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배웠다

글 입력 2014.09.2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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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도 희망TV 24. 노동력 착취를 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소개되었다.
하루종일 축구공을 꿰매어 잇는 일을 하는 나랑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어린 아이들.
하지만 정작 그 축구공을 가지고 공놀이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일을 해서 번 돈으로는 절대 공을 살 수 없었다.
그 후로 꽤 오랫동안 나는 축구공을 볼 때마다 그 애들 생각이 났다.
 
 
#2. 마트에서 발견한 공정무역 표시가 붙은 초콜렛.
엄마한테 이 표시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공정하고 올바른 루트를 통해 만들어지고 거래된 초콜렛이라고 했다.
나는 그후로 종종 그 초콜렛을 보면 사먹었다.
딱히 다른 것들과 큰 차이는 나지 않았지만,
조금 비싼 값을 주고 이걸 산 내 덕분에 누군가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겠지.
#3. 아마도 일밤. 여러 코너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생기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암흑기.
꽤 오래 버티고 있던 '단비'라는 코너가 하나 있었다.
제대로 된 식수를 얻기 어려운 아프리카 지역의 동네를 찾아다니면서 우물을 뚫어주는 프로젝트.
땡볕에 땀을 줄줄 흘리며 노력하는 연예인들과 땅에서 물이 솟구칠 때 동네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은 나름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매 회 반복되는 패턴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
저 우물, AS는 해주는 건가?
나는 학교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이 생각해 낸 경제원리 중 가장 합리적이고 공평하다'라고 배워왔다.
그래서 그런줄 알았는데,
#1-#2-#3를 거치면서 점점 그 말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1보다는 #2와 #3가 훨씬 감동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원리만 놓고보면
​축구공의 가격 경쟁력을 위해 저렴한 노동력을 찾는 것은 당연하고,
품질이 높지 않은데 더 비싼 초콜렛을 사먹거나 아무 대가도 없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우물을 파주는 건 잘못된 행동이다.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우리가 다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역행해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몇 해 전, 커피를 마시고 있던 코너 우드먼은 커피 컵에서 공정무역재단의 로고와
'당신이 마시고 있는 커피가 우간다 부사망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여줍니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과연 내가 이 커피를 마신다고 이 주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질까?
코너와 나는 비슷한 궁금중을 품었지만,
나는 그 궁금증을 금방 머릿속에서 지워내버렸고
코너는 그 길로 좋은 직장을 때려치우고 직접 답을 찾아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리고 나서 써낸 게 이 책,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배웠다>다.
책의 첫 장은 니카라과에서 바닷가재를 잡는 소년들로부터 시작한다.
​소년들은 상상밖의 열악한 환경에서 매일 목숨을 담보로 한 사투를 벌인다.
​이들이 잡은 바닷가재는 도매상 등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미국인들의 식탁에 오른다.
미국의 외식 기업들은 이미지메이킹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들은 '늘 고객을 생각하고, 최고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말을 달고 살지만
고객들에게 그 바닷가재가 어떻게 잡힌 것인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바닷가재가 어떻게 잡힌 것인지 일일이 확인할 수가 없다는 게 그들이 밝히는 이윤데,
위험한 심해 다이빙으로 잡힌 바닷가재가 총 유통량의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또, 미국 기업들이 의지만 있다면 원산지에서 가재가 어떻게 잡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다.
결국 기업들은 바닷가재 잡이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의 이런 '모르쇠'는 바닷가재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 콩고 민주 공화국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기업의 윤리의식이 문제라면 공정 무역 인증 마크가 붙은 걸 사는 건 어떨까 싶지만, 그것도 영 개운치 않다.
영국, 탄자니아, 코트디부아르의 사례를 보면,
인증마크를 붙이는 것은 이미 하나의 상술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뿌듯함을 심어주고 더 많은 돈을 가져오는 상술.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공정 무역 인증 단체에서는
마크를 다는 대가로 단체에 내야 하는 비용을 야금야금 올리고 있다.
즉, 공정 무역 상품의 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는데, 그 수혜자는 생산자가 아닌 인증 단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인증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라면, 자국 정부가 나서서 가난한 생산자들을 도와주면 되지 않을까.
안타깝게도, 이 역시 어렵다.
​책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라오스로 대표되는 '생산자들의 정부'는 국민들을 지켜주기에는 너무 무력하다.
이웃 국가에 휘둘리고, 국제적인 압력에 늘 눌리는 처지다.
이 나라 국민들이 합법적, 윤리적으로 돈을 벌면서 생계를 잇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쯤 되면 갑갑하다.
세상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건, 정말 이상적인 일인 것일까.
​하지만 코너 우드먼은 머릿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윤리가 돈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굳이 세계일주를 가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뻔한 이야기다.
하지만 난 현실과 생각은 달랐다"라고.
그의 고백처럼 책에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 중인 사람들도 많이 나온다.
영국의 ​커피사업자 데이브와 이안, 아프가니스탄의 사프란 사업가 가파르, 탄자니아의 커피 농장주 벤테.
이들은 생산자와의 직거래를 통해 싼 값에 양질의 상품을 사들인다.
좋은 상품은 더 높은 값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생산자들은,
더 많은 이익을 보기 위해 생활비로 쓰고 남는 수입을 다시 농장에 재투자한다.
생산자의 생활과 상품의 질 모두가 좋아지는 선순환 효과다.
​물론 이런 사업자들은 아직 전체 사업자 중 극히 일부다.
그럼에도 코너 우드먼이 이들이 희망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들이 철저히 자본주의의 원리에 입각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데이브, 이안, 가파르, 벤테 모두 가난한 생산자들에 대해 측은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게 다다.
이들은 상품을 정당한 가격으로 매입할 뿐,
무상원조를 해준다거나 자선사업을 펼치지는 않는다.
​반면 세계의 수많은 정부기관과 NGO에서 온 지원 중에는
이미 그 의미가 퇴색된 것이 많다.
더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우물, 선생님이 없어 폐교가 되어버린 학교가 그렇다.
책임을 질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제몫을 못하게 되어도 그대로 방치되고 만다.
결국 코너가 얻은 답은 다시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불공평한 세상을 만들고 있다, 는 기존의 관념과는 다르게
자본주의를 제대로 사용하면 충분히 더 많은 행복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논리다.
단 ​한 가지 붙는 조건은 '양심'이다.
사업자가 갑, 생산자가 을이라는 관계에서 내가 폭리를 취하지 않겠다는 양심
​내가 산 상품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는 건지 정확히 알겠다는 양심
​이상적인 자본주의를 실현하기에는 여전히 너무나 많은 장벽이 있지만,
모두가 이 양심을 기초로 움직인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
직접 다녀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책.
열악한 노동환경과 그 때 그 상황의 분위기나 느낌 같은 게
읽으면서 머릿속에 잘 그려졌다.
​자기가 겪은 에피소드와 함께 굉장히 많은 통계/연구자료들도 함께 제시하기 때문에
주관적인 주장도 부담스럽지 않고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나 하나 잘 살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전세계 사람들까지 어떻게 신경쓰나-
라는 생각도 들었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나니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괜히 어깨가 무거워졌다.
[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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