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는 소모품이다. 듣고 싶을 때까지 다 듣고 나면 어느 순간 찾지 않는 때가 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문득 떠올라 그때 서야 또 한두 번 정도 듣곤 추억이라는 단맛이 다 빠지면 다시 기억 저편에 묻어 둔다. 그래서 1년 전엔 무슨 노래가 유행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달 전에는 탑 100에 무슨 노래가 있었는지도.
개인적으로 나름 좋아하는 장르가 있어서 매일 바뀌는 스트리밍 사이트의 유행을 쫓아가지는 않지만, 장르 내에서는 매번 새로운 뮤지션과 새로운 앨범을 찾아 헤맸다. 또 어떤 내 취향을 저격하는 사운드가 있을까. 내가 듣는 음악이랑 비슷하지만 새롭고, 알 만한 가수들을 다 알지만 또 아직도 내가 모르는 그런 가수들이 나타나길 기대하며. 시간을 뒤로, 더 뒤로 돌려 1960년대 음악을 듣기도 하고 미국, 영국, 일본 심지어는 한 단어도 알아들을 수 없는 프랑스, 멕시코 음악까지…
그런 나에게 주기적으로 몇 번이고 계속 찾아와 꾸준히 듣게 만드는 음악이 있다. 그들의 음악이 또 어느 순간 뇌리에 스치면 담담히 ‘Oasis’를 검색한다.
오아시스는 작사, 작곡을 하는 형 노엘 갤러거와 프론트 맨 동생 리암 갤러거로 구성된 9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락 밴드다. 지금은 형제 간의 불화로 해체되고 각자 활동하고 있는 중이지만 여전히 그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다. ‘Wonderwall’은 영국 국가라고 할 정도로 모르는 이들이 없으며 ‘Don’t look back in anger’의 Sally는 도대체 누구냐고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이 펼쳐진다. 형제가 같이 응원했던 축구팀 맨시티가 우승하는 날에는 ‘그래서 언제 재결합할 건데?’라는 댓글이 무수하다.
나 역시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 중 하나다. 웬만해선 락 음악만 듣는 사람이 되는 데 한몫했고, 베이스 기타를 배우게 되었고, 남들 앞에 서는 것을 꺼리던 나를 무대 위로 올라가게 만들었으니 이 정도면 오아시스의 영향이 꽤나 컸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내가 알고 있는 음악 중에서 가장 낙천적이다. 한결같이 세상은 살 만하다고 강하게 외친다. 어제도 오늘도 어김없이 오아시스의 음악이 땡긴다. 마음만치 잘되지 않는 그런 시기엔 낙관적인 그들의 위로가 필요하다. 근데 조금 거친… 그래서 땅바닥을 보고 걸으면 내 뒤통수를 한 대 치며 ‘어깨 피고 살아 이 XX야’라고 다정하게 비속어를 꽂는 갤러거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피며 무심코 하늘을 한 번 바라본다. 그렇게 바라본 하늘은 푸르고, 그래 나는 이 좋은 세상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오아시스의 음악은 그런 것이었다. 단순한 기타 리프를 사용한 것처럼 어렵게 빙빙 돌려 말하지 않는다.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일어나서 밖으로 좀 나가봐. 계획대로 되진 않더라도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춤추고 싶다면 춤출 수 있어. 지겨운 이 도시, 나도 지겨워. 그래도 우울해하지 않을래. 망가졌지만 어떻게 되든 괜찮아. 이렇게 반복되는 후렴구들에 중독되어 따라 부르다 보면 어느 샌 나도 아무렴 어때 싶어 같이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삶에 관한 여러 질문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애쓰는 시간은 천하의 오아시스에게도 커다란 숙제다. 그리고 꽤 많은 노래에 그런 고민들이 늘어져 있다. 행복이 뭔지, 우울이 뭔지, 나는 뭔지, 사랑하는 그녀는 뭔지. 그럼에도 그 끝은 뭐든 괜찮다고 한다.
자본주의 앞에서 방황하고 있는 청중들은 젊음과 패기로 가득한 오아시스가 부르는 그런 노래를 듣기 위해 넵워스(Knebworth)에 모였다. 무려 28만 명이나. 매일 아버지에게 맞았고 학교에서는 퇴학까지 당했던 노엘 갤러거가 말하는 그럼에도 영원히 살고 싶다는 가사들에 노동계급 청년들은 환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죽을 만치 힘들지만, 사실은 살고 싶다. 가능하다면 영원히.
그래서 오아시스의 여러 노래 중 랜덤 재생을 해보면 그 어떤 노래가 나오더라도 미처 다듬어지지 못한 내 청춘처럼 거칠게 노래하고 있는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오아시스의 가사는 믿음이 간다. 그들은 겸손이라는 미덕을 따른다고 자신을 낮추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항상 자신감 넘치는 솔직한 태도를 보여준다. 나 잘났다고 말하고, 주변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솔직한. 이라고 포장했지만 욕하고, 약하고, 통장에 8,700만 파운드가 있는 세계 최고의 밴드지만 I WANT MORE! 이라고 소리치고, 무대 위에선 토라지고 싸운다.
이 정도로 솔직하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팬을 사랑하는 이 마음이 진심인 것 역시도 당연하다. 어떤 면에서도 가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기에 담백한 그 가사들에 마음 놓고 공감한다. 음악은 한없이 다정해서 그건 그거대로 따뜻하고, 노래를 안 부르면 욕설이 난무하니 또 나 대신 욕해주는 것 같아서 그건 그거대로 속 시원하다.
이상은 불완전해서 금방 깨지기 마련이고 현실은 견고하다지만, 그렇게 오아시스는 부서지고만 깨진 조각들을 모아 매번 다시 붙여준다. 그렇기에 어딘가에 자꾸만 부딪혀 깨지고 말 때 오아시스를 찾아 손가락이 골라주는 대로 노래를 듣는다.
이들의 노래를 종종 추억하곤 하지만 매일 같이 들으려 하진 않는다. 왜 오아시스의 노래를 많이 불러 주지 않느냐는 팬의 질문에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노엘 갤러거의 말처럼, 그저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툴툴 털어내고 현재에 집중하며 낙관적인 미래를 그려 나가야 하니까 말이다.
그때 그 시절 가진 것 없어도 당당하고 젊고 패기 있던 Oasis가 말아주는 음악들이 좋았고, 현재의 가진 것 많은 철 많이 든 갤러거 아저씨들은 각자의 밴드에서 또 지금에만 가지고 있는 것들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그들은 꾸준하게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음악을 여전히 무척이나 좋아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