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라는 거대함, 광활함이 주는 공간성
배명훈 작가의 [청혼]은 우주에서 군 복무 중인 ‘나’가 지구에 사는 ‘너’라는 존재에게 보내는 편지체 형식의 소설이다.
처음 청혼이라는 제목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적 사랑' SF 소설이라기에 '우주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생각하기도 했다. 혹은 몇 백 시간 떨어진 우주에서 교신하는 애절한 사랑 이야기인가라는 상상을 펼치며 책을 들었다. 책의 내용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느낌과 비슷한 듯 조금 달랐다.
궤도연합군은 입자를 빛의 속도로 날려보내는 절대무기 루시퍼를 갖고 있다. 우주 공간에서 루시퍼의 표적이 된 물질은 모두 '무'의 상태로 돌아갔다. 그러나 첫 전투에서 '나'는 1분의 오차로 적함을 한 대만 파괴하게 된다.
소설 속 우주의 분위기는 적막하고 고요하다고 묘사돼 있다. 사실 우주와 지구의 차이점은 빛과 시간이다. 작가는 우주의 특징을 소설에 잘 녹여냈다. 우주에서 함대를 건설하고 중력을 느끼고 싶어 휴양선을 만들어 '위' '아래'를 구분한다. 우주에서는 체액이 돌지 않아 얼굴이 커진다. 우주는 지구와 다르게 낮과 밤의 개념이 없어 시간으로 흘러간다.
그럼 소설의 내용은 어떨까?
소설 [청혼]은 우주 전쟁과 로맨스가 교차되며 연인을 향한 사랑을 중간중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화자인 '나'가 우주함대에서 복무하며 겪는 이야기들을 대화하듯 편지 형식으로 풀어나가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군 복무 중인 주인공은 과거 예언서에 적힌 '외계 함대의 공격'을 확신하며 목성 근처에 함대를 파견해 놓는다. 예언대로 외계함대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 지구에서는 궤도연합군 세력이 점점 커지고 반란을 일으킬 것이란 생각에 크게 경계하고 있다.
상대와 내 마음과의 조준거리
오랜 전쟁 중, '나'는 달콤한 휴식을 받는다. 함대를 정비하는 동안 휴가를 받아 170시간을 날아 40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고 180시간을 날아 복귀했다.
“보고 싶었어” 하고 내가 너에게 말했을 때,
“나도” 하고 네가 나에게 대답해주기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순간을,
나는 행복이라고 기억해. 사랑한다는 너의 말에 단 한 순간도 망설임 없이 대답해도 너에게 닿는 데 17분 44초가 걸리고 그 말에 대한 너의 대답이 돌아오는 데
또다시 17분 44초가 걸리는 지금의 이 거리를 두고
내가 가장 숨 막히는 게 뭔지 아니? 그건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의
그 긴 시간 동안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갑갑함이야.
- 청혼 「35p~36p」
'나'와 '너는' 우주에서 지구까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데 시간차가 발생했다. 그의 말이 전달되는데 17분 44초, 그녀의 대답이 다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 17분 44초다.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군함들보다 불안한 건 '나'와 상대방의 마음이 같은 속도와 방향으로 가지 않을 때이지 않을까.
나는 네가 남긴 중력장이 싫지 않아.
네가 머물다 간 자리에 남아 있는 그 커다란 공백을 더듬어서 네가 내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복원 하는 순간, 그런 식으로 다시 네 존재의 실루엣을 되살려 낸 순간, 나는 내가 그걸 얼마나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돼. 아, 이 모든게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 청혼 「116p」
배명훈 작가가 말하는 우주 한가운데 남겨진 고독, 네가 왔다간 공간을 복원해서 느껴지는 중력장. 굳이 ‘보고싶다’라는 말 대신 너의 공간을 묘사하는 부분이 서정적으로 느껴졌다.
우주학, 군사학, 중력, 함대 등 우주에 대한 요소도 직접 이미지를 찾아보거나 상상해가며 음미해 볼 수 있는 게 소설의 매력이었다. 읽으며 머리로 우주전쟁에 대해 떠올려 봤다.
광활한 우주, 블랙홀처럼 깊어지는 공간에서 나는 너에게 우주 저편에서 별이 되어준다고 말하며 소설을 마무리 짓는다. 저 멀리 반짝반짝 빛나는 그의 사랑의 소리가 밀려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