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달디단 밤양갱

쓰디쓴 학생들
글 입력 2024.04.13 20:2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238341839_wiLyQWz7_sky.jpg

 

 

낮이고 밤이고 수업에서 만나는 학생들마다 밤양갱거린다.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이 노래가 왜 좋으냐고 물으니 달아서 좋다고 한다. 왜 달아서 좋으냐 물으니 사는 게 쓰단다. 14세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나는 쓰라린다.

 

월수금에는 영어, 화목에는 국어, 주말에는 하루 종일 수학 학원에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예체능 학원과 각종 과외까지 있어 바쁘다. 언제 쉬느냐고 물으니 쉬지 못한다고 한다. 언제 노느냐고 물으니 놀아선 안 된다고 한다. 그럼 무엇을 할 때 기쁘냐 물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 그저 사춘기가 무감각하게 만든 걸까, 우리 어른들이 느낄 새도 없게끔 만든 걸까.

 

문법 시간이었다. 영어로 감탄문을 만드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데 공식처럼 무작정 외우는 것보다 자연스레 기억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마침 그날의 하늘이 참 예뻤다.

 

“하늘 봤어? 아름답더라. 이럴 때 어떻게 감탄하면 좋을까?”

 

“하늘을 왜 봐요? 땅을 보죠.”


“땅을 왜 봐?”


“폰을 봐야 하니까요.”


“걸으면서 폰을 보는구나. 폰을 보듯이 하늘을 보면 더 좋을걸? 잠시라도 봐봐. 바람도 느껴보고.”

 

“오글거려요. 선생님은 분명 F예요!!”

 

“됐고. 만약 하늘 자체로 명사를 강조하여 감탄하고 싶을 때는 What a sky!라고 할 수 있어. 반대로 하늘의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를 강조하고 싶으면 How beautiful (it is)!라고 할 수 있어. 강조점에 따라 선택하는 의문사가 다르지? 이 차이를 기억해.”

 

“명사를 강조할 때는 What을 쓰고 형용사를 강조할 때는 How를 써요? 처음 들어요.”

 

“너도 모르게 너는 이미 알고 있어. 한 사람의 이름(명사)를 물을 때 What is your name?이라고 물었지? 한 사람이 얼마큼 살아왔는지 상태(형용사)를 물을 때는 How old are you?라고 했을 테고. 너는 이미 명사와 형용사를 파악하여 의문사를 다르게 선택하고 있는걸. 의문문처럼 감탄문도 마찬가지야. 자, 다같이 여기 하늘이 있다고 가정하고 감탄해 보자. 시작!”

 

“What a sky... How beautiful it is...”

 

“평서문 말고 감탄문처럼 다시! 느낌표를 살려서 해보자!”

 

“What a sky! How beautiful it is!”

 

“좋다 좋다. 감탄문도 좋지만 너희가 아무리 바빠도 하늘을 보며 지내면 좋겠다.”


하늘을 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하늘 볼 여유를 앗아가고 있었다. 

 

“숙제도 안 하는데 수업을 왜 오지? 시간만 때우면 느는 줄 알아? 오늘까지 해서 사진으로 보내.”

“수학 숙제가 너무 많아서 할 시간이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수학만 중요해? 변명 듣고 싶지 않아.”


“노트가 왜 휑하지? 계속 이럴 거면 수업 듣지 마. 부모님과 상의해서 그만둬도 좋아.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째니.”

“피곤해서 자꾸 잠들어요. 할 시간이 없었어요. 죄송해요.”

“시간은 없어. 시간은 네가 붙잡고 네가 만드는 거야.”


150분 수업을 연강으로 하다 보면 화장실 갈 시간도 부족하다. 잔소리를 퍼부은 후에 짬을 내어 화장실에 갔다. 찬물로 손을 씻으며 거울을 봤다. 찬물보다도 차가운 눈빛. 학생들은 이 눈빛을 마주하며 얼겠구나. 이것을 학교와 집에서도 매일 보겠구나. 눈을 질끈 감았다.

 

학생들을 조이고 싶지 않아도 조이게 된다. 할 것을 하지 않으면 혼을 내게 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더 하고 학부모들도 바라기 때문에. 이해하고 품기만 하면 학생들이 바로 방심하거나 컴플레인이 들어오기도 하기에. 소위 말하는 ‘투자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기 위해 오늘도 곳곳에서 학생들의 나사를 조인다.


밤 10시. 재시험을 치기 위해 남은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의 눈꺼풀이 무겁다.

 

“곧이다. 조금만 더 하면 끝이야.”

 

“선생님, 인생이 참 쓴 것 같아요. 왜 쓸까요?”

 

“단맛 보려고.”

 

“네? 단맛 보려면 탕후루 먹으면 되잖아요.”

 

“단맛에만 익숙해지면 끝도 없거든. 더욱 단것만 찾게 돼. 쓴맛을 봐야 단맛을 알아.”

 

“선생님도 인생이 써요? 선생님도 저처럼 살고 싶지 않고 그래요?”

 

“나는 죽을 고비가 세 번 있었어. 하나는 육체적으로, 하나는 정신적으로, 하나는 영적으로. 고비들을 넘기고 나니 죽도록 살고 싶더라. 지금도 쓰지만 꽤 달아. 살아서 참 다행이야.”

 

“띵언이네요.”

 

“힘들지? 힘들 거야. 어서 가라, 시간 늦었다.”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어느샌가 나도 학생들처럼 밤양갱을 부르고 있다. 시험 점수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보다도 배워야 할 중요한 것이 참 많은데. 일상의 기적을 놓치지 않는 법, 자연과 어울리는 법,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는 법,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 등.  

 

모든 어른을 대신해서 고맙고 미안하다 얘들아.

 

 

 

김윤 컬쳐리스트 명함.jpg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