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글터"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으신지.
 
제게 글터는 말 그대로 '글을 지어낼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일기장이 될 수도, 인스타그램이 될 수도, 혹은 아트인사이트 글쓰기 게시판이 될 수도 있겠죠.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글은 늘 목적에 맞게 지어지곤 합니다. "글터"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 계기 또한 연필로는 잘만 써지던 글들이 자판 위에서는 전혀 적히지 않는다던가, 노트에 지금 이 상황에 딱 적절한 이미지를 넣을 수 없어서 답답하다던가 하는 경험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목적에 맞지 않는다면 지어질 수가 없는 거죠.

목적이라 함은 아날로그냐, 디지털이냐. 타인에게 보여지느냐, 보여지지 않느냐. 등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제 경우에는 두 개의 블로그, 아이폰 메모 어플, 아래아 한글, 윈도우 메모장, 아트인사이트 게시판, 심지어는 X(트위터) 비공개 계정까지 저의 글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날로그에 터를 잡고


 

학창시절에는 몰래 쓰는 노트가 있어서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3개월 정도의 간격으로 뭔가를 남기곤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노트는 분명 저만 볼 수 있는 곳에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들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피를 차지하다보니 나중가서는 놓을 공간도 여의치 않았고요.

 

하지만 직접 손으로 펼쳐볼 수 있고, 당시의 필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생생한 감각이 살아있습니다. 막 쓴 글씨이거나 글자 사이 간격이 좁다면 조급함을, 느슨한 글씨이거나 간격이 넓다면 여유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거겠죠.

 

아날로그의 경우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적게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볼펜보다는 샤프 펜슬을 선호하는 편이라 쉽게 지울 수 있었겠지만, 지우개 가루가 남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니 가능한 한 번에 적기 위해서 머릿속에 최대한 온전한 문장을 생각하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끼는 노트는 중학생 시절 동네 문구점에서 산 수첩 크기의 스케치북과 고등학생 시절 알라딘에서 산 비틀즈 앨범 커버가 새겨진 노트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당시에는 정말 기억이 필요한 가장 절박한 순간에 앞서 펼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가본 음악 페스티벌이라던가, 갑작스러운 입원 경험 같은 거였죠.
 
당시에는 글쓰기가 제 일상에 포섭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바야흐로 디지털 아카이빙의 시대  

 

최근 들어서 가장 즐겨 이용하는 글터는 네이버 블로그입니다. 수능 시험이 끝나자 마자 시작하게 된 블로그는 그로부터 수년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블로그를 운영한 이후에 더 많이 쓰게되었습니다. 현재로서 임시저장 글이 무려 700개에 육박하니 말입니다.

 

이 이후로 글쓰기는 제 일상에 포섭되었습니다. 매일같이, 하루도 빼먹지 않고, 디지털 글터를 열어둡니다. 사유하는 순간이라면 내내. 그리고 뭔가가 생각나면 가능한 빠르게, 즉시 적어내려 합니다. 디지털 글터를 사용하면서 '쓰는 것'이 덜 번거로워진 것이 이것에 한몫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제게서 아날로그 방식은 무심코 폐기된 지 오래됐습니다. 현재는 디지털 사료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날로그가 주는 무게와 다르게 느껴지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를 모두 겪어왔기에, 양자가 갖는 확연한 물성의 차이를 알고 있다는 것이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따라서, 디지털 글쓰기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습니다.

 

간편한 디지털 앞에서는 글을 '적는' 노력을 덜 하게 되고, 더해서 이미지나 영상 등에 기대게 되는 게 가장 큰 함정인 것 같습니다. 더 빨리, 더 많이 적을 수는 있을지언정 글 한 편이 주는 무게감과 밀도는 옅어지는 것이죠. 이럴 때일수록 의식적으로 글터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만약 요즘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면, "글터"를 한번 바꿔보시는 게 어떠실까요? 기분전환도 될 것이고, 안 적히던 글들이 마구 적히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 생각, 그것이 지어지기 위한 '목적'에 맞는 글터가 각기 존재하니까요.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