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실종자는 말하지 않는다 - 연극 실종법칙

실종에 '법칙'이란 게 있을까
글 입력 2024.04.1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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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비극은 한 사람의 실종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니, 그 전부터 이미 비극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족, 친구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이 작품은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의 어두운 내면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감정을 배제한 채 부품으로 소모되는 현대 사회의 인간 소외, 우리와 가장 가까운 곳에 도달해 있는 이야기이다.


표면 그 이상의 본질을 찾아나가는 여정, 연극 ‘실종법칙’과 함께해 본다.


 

실종법칙 포스터.jpg

 

 

 

그녀는 왜 실종되었는가?



행방불명된 ‘유진’, 유진의 남자친구 ‘민우’, 유진의 언니 ‘유영’, 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녀는 왜 실종되었는가, 남자친구 민우의 눅눅한 반지하 단칸방에서부터 언니 유영은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유영은 민우를 먼저 의심한다. 유진이 실종되기 전날 그와 헤어지려고 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민우의 증언은 정반대다. 수상한 정황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맞지 않는다.


오직 두 사람만이 대화를 이어간다. 가장 작은 단위의 대화에서 가장 극적인 단서를 파헤친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마치 양극에 놓인 듯 계속해서 엇갈린다. 가장 단출한 형태의 대화에서 극대화되는 가장 혼란스러운 대화. 그들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양 끝에 놓인 흑과 백처럼 보이지 않는 격차를 그리며 맴돈다.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



사라진 한 사람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사라지기 전에 진작 그랬으면 좋았을걸, 유진에게 뒤늦은 관심을 가졌을 때는 이미 때를 놓친 뒤였다. 그녀는 이미 우리에게서 발을 떼어버렸으니.


뒤늦게나마 그녀의 행적을 따라 밟아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두 사람의 상상은 배가 된다. 꼬이고 꼬인 그들의 인간관계가 곱해지고, 또 곱해진다. 둘 사이에 조용히 자리 잡은 서로에 대한 혐오는 어느새 유진에게까지 번져버린다. 세 사람은 유진과 가까운 사이라고 자부하지만, 그들은 서로를 철저하게 소외시키고 있다. 그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실종에 가담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과 죄책감을 회피하기 위함이었을까. 


 

 

다시, 그녀는 왜 실종되었는가?


 

마치 실종에 법칙이 있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은 계속해서 무례한 예측을 내놓기만을 반복한다. 그러나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실종자는 말이 없다. 오직 유진의 가까운 지인들만이 그녀에 대해 떠들어댄다. 거대한 혼란은 극의 밖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관객들까지 미궁에 빠지게 한다.


우리는 우리와 가까운 사람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많은 대화를 나누고, 일상의 많은 부분을 공유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감히 그녀가 행적을 감춘 이유에 대해 결론내릴 수 없었다.


우리는 각자의 ‘유진’을 주변에 지니고 있다. 그와 수많은 주제를 함께 거쳤으면서, 그의 진짜 내면을 들여다본 적은 있었는가. 그의 아픔을 알아주려 노력해 보았는가. 당신은 정말로 그를 잘 알고 있는가?

 

'실종법칙'은 남의 일로 여기며 극을 '구경'하는 당신의 이야기이다. 당신도 실종 사건의 용의자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실종자는 말하지 않는다. 오직 그 주변에 놓인 사람들만이 입을 연다. 당신 주변의 '유진'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유진’은 대체 왜 실종되었는가?

 

 

 

에디터 태그.JPG

 

 

[박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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