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아트뮤지엄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3년 전 개최됐던 앨리스 달튼 브라운 – 빛이 머무는 자리展 이후로 처음인데, 3년 전도 이번 전시도 모두 빛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재밌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창작의 소재가 되는 빛이라니.
아무튼, 전시회를 보러 간 날은 많이 피로한 상태였지만 초록으로 가득한 전시 덕분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신선한 자극도 많이 얻어가 하루의 끝을 산뜻하게 마무리한 기분까지 모두 좋았다.
이번 전시는 스웨덴-대한민국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스웨덴국립미술관과 마이아트뮤지엄이 협업한 전시다. 칼 라르손, 한나 파울리, 엔더스 소른 등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예술인들이 그려낸 79점의 명작을 통해 19세기에서 20세기로의 전환기에 북유럽 국가에서 두드러진 예술 발전과 특유의 화풍이 정립된 배경을 조명한다.
한스 프레드릭 구데, <샌드빅의 피오르>, 1879, 캔버스에 유채
<샌드빅의 피오르>는 이번 전시의 첫 번째 작품으로, 내게는 전시의 첫인상이다.
79점의 명작 중 왜 하필 이 작품을 가장 처음에 뒀을까? 작품을 지그시 바라보니 이유를 쉽게 추측해볼 수 있었다. 노르웨이의 피오르가 주는 고요하고 조화로운 인상과 사실적인 풍경 묘사는 누구라도 멈춰서 바라봤을 거라고.
아이돌의 공연 무대에서 ‘도입부 장인’이 팬들의 이목을 사로잡듯, 노르웨이의 풍경화 장인이 그려낸 <샌드빅의 피오르> 역시 전시의 집중도를 높였다. 북유럽 미술계의 도입부 장인이라고 말하면 너무 가벼우려나. 빛의 묘사는 상당히 세밀하고 사실적이었고, 클래식 연주자들이 악기 튜닝을 마친 바로 그 순간처럼 예리했고 아름다웠다.
고화질의 사진로 구현할 수 없는 아우라는 어디서 나오는가. 화가의 시선에서 재구성된 자연은 일종의 레이어가 덧입혀지는지. 쉽게 흉내낼 수 없는 한스 프레드릭 구데의 능력이겠지.
엘리자베스 카이저, <자화상>, 1880, 캔버스에 유채
북유럽의 자연을 표현한 그림들 사이로 유독 강렬한 시선이 등에 꽂혔다. 바로 엘리자베스 카이저의 <자화상>. 화가로서의 강렬한 존재감이 인상적이다. 손에 붓을 쥐고, 정면을 여유롭게 응시하는 눈빛은 누구라도 잊기 어렵다.
<자화상>은 챕터 2 “북유럽 여성 화가들의 활약”의 작품 중 하나로, 같은 챕터의 다른 작품도 기억에 남았다. 이를테면 한나 파울리의 <아침식사 시간>.
산뜻한 이파리들 아래 서 있는 여인과 잘게 부서지는 햇살까지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아침에 일어날 자신은 없어도 사근사근 말 걸어오는 듯한 햇살은 좋다. 이토록 우아한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니.
다시 <자화상>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자화상>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화가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이길래 프레임을 뚫고 내게 와닿는지. 뜨거운 열망이다. 표현을 업으로 삼는 이는 무엇을 갈망하는가. 북유럽의 편안한 자연 사이에서 굳건한 눈빛과 자부심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시회장을 나가면 고개 똑바로 들고 작업에 집중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한나 파울리,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1892, 캔버스에 유채
<자화상>에 이은 두 번째 챕터의 작품이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는 한나 파울리의 다른 작품과 달리, 별다른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았다. 피아노를 치는 소녀만이 내 앞에 있었을 뿐이다. 사실은 내가 마주한 대상은 소녀가 아니다.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그림을 그려낸 한나 파울리의 시선이다. 햇빛의 충만한 율동이 가득한 다정한 시선.
앞서 언급한 <샌드빅의 피오르>의 빛 묘사가 압권이었다면,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의 빛 표현은 화려하고 감각적이었다. 러프한 붓 터치 디테일이 따사로운 리듬처럼 들린다. 아이가 연주하는 곡도 모르고, 프레임 바깥의 풍경 역시 당연히 알 수 없지만 자꾸만 그림 밖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끝으로, 이번 전시는 단순한 이미지의 향연이 아니라, 북유럽 인상주의를 온 몸으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들은 1880년대에 프랑스의 현대 미술에 영향을 받아 야외에서 직접 빛을 관찰하고 그리는 외광 회화, 자연주의와 인상주의를 수용했다. 그리고는 북유럽의 현실과 풍경을 묘사하며 ‘북유럽 화풍’을 만들어냈다.
결국, 전시를 보면서 은은하게 들었던 생각은 표현의 문제였다. 무엇을 어떻게, 왜 드러내는지의 문제. 내가 몸담을 분야가 예술계는 아니어도 대상을 적확한 텍스트로 담아내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잠깐이나마 해볼 수 있었다. 북유럽 화가들의 치열한 예술적 고민과 실험도, 그 결과인 작품에 이르기까지 선선한 바람처럼 와닿는 좋은 전시였다.
본 전시는 2024년 3월 21일부터 8월 25일까지 마이아트 뮤지엄에서 관람 가능하니 개최 기간 내에 단정하고 서늘한 스카겐의 녹음을 만나기를 바란다. 날이 무더워지는 요즘, 최고의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