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화려한 무대 뒤의 일상 - 유니버설발레단 '더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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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들 발레를 우아하고 예쁘기만 한 춤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백조가 물 위에 고고하게 떠 있기 위해 열심히 물 밑에서 발을 저어야 하는 것처럼, 발레는 사실 엄청난 근력이 요구되는 극한의 춤이다.
유니버설발레단의 <더 발레리나>는 언뜻 화려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발레 무대 뒤 발레리나들의 삶을 그린다. 연습실부터 공연 중 백스테이지 모습까지, 발레에 대해 잘 모르는 발레 입문자들에게 특히 더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다가가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코리아 이모션 정>의 <비연>과 <미리내길>, <파가니니 랩소디>, <맥도웰 2인무> 등 유니버설발레단의 대표 레파토리를 갈라쇼처럼 맛보기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들이 다 들어오기도 전에 발레리나들이 한 명씩 발레 연습실로 연출된 무대에 들어섰다. 발레리나들이 몸을 푸는 동안 관객석이 잦아들고 객석 불이 꺼지면서 본격적으로 발레리나들의 연습 장면이 펼쳐졌다. 지난한 기본기 반복 연습부터 단체 군무 연습 장면까지, 보통의 클래식 발레 공연에선 절대 볼 수 없는 다채로운 연습실 시퀀스가 이어졌다.
마치 오픈 리허설을 지켜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레 클래스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떤 부분에선 극사실주의적인 묘사에 기시감이 들고, 어떤 부분에선 무용수의 다소 과장된 몸짓에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발레리나/리노들의 정직한 대사톤도 웃음 포인트였다. 발레 공연에서는 무용수가 말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더 진귀하고 귀엽게 다가왔다.
연습실 장면들이 끝나자 돌연 관객석에 실제로 불이 켜지면서 보통 때의 유니버설발레단 공연 시작처럼 문훈숙 단장님이 단상에 올라와 공연 소개를 하셨다. 평소와 같이 문훈숙 단장님은 네오 클래식 발레의 특징, 한국 무용과 발레의 차이점을 몸소 예시를 보여주시면서 설명해 주셨다. 이때 관객들도 공연의 일부가 되는 듯한 묘한 기분이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할까. 아니, 오히려 이 기점에서부터 본격적인 '무대'를 선언한 셈이니 경계를 명확하게 그은 것에 가깝겠다. 공연 중간에 인트로 섹션을 넣는 획기적인 연출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자 방금 전까지 연습실에서 비슷한 동작을 반복하고 가끔은 우스꽝스럽게 실수도 하던 무용수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우리가 익히 아는 완벽한 발레 퍼포먼스의 향연이 펼쳐졌다. <파가니니 랩소디>와 <맥도웰 2인무>가 공연될 때는 무대 한쪽에 백스테이지 공간을 연출하여 공연 중 백스테이지에서의 무용수들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발레 무대도 진지하게 관람하고 싶은 관객으로선 무대 한쪽이 가려진 게 조금 아쉬웠던 찰나, <코리아 이모션 정> 무대부터는 백스테이지가 사라지고 완전한 공연이 되었다. 몇 달 전 첫 관람 이후 두 번째 관람이었지만, 그때 느꼈던 감동은 여전했다.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이 처음인 관객들에게는 본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기존 공연들을 본 적이 있는 관객들에게는 재관람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화려한 공연 후 다시 무대가 연습실로 바뀌었다. 무용수들은 처음 시퀀스 때처럼 기본기를 반복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장면 위로 발레리나의 나레이션이 얹어졌다. 발레가 얼마나 고된 연습과 피나는 노력 끝에 피어나는 찰나의 예술인지.
<더 발레리나>는 획기적인 구성과 연출로 발레 입문자들에게 아주 친절하면서도 재밌게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문훈숙 단장님이 매번 공연 전에 작품 해설을 직접 해주신다거나 <더 발레리나>와 같은 레파토리를 개발하는 등 유니버설발레단의 이런 대중 친화적인 행보가 무척 인상 깊다. 이렇듯 발레나 클래식 예술에 흔히 따라붙는 ‘고급 예술’이라는 이미지를 다양한 시도들로 탈피하려는 노력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조금 더 친절해진다고 예술의 기품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니.
[황연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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