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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순수할 만큼 불순한 시대, 그 안의 인간 [영화]

영화 <순수의 시대> 속 뉴랜드 아처 이야기

by 오유진 에디터
2024.04.1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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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순수의 시대(1993).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 이디스 워튼 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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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의 내용과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뉴랜드 아처, 젊어서는 뉴욕의 잘 나가는 상류층 변호사였고, 명문가의 여인 메이 웰랜드와 결혼하고는 가정과 일에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든 뉴랜드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다. 이후 뉴랜드는 장성한 아들과 유럽을 여행하다 거리에 앉아 어느 집을 올려다본다. 차양 아래 흰 레이스 커텐이 흔들리고 있는 창가가 보인다.

 

젊은 시절 뉴랜드에게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다른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엘렌 올랜스카. 그러나 뉴랜드는 엘렌이 아닌 메이와 결혼했다.

 

“정말 아예 안 들어가실 거예요? 부인은 이해 못 할 거예요.”

 

시간이 오래 지났고 사랑했던 여인이 사는 집이 바로 저기 있지만 뉴랜드는 그녀를 만나지 않기로 정한다. 뉴랜드가 발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모습은 영화 <순수의 시대>의 마지막 장면이다.

 

누군가의 뒷모습을 떠올리라고 하면 나는 그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뉴랜드는 왜 그녀를 만날 기회를 코앞에 두고 돌아섰을까. 더 과거로 돌아가자면, 엘렌을 사랑하면서 왜 그녀와 결혼하지 않았을까?

 

 

 

순수의 시대


 

 

언제나 있는 일이었다. 그 시절에는 모든 일이 그런 식이었다. 줄리어스 보포트 부인이 평소처럼 남편 없이 나타났다. ‘보석의 노래’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제 3막이 끝날 무렵 자리를 떴다. 이제 보포트가의 연례 오페라 무도회가 30분 후에 시작된다는 걸 뉴욕 전체가 알게 되었다. (…)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미국인들이 오락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도망치려 한다는 것은 뉴욕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때는 1870년대 뉴욕. 뉴랜드 아처는 관습과 전통의 상류 사회 속에서 평생을 살아 온 젊은 신사다. 어릴 때부터 관습에 대해 지겨울 만큼의 교육을 받았고 그 안에 머무르는 게 자연스러운 남자다. 그의 가족은 구습을 고수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이다. 뉴랜드는 그를 든든한 오른팔이라 부르는 어머니와 누이 아래에서 자랐다. 한편으로는 명문가인 뷰포트 가문의 무도회장에 걸린 누드화를 보며 ‘이런 도전’에 대해 즐거워하는 등, 속으로는 관습에 딴지 거는 것도 즐기는 남자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가족과 관습에 충실한 모습을 보이지만 말이다.

 

그의 약혼자는 명문가의 여인 메이 웰랜드다. 메이는 뉴랜드가 생각하는 완벽히 이상적인 여성이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릴 때부터 이 위선적이고 부유한 세계에 대해 교육받은 여인. 예절과 관습을 완벽히 내면화한 여인. 자신에게 늘 옳은 말을 해 주는, 그래서 뉴랜드 자신을 상류 사회에 중력처럼 붙들어 둘 수 있는, 이 세계 최상의 존재. 그것이 메이 웰랜드였다.

 

둘의 결혼은 두 명문가의 결합과 같고 온 뉴욕이 이를 축하한다.

 

이 완벽할 만큼 순수한 상류사회에 파문이 이는 것은 바로 유럽에서의 결혼 생활에 파국을 맞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귀국한 엘렌 올랜스카 부인 때문이다. 엘렌은 메이의 사촌이자 뉴랜드의 어린 시절 소꿉 친구다. 그러나 이혼은 중대한 흠이었던 시절, 엘렌을 향한 뉴욕의 시선은 곱지 않다. 옷차림도 예의도 상류층 사교계의 것들을 따르지 않는 그녀의 행동들은 더욱 그녀를 고립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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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엘렌 올랜스카, 메이 웰랜드의 어머니, 메이 웰랜드.

 

 

뉴랜드도 처음엔 그녀가 생경하다. 마치 상류사회라는 깨끗한 물을 헤집어 저 밑에 가라앉아 있는 흙을 끌어올리는 물고기같다. 그러나 동시에 연민의 감정도 든다.

 

 
“끔찍한 결혼이 자기의 잘못인 양 숨어 살아야 하나요? 망신을 당한 것처럼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는 건가요? 불행을 겪었다고 낙오자가 되야 하는 건 아니죠.”
 

 

엘렌을 비난하는 어머니와 누이에 대항해 그녀를 두둔하는 뉴랜드의 말은 엘렌에 대한 연민임과 동시에 관습에 대한 작은 항의이기도 하다.

 

엘렌에 대한 뉴랜드의 마음은 점차 호감으로 변모한다. 메이와는 너무나 다른 엘렌. 실은관습으로부터 탈피하고 싶어 하는 자신의 정신이 사람으로 현현한 것만 같은 여자…  그런 동질감과 해방감에 뉴랜드는 끌린다.

 

 

“…엘런이 춤추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

“그러다 갑자기 드레스가 무도회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마음을 바꿨어요. 우리가 보기에는 드레스가 무척 예뻤지만요. 그래서 외숙모님이 엘런을 집으로 데려가셨어요.”

“아, 그랬군…….” (…)

약혼녀에게서 그가 가장 마음에 들어 했던 점은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부터 교육받았던, ‘불쾌한 것들’을 무시하는 그 관습을 극단까지 끌고가는 단호한 결의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자기 사촌이 오지 않은 진짜 이유를 메이도 나만큼 잘 알아. 그렇지만 불쌍한 엘런 올렌스카의 평판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안다는 낌새를 메이에게 절대 보이지 말자.’

 

 

“적어도 밴더라이든 가보다는 덜 우중충하고 혼자있기 좋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첫 번째 글은 이디스 워튼의 원작 <순수의 시대> 중 뉴랜드와 메이의 대사이고, 두 번째 글은 자신의 집을 칭찬하는 뉴랜드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엘렌의 대사다. 이 두 장면은 메이와 엘렌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준다. 메이는 암시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고 엘렌은 이방인이다. 그리고 그 세계가 자신의 순수함에 흠이 되는 불순물을 없애기 위해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엘렌은 고통받는다. 아니, 세 사람 모두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관습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뉴랜드, 관습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순수한 메이, 자유롭고 싶지만 완전한 자유가 불가능한 엘렌.

 

 

“모든 사물에는 표시가 있지만 사람은 전혀 표시를 안하죠.”

“…아처, 여기는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이 아무도 없나요? 진짜 저를 외롭게 하는 건 이 친절한 사람들이 요구하는 게 가식적인 행동이라는 거죠.”

 

 

어쨌거나 자신을 이해해주는 뉴랜드에게 엘렌은 마음을 터놓고, 뉴랜드 또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뉴랜드는 결국 메이와 결혼한다.

 

 

 

너무나 불순한 시대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을, <순수의 시대>


  

메이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엘렌을 사랑하게 된 뉴랜드는 우유부단했다. 사랑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여자와, 사랑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래도 결혼하면 이제까지 자신이 그래왔듯 관습 안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여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 결혼한 이후에도, 관습에 완전히 지쳐버린 그는 엘렌을 더욱 떠올리며 고뇌한다.

 

그런 그 대신 선택을 내린 건 메이와 엘렌이다. 메이는 엘렌을 좋아하는 뉴랜드의 마음을 알아차렸지만,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결정적인 순간 뉴랜드를 완전히 낙담하게 만든다. 엘렌 또한 메이를 위해 뉴랜드를 밀어내고 뉴욕을 떠난다. 뉴랜드는 중요할 때 선택을 미루고 도망치느라,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결국엔 모든 선택을 두 여자가 하게 했다. 그렇게 뉴랜드는 메이의 남편으로 관습 안에 남게 된다.

 

그를 이토록 번민하게 한 데에는 그 자신의 소극적인 본성도 한몫했다. 그러나 그를 소극적으로 만든 것이 바로 시대였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뉴랜드는 시대가 한 사람의 인생을 형성한 결과물이다. 자기 입장에서 불순한 것들을 모두 감추어버리는 순수의 시대. 화면 너머, 겉과 속이 다른 상류층의 모습은 정말 숨이 막힌다. 겉으론 고요하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헐뜯고 있다. 뉴랜드의 생각을 빌리자면 너무 위태로워서 작은 속삭임만으로도 화합이 산산조각 날 것 같다.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떨까. 정답을 골라야 하고 가족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며 자기가 관습을 버릴 수 있는지도 어쩌면 잘 모르겠고... 끝내 관습에 안주하는 걸 택할 수 밖에 없던 뉴랜드다.

 

그렇게 뉴랜드는 다시 한 번 결혼에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그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는 좋은 남편이자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잘 키워낸 아이들은 이제 결혼할 만큼 자랐고, 메이가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땐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그는 57세가 되었다.

 

 

 

뉴랜드, 그의 뒷모습


 

아들 테드와 유럽에 오게 된 뉴랜드. 그리고 테드의 말은 뉴랜드를 생각에 잠기게 한다.

 

 

“모든 걸 다 내던지고 싶었던 여자를 왜 안만나시냐고요.” (…)

“하지만 엄마는 아셨대요. 아버지가 우릴 놓지 않을 거라고.”

“…네 엄마가 그랬다고?”

“네, 돌아가시던 날 저를 따로 부르신 거 기억하시죠? 아버지가 우리를 놓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셨어요. 언제나 그러실 거라는 걸. 언젠가 엄마가 아버지한테 부탁하셨대요. 가장 갖고 싶은 것을 포기하라고.”

“그런 부탁한 적 없었어. 한 번도 부탁하지 않았어.”

 

 

뉴랜드는 메이가 그녀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과, 엘렌에 대한 사랑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마음 한 쪽에 잠가 둔 것을 모두 알고 보듬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불안정함을 가장 잘 알아준 것은 가장 안정적이고 순수하다 생각했던 메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걷다가 엘렌의 아파트 아래에 도착한 두 사람. 뉴랜드는 창가를 올려다본다. 열린 창문 사이로 흰 레이스 커텐이 흔들리고 있고, 뉴랜드는 가만히 그 모습을 볼 뿐이다.

 

 

“수위가 3층이라고 알려줬어요. 저기 차양을 친 집인가 봐요.”

“난 그냥 여기 앉아 있을게.”

“정말 아예 안들어가실 거예요? 부인은 이해 못 할 거예요.” (…)

“부인께는 뭐라고 말해요?”

“구식이라고만 해라. 그걸로 충분할 거야.”

 

 

사람은 원래 자기 일은 똑바로 못 본다. 시간이 지나거나 자기 스스로 그 일에서 빠져나와야 그나마 제대로 볼 수가 있다.  뉴랜드는 그 때에는 몰랐지만, 사랑에서 한 발짝 멀어지고 나이듦으로 인해 두 발짝 멀어지고서야 자기 인생과 과거를 관조적으로 되돌아 볼 기회를 얻은 것이다. 이제는 그에게 지워져 있던 가장이라는 틀도 느슨해지고 연륜도 쌓였다. 그제야 뉴랜드는 자신이 얼마나 두 여인에게 선택지를 미루었는지 깨닫는다. 메이는 강단있게 그녀와 뉴랜드를 지켜내면서도 나름대로 뉴랜드를 동정하고 있었다. 엘렌 또한 자기의 연륜과 경험으로 세 사람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을 내렸던 거다.

 

뉴랜드는 그녀의 창문을 바라보며 그때의 나약했고 애썼던 자신을 인정한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삶이었다. 동시에 이제는 엘렌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날려보낼 준비가 된 것도 같다.

 

젊던 몸은 늙었고, 가장 깨어있던 그는 이제 구시대 사람이 되었다. 과거가 뉴랜드의 눈 앞에 스쳐 지나가고, 그는 회한에 잠기다 끝내 그녀의 집앞에서 뒤돌아 간다. 

 

내려놓았다고 가볍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무겁지도 못한 그 걸음걸이가 자꾸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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