서 출발하여 칼레와 파리를 거쳐 리비에라에 도착하는 이 기차는 푸른 강철로 만들어졌으며 푸른빛의 지중해를 볼 수 있어 ‘블루 트레인’이라고 불렸습니다.


20년대 가브리엘 샤넬과 영국 최고의 부호 웨스트민스터 공작은 연인 사이였습니다. 샤넬은 연인, 그리고 두 사람의 절친이었던 윈스터 처칠과 연어 낚시, 멧돼지 사냥, 승마, 항해, 사교계 만찬 등을 즐기면서 영국 귀족생활을 누립니다. 또 공작과 벽난로 앞에서 책을 읽고 온실에서 딸기를 따는 등 소박한 생활도 즐기는데요, 샤넬이 일 때문에 파리로 떠날 때면 공작은 손수 꺾은 들꽃으로 꽃바구니를 만들어 선물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샤넬은 공작의 요트에서 건축가 로버트 스트레이츠가 설계한 ‘라 파우자 별장’의 도면을 승인하게 되는데요, 사교계 명사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는 이 별장은 샤넬이 유년시절을 보낸 오바진 수도원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오바진 수도원의 교차 궁륭으로 이루어진 입구, 열주회랑, 로마네스크식 아치, 돌계단, 최소화한 장식 등이 별장에 차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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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사진은 라 파우자 별장, 아래 사진은 오바진 수도원>

샤넬은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함께 지내면서, 그에게서 받은 수많은 영감들을 그녀의 디자인에 녹입니다. 공작의 트위드 재킷, 캐시미어 가디건 등은 그녀의 컬렉션에 영향을 미쳤으며, 공작의 요트 선원들이 착용하는 베레모와 긴 바지, 하인들의 조끼 등에서 영감을 받기도 했지요. 이와 같은 그녀의 스타일은 현재 칼 라거펠트의 컬렉션에서도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2014 S/S 레디-투-웨어 쇼와 크루즈 쇼에서도 가브리엘 샤넬과 칼 라커펠트의 영감이 한데 어우러진 스트라이프 패션을 볼 수 있습니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게 여기서 나온 말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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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샤넬의 스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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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샤넬 크루즈 컬렉션, 블루&화이트 면 저지 세일러 스트라이프 티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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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롸지에르 컬렉션의 줄무늬 앙상블을 입은 까뜨린 멕네일>

1924년 6월 장 콕토는 위와 같은 사교계 생활에서 영감을 받아 ‘블루 트레인’이라는 발레 극을 연출합니다. 해변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으스대고 시시덕대는 상류층 사회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담은 극으로, 극중 무대의상은 샤넬의 평소 운동복에서 착안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이는 샤넬이 선원들에게서 차용한 스트라이프 티셔츠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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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블루 트레인의 무용수들에 둘러쌓인 장 콕토>




새로운 세계



- What do you wear to bed?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나요?)

- CHANEL No.5...


전 세계의 연인 마릴린 먼로는 1960년 저널리스트 조지 벨몬트와 프랑스 마리끌레르에 실릴 인터뷰를 하던 도중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냐는 질문에 CHANEL No.5라고 대답합니다. 2010년 샤넬은 이 인터뷰를 입수하여 광고로 제작하는데요, 위의 영상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나에게 있어 미국은 감탄과 애정의 대상이다.“라고 말합니다. 1914년 ‘우먼스 웨어 데일리’는 도빌 매장의 샤넬 스웨터의 엄청난 성공을 예견하였으며, 1924년 No.5는 미국 백화점에 출시되자마자 어마어마한 매출을 남깁니다.


1931년, 영화 제작자 사무엘 골드윈은 ‘당대의 과시적인 사치스러움과는 동떨어진, 품위 있는 시크함을 할리우드에 도입할 수 있는 유일한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에게 영화 의상 제작을 의뢰합니다. 하지만 너무 단순하다는 이유로 예상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하지만 1931년 잡지 ‘베니티 페어’는 샤넬에게 ‘모던함의 원칙을 패션에 적용한 최초의 디자이너’라는 극찬을 남깁니다.


장 콕토와 가깝게 지낸 샤넬은 그의 절친과도 친구가 되었는데요, 그 중 한명인 장 드보르드는 1934년 3월 주간지 ‘문학․예술․과학 소식지’에 ‘그녀는 여왕이다.’라는 기고문을 남깁니다. 샤넬은 문인 친구들을 위해 리츠 호텔에서 만찬을 열곤 했는데요, 그 중에는 20세기 소설 중 가장 위대하다는 평을 받는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와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있었습니다. 20세기 문화의 황금 홍수 속에서 샤넬 또한 그녀의 이름을 남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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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토가 그린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가브리엘 샤넬의 초상>

미국에서 샤넬은 계속해서 승승장구 합니다. 위에서 보았던 마릴린 먼로의 인터뷰로 No.5는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앤디 워홀은 No.5 시리즈를 만들어, 새로운 아이콘의 탄생을 표현하였지요. 이어서 샤넬은 1957년 텍사스 댈러스에서 패션 산업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패션계의 오스카상’인 니먼 마커스 상을 수상합니다. 그리고 영부인 재키 케네디까지 샤넬의 수트를 입고 공식석상에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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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의 작품, 'CHANEL(D)'>




샤넬 정신


샤넬의 컬렉션 하나하나는 고독한 귀환이자 그녀가 결코 이야기한 적이 없는 자신의 과거…

그 과거의 비밀 속으로 떠나는 길고도 은밀한 여행 같은 것이었다.


1918년 가브리엘 샤넬은 깡봉 가 31번지를 매입합니다. 방랑 생활을 하던 그녀는 30년대가 되어서야 그 곳에 거처를 마련하는데요, 그 곳이야말로 샤넬의 인생과 정신이 한데 모인 결집체였습니다.


가브리엘 샤넬은 “나는 계단에서 살았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현재 샤넬 하우스는 1층은 부띠끄, 2층은 꾸뛰르 살롱, 3층은 그녀의 아파트, 4층은 칼 라거펠트의 스튜디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계단은 이 4층을 이어주는 다리인 셈입니다. 아르데코 양식의 층계에는 기하학적 라인의 검은색 철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베이지색 카페트가 깔린 계단의 가장자리에는 흰색 테두리가 쳐져 있습니다. 계단의 벽에는 좁고 길다란 거울을 연속으로 붙여 놓아, 손님들은 의상을 입고 걸어 내려오는 모델들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샤넬은 계단에 앉아 조용히 자신의 쇼를 지켜보곤 했습니다. 이 층계는 매일 아침 가브리엘 샤넬이 도착하기 직전 샤넬 No.5를 뿌려두어 향기로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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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깡봉가 31번지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 앉아 있는 가브리엘 샤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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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아파트에 있는 가브리엘 샤넬>

리틀 블랙 드레스, 트위드 재킷, 진주 목걸이, 퀼팅 백, 향수병… 샤넬을 대표하는 시그니처 아이템들은 현재 칼 라거펠트에 의해 과감히 재해석되고 있습니다. 기본이 충실해야 변화가 가능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샤넬은 그녀가 머물렀던 장소에서 영감을 받아 패션 역사상 길이 남을 디자인들을 창조해 냅니다. 그 아름다움은 불변한 것이기에, 여기에서 과감한 변화와 오마주 등이 가능한 것입니다. 파우더 케이스와 향수병이 가방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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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962년 S/S 컬렉션의 트위드 재킷, 1994년 F/W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인조모피자켓

60년대 퀼팅 2.55 백, 2013년 S/S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훌라후프 빅백

아래는 2013년 S/S 레디-투-웨어 컬렉션의 바이컬러 줄무늬샌들>


“유행은 지나지만 스타일은 남는다.”

가브리엘 샤넬이 남긴 말입니다. 그녀가 남긴 말처럼 그녀의 디자인, 그리고 거기에 깃든 영감과 정신은 한 세대가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오더라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아름다움입니다.




이로써 가브리엘 샤넬의 장소와 인생으로의 여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그녀의 디자인 모두 그녀의 인생이 담기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한 여인의 인생이 아름답고 거대한 패션제국을 만들어 불변의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우면서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문화샤넬전 ‘장소의 정신’은 DDP에서 10월 5일까지 개최됩니다. 아직 가지 못하신 분들은 꼭! 방문하셔서 브랜드 샤넬에 담긴 가브리엘 샤넬, 그녀의 영감과 정신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조 라이트 감독이 연출한 키이라 나이틀리의 '코코 마드모아젤' 향수 광고를 마지막으로

Bye!


[서나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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