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Detachment _ 가르치고 배우며 우리는 괜찮아지길 기도한다. [영화]

글 입력 2024.05.04 14:5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유난히 춥고 힘들었던 이번 겨울방학을 돌이켜보며 그때 쓴 일기를 들추어 보았다.

 

늘 필요 이상으로 과잉되어 느껴졌던 그때의 감정들과 기록들은, 이미 날씨가 초여름처럼 더워지고 저녁이 되면 선선하게 바람이 불어 기분 좋게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지금의 계절에 차가운 눈의 촉감을 상상하는 것처럼 약간은 현실감이 떨어지게 다가온다.


다만 그때 적어놓았던 것 중 아직도 내 마음을 울리는 게 있다면 일기 한 편을 가득 채운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이다. 배움과 가르침에 대한, 그리고 인생의 힘든 순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화인 “Detachment”이다.

 

 

포스터 디채티.jpg

 

 

디태치먼트 (2014) 는 애드리언 브로디가 주연한 미국의 독립영화로, 문제아가 가득한 반의 임시교사로 근무하게 된 헨리 바스의 일상을 쫓아간다. 완벽하게 유럽풍의 외모에 우수 어린 눈동자를 가진 애드리언 블로디가 분한 헨리 바스는 한마디로 시적인 남자다. 우리를 현혹하는 속물적인 것들에 대해서 경계하고 날을 세워서 세상을 바라보지만 동시에 아직 배워야 하고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는 어린아이들에게 따뜻한 품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다.

 

 

에리카.jpg
헨리와 에리카의 대화 장면. 대화의 내용은 아름답지 않지만 이 장면의 미감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가 극 중에서 만나게 되는 학생 중 비중이 있는 아이들은 크게 두 명이다. 우선 그가 한밤중 타고 있는 버스에서 다른 남성과 성매매하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는 같은 정류장에 내리면서 대화를 시작하게 된 에리카가 등장한다. 에리카는 보호받지 못한 채 성매매하고 거리를 전전하는 어린 10대 소녀이고, 두들겨 맞은 그녀를 집에 데려가 치료해 주고 손은 전혀 대지 않는 헨리가 안전하다고 느끼고는 의지하게 되면서 임시 보호의 형태로 같이 살게 된다.

 

 

메러디스.jpg
메러디스가 유일하게 작품을 보여주는 사람,헨리

 

 

나머지 한 명은 헨리가 임시 문학 강사로 있는 문제아 반의 외톨이 메러디스. 그녀는 뚱뚱하고 하등 쓸모가 없다고 그녀에게 폭언을 쏟아붓는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아주 어두운 사진들을 찍는다. 말 그대로 어두운. 흑백의, 그리고 찰나의 사람들을 우울하고도 오묘한 외양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자르고 오리고 붙여서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두 소녀 모두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았고, 사랑받지 못했으며 어떻게 스스로 이 세상을 잘 살아 나가야 할지해서 전혀 배우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 헨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알려주는 일종의 구원자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디태치 1.jpg
우리는 배워야한다, 우리 스스로를 보존하기 위해서.

 

 

“동화되다 Assimilate, 무슨 뜻일까? 흡수하는 것이지. Ubiquitous  언제 어디서나. 어디서나 존재하는 동화란 무엇일까? 언제든지 어디서나 무엇을 흡수하는 것… 이중사고 double think 한 번에 반대되는 두 가지 신념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 두 가지를 진실이라고 믿는 것.


거짓인 걸 알면서, 고의로 그 거짓말을 믿는 것. 일상생활에서의 예를 들지.

행복해지려면 예뻐져야 해, 예뻐지려면 성형수술을 받아야 해, 날씬해져야 하고 유명해져야 하고 유행을 따라야 해.

오늘날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여자는 매춘부라고 주입받고 있어, 창녀, 끝장내야 하는 것, 엿먹여야 하는 것. 이것이 마케팅 홀로코스트야.


하루 24시간 동안 우리의 남은 삶 동안 그 권력은 열심히 작용하고 우리를 바보로 만들면서 죽이고 있어.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우리의 사고방식을 무뎌지게 만드는 것에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우리는 읽는 법을 터득해야 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의식과 신념 체계를 함양하기 위해서 말이지.”


원테이크로 진행되는 이 긴 대사. 헨리는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실체가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애써 피하고자 새로운 희생양을 만들고 때론 타인이라는 실체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것을 피하고자 우리는 배우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며, 헨리는 스스로의 삶 역시 녹록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에게,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메러디스와 에리카에게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야. 모두 고통을 느껴. 누구나 혼돈 속에서 살아가. 삶은 정말 혼란스럽지. 나도 알아. 정답은 나도 몰라. 하지만 네가 이걸 잘 견뎌낸다면…. 모두 괜찮아질 거야 It will be okay….”


결과적으로 두 소녀 모두가 행복하게 나아진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가 끝이 났냐고 하면, 안타깝지만 그것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절망의 구렁텅이 앞에 선 두 소녀에게 헨리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이 삶에서 짊어진 이 고통을 잘 견뎌낸다면, 모두 괜찮아질 거라고.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것은 시간만이 알려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가르치고 배우며 끊임없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 아래 살아가야 한다. 그게 하이데거가 말했듯, 내던져진 삶을 짊어진 인간의 몫인 거다.


그 겨울에 내가 왜 이 영화가 그리 마음에 와닿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그때 너무너무 힘들었던 거다. 그래서 계속 배우고 나를 지키는 법을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괜찮아지리라는 것을 꼭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그렇다면 어떠한가? 여전히 힘들다. 극적으로 변한 것은 없다. 여전히 어느 날은 힘들고, 이유 없이 울고 싶고 또 이유 없이 기쁘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배우고 가르치는 삶을 계속해서 실천하고 있다.


오늘은 학교에서 concept에 대해서 배웠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라는 용어는 미디어에서 만들어낸 잘못된 개념이라고 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불법 침공. 해당 용어에서 2022년은 러시아의 이러한 행태가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불법은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 당사국인 러시아가 국제법을 어기고 타국을 침입한 것이며,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 침공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미디어나 기타 기관에서 보도하는 용어와 개념에 대해서 쉽사리 믿어버리지만, 그 개념이 정말 진실한 것인지에 대해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배우면서 더 나은 개념을 찾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이 왜인지 모르게 위로가 되었다. 내가 이 강의실에서 앉아 이런 문제의식을 듣고 있고, 배움은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으며 나는 지금 배움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되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더불어 내가 아는 내용을 나는 과외나 봉사를 통해서 가르치고도 있는 입장이다 .


배우고, 가르치는 삶. 그것들을 통해 내 상상력을 기르고 나를 보호한다. 그렇게 하면, 내가 이 하루하루를 실체가 없는 허상적인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하며 잘 견뎌내면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이 괜찮아질 것으로 생각하니 위안이 되는 하루이다.

 

 

[김정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1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