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부에서는 모두가 주인공 [공연]

뮤지컬 「웨스턴 스토리」 후기
글 입력 2024.04.1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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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모두가 주인공인 이야기


 

이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모두 하나같이 과하다. 그런데 이게 이 공연의 매력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빌리 후커’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서 서부로 찾아온 인물이다. 서부극의 전형적인 주인공 설정을 지닌 이 캐릭터는 밑도 끝도 없이 복수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빌리 후커가 찾아온 다이아몬드 살롱의 주인인 제인 존슨 또한 만만치 않다. 서부 3인방인 와이어트 어프, 조세핀 마커스, 조니 링고에게 막대한 현상금이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루머를 퍼뜨려 그들을 자신의 술집으로 유인한다. 서부 3인방은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다이아몬드 살롱으로 달려가게 되고, 그곳에 빌리 후커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빌리 후커의 이러한 계획은 그의 주변 인물 특히 제인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못하고 결국 아버지의 복수를 성공하지 못한 채 막이 내린다.


작품은 진행되는 내내 제4의 벽을 뚫고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한 톤이 유지된다. 그래서인지 다른 뮤지컬 작품들을 오마주하거나 ‘서부’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현대적인(?) 애드립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종완 작•연출과 김은영 작곡가는 이전에 작업한 <사의 찬미>라는 뮤지컬의 한 넘버를 대놓고 극 안으로 끌고 왔다. ‘그가 오고 있어1 - 웨스턴 ver.’, ‘사의 찬미 – 웨스턴 ver.’, ‘그가 오고 있어2 – 웨스턴 ver.’, 이런 식으로 이전 작품을 새롭게 풀어낸다거나 아예 넘버 제목을 다른 작품명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선택은 이전에 <사의 찬미>를 관람한 관객들에게 큰 웃음 포인트로 작용한다. 소극장 창작 뮤지컬이기에, 코미디극이기에, 성종완 작가과 김은영 작곡가이기에 가능했던 과감하고 매력적인 시도였다고 본다.


마지막 넘버가 버드 해리 송인 것이 참 마음에 들었다. ‘버드 해리 송’은 극 중 버드와 해리가 극이 다 끝나고 난 뒤, 마지막에 부르는 엔딩 넘버다. 이 넘버가 흘러나올 때는 마치 영화가 끝난 것처럼 무대 뒤로 엔딩 크레딧이 지나간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다른 배우들은 자신의 물건을 놓고 갔다는 이유 등으로 다시 무대에 나타나 흐름을 방해하거나 아예 콘솔에서 마이크를 꺼버리기도 한다. 이 작품의 진짜 결말은 두 인물로 인해 비로소 완전히 매듭지어졌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할 수 있는 곳, 이런 게 바로 서부인 건가. 누군가는 복수를 말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총을 겨누지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기회만큼은 공평하게 나눠주는 이 뮤지컬에 애정이 간다.


어쩌면 빌리의 진짜 목적은 아버지의 복수가 아닌, 아버지를 잃은 본인의 상처 치유가 아니었을까. 빌리 캐릭터야말로 아이러니를 잘 활용한 사례 같다. 빌리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서부 3인방에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여지지만 사실상 그는 자신이 복수하려고 하는 이들의 얼굴조차 알지 못한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러면서 마치 자신은 위대한 복수를 할 위인이라도 된 것 마냥 떠들어댄다. 하지만 나는 문득 ‘빌리가 진짜 아버지를 죽였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반창고를 붙여주며 치유해 주고 아버지의 은인인 잭의 품에서 우는 빌리의 모습은 ‘살인을 통한 복수’와는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그가 세운 계획은 정당한 이유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어쩌면 빌리 본인도 아버지께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이유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애써 부정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빌리의 목표였던 ‘아버지를 죽인 원수에 대한 복수’는 실패했다. 그 대신 빌리는 더 값진 사람들을 얻었다. 나는 지금까지 빌리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여러 곳을 홀로 방랑하며 지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후반부에 극단 배우로 활동하는 빌리의 모습이 조금 급작스럽게 느껴지긴 했으나 그만큼 뿌듯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꿈을 찾기 위해 서부를 떠나는 빌리 후커와 3인방의 모습까지. 서부는 결국 머무르는 곳이 아닌, 떠나는 곳이라며 유쾌하게 마무리 지은 결말도 좋았다.


제인은 극 중간마다 방백을 이용해 사건을 설명해 준다. 그는 작가가 공식적으로 설정한 해설자, 즉 극 속 이야기와 관객들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셈이다. (이 작품은 메타 연극이고 다른 인물들 또한 독백, 방백이 아니어도 관객들을 향해 대사를 건네곤 한다) 그리고 그는 와이어트 어프, 조세핀 마커스, 조니 링고가 가짜임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들 중 한 명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제인과 같은 인물은 꼭 필요한 존재이다. 삼류 극단 3인방(서부 3인방)은 진짜 악인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이 미리 알고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관객은 자신들과 해설자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존재할 때, 해당 사실을 모르는 인물들이 그 이유로 인해 갈등을 겪는 순간 자신이 마치 절대자(조물주)가 된 듯한 우월감과 그것에서 비롯된 재미를 느끼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관객들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공연일 뿐이다’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소격효과’가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웨스턴 스토리」에서 사용되는 소격효과는 의도적으로 관객과 작품 사이에 거리를 두게끔 만든다는 본래 뜻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이러한 소격효과 대사는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유발하고 극 속 인물과의 친밀감이 형성되게끔 만들어준다. 극단 삼류 배우 3인방이 다이아몬드 살롱을 탈출하려고 하는 장면의  ‘미션 파서블’에서는 그들이 성종완 작가를 원망하는 듯한 가사가 등장한다. 왜 자신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냐면서 신세 한탄을 하는 삼인방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탈출 장면은 삼인방이 다이아몬드 살롱을 탈출해야만 하는 감옥으로 표현하기 위해 특수 레이저 효과를 사용하여 신선함을 더했다.


나는 「웨스턴 스토리」가 대학로 창작 뮤지컬 장르 문법의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 작품은 큰 의의가 있다. 앞으로 대학로에 「웨스턴 스토리」처럼 유쾌한 뮤지컬이 많이 나오길 바라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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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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